지천
지용일 개인전

바닥에 나방이 죽어있다. 그 주검이 나비의 것인지도 모르나, 나방게 가깝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낙엽이 나보다 희붐함에 가깝듯이.어제저녁에 많이 먹었으니, 오늘은 먹는 양을 줄이기로 한다. 과잉에서 결여로의 이동은 벌써 균형을 사로잡으려고 하는데, 나는 이와 관계없다는 식으로 정지된 사물로서 존재한다. 시큰한 코끝이 시와 어울리며 시시덕거린다.이제 막 어수룩한 티를 벗은 생각은 쥘 때마다 익숙한 정도가 다른 곡괭이를 잡고 무를 깨부쉈다.

공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고자 한다면 딱히 안 될 것도 없는 곳에 있다. 정확히 그곳과 창을 사이에 두고 있다. 내 옆에 있는 빈터-털이(편의상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는 버려진 곳 특유의 암울함 따위는 없어 그곳을 조금 열심히 뒤지다 보면 곧 새로움을 발견할 것만 같다. 굳이 그러지 않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책상 위엔 한 모금 정도 남은 물과 그것을 담은 컵, 그리고 웃돈을 주고 산 누더기 몇 벌.저조한 수입은 그런 기분과 한배를 탄 채 같은 자리를 돌고 있다. 이게 우아한 몸짓이라고 느껴진다면 당장 깊은 구덩이를 찾아 그 속에 고개를 묻어야 할지도.빈터-털이와 사상을 띤 공존은 성장이라도 하려는 듯 군다.

곧 사라질 생각이란 것은 더운 김을 내뿜고 머묾으로 도약한다. 그곳은 눈먼 시간이다.지나치게 관망적인 시기를 보낸다는 게 사고의 집약을 요구한다거나 일상을 다른 각도로 돌리도록 종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나, 이치는 여전히 멀다.'처음 방문한 장소에서 눈에 익은 봇짐을 발견하기.' 좌우의 구분은 없지만, 앞뒤는 분명한 모토.가벼운 말투로 억누르기엔 대 책없는 삶이라고 했어, 심지 찾아다니는 불꽃에 녹록한 걷기가 달라붙어 앞으로의 행보에 저 혼자 먼저 다다르기도 하고.

괜히 좋다가 만 하루는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3초간 정적. 괜한 감정을 느끼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뭐가 있나 싶어도 왠지 있을 것 같아, 나만 이를 모르는지도 몰라, 공연하게 말수를 늘린다.혼자 주절대는 소리가 무해한 가정을 일목요연하게 줄이며 서너 줄짜리 주문을 어렵지 않게 외울 때, 뭔가 나는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줄기찬 외침이 줄다리기를 마친 후 기나긴 줄 서기에 돌입함으로써 그것이 마주한 기다림이 어쩐지 나에게 있다. 울퉁불퉁한 표면이 언제까지고 손을 떠나지 않을 듯하다. 손아귀의 함성. 실제적인 감촉이 한때 바랐던 상황의 실현을 가져올까 봐.

상자를 반으로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 둘을 하나로 합치려고 애썼다. 나름의 수고가 금방 날개 접고 잠결을 쏟았다. 공들임과 엎지름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자 마음과 반대인 행위이다.분리는 딱히 고립은 상정하지 않는 듯했으며 세상 모든 찬사란 찬사는 다 받은 얼굴로 허공을 휘저었다. 이는 누군가의 존재 방식으로서 꽤 적합할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경우 연신 허공을 휘젓겠고, 보통의 경우 하루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허공을 휘저으며 존재하는 사람에게 혼자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번쩍번쩍 빛나며 그러다 문득 뒤돌아서기를. 선택은 언제나 말이 없지.'



이미지_양승규
나는 여러 형태에 무뎌서.더 이상 볼일 없을 거라는 대상을 맞닥뜨릴 때, 이를 회벽 두른 건물들을 지나치는 것처럼 여길지도 모르지. 덩그러니 남은 너와 규칙적인 나의 혼.견딜 수 없이 우스워도 이제 막 자리 잡은 직장을 생각하듯 피할 수 없게 다가온 현실은 가짓수를 자랑하다, 저당 잡힌 집체를 보았다. 침묵과 사교적인 숨은 결국 너와 나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