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품은 천안 리각미술관

산속 정원을 거닐고 작품을 만나는 시간

자연을 품은 천안 리각미술관
리각미술관 전경, 이미지 출처: 리각미술관

가끔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고단한 하루는 제쳐두고, 복잡한 생각도 잠시 잊고 낯선 공간을 거닐고 싶어지죠.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 한가운데로 들어가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켜고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익숙한 것들을 떠나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예술도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자연과 예술을 품은 리각미술관으로 초대합니다.

 

조각가가 만든 미술관

리각미술관 조각 정원, 이미지 출처: 에디터 본인 제공

‘리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리각’은 미술관의 설립가인 조각가 이종각의 이름에서 첫 자와 끝 자를 따와 탄생했습니다. 낯설지만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이름처럼 리각미술관을 다녀온 후 자연 속에서 예술을 만난 특별한 시간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산속에 있는 미술관이라니 듣기만 해도 설레지만 너무 먼 여행이 될까 망설이게 되죠. 하지만 리각미술관은 충청남도 천안에 위치해 서울에서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미술관에 도착하니 태조산이 그림처럼 펼쳐진 정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원을 천천히 산책하면서 이종각의 조각을 살펴보고, 자연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 카페도 함께 있어 본격적인 전시 관람에 앞서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일 수 있었습니다.

 

세계가 주목한 조각가

이종각, 이미지 출처: 리각미술관

정원에는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청동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노을 지는 하늘 아래 완만한 산들, 자연의 곡선과 어우러지는 작품을 보며 이종각의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계기와 생각으로 조각을 만들었을지 물음표가 떠올랐습니다.

이종각은 중학생 시절 영화 <석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예술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러시아의 알렉산더 프투시코 감독이 만든 영화 <석화>는 돌을 조각하는 장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완벽한 꽃 모양의 보석 잔을 만들기 위해 가정을 떠나 산으로까지 향해 열정을 쏟았습니다. 이종각은 장인의 깊은 몰입, 그리고 그 끝에 탄생한 아름다운 꽃 잔에 흠뻑 빠져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미술에 대한 사랑으로 예술 대학에 입학했지만, 큰 벽에 부딪히고 맙니다. 적록 색약이라는 진단을 받고 만 것입니다. 적록 색약은 적색과 녹색이 섞여있거나, 멀리 있을 때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를 뜻합니다. 섬세하게 색을 고르고 표현하는 서양화를 포기해야만 했죠. 하지만 이종각은 색약이 있었던 덕에 조각에 흥미를 갖고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종각, <응축형의 변주 (1)>, 이미지 출처: 리각미술관

이종각은 주로 청동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에서 ‘손가락 지문까지 섬세하게 새겨질 만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 만큼, 정교한 작업이 가능한 청동을 택했습니다. 조각에 대한 열정과 계속된 탐구로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88올림픽에 국내 조각가 중 단독으로 초청받아 서울 올림픽공원에 조각 작품을 설치했고,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초대 작가로 선정되기에 이릅니다.

 

미술관 너머의 자연

리각미술관은 조각 공원과 함께 미술관 실내에서 다양한 전시를 소개해 왔습니다. 이종각의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개인전부터 70 명 가까이 참여한 대규모 전시까지 국내 작가들을 폭넓게 초대했습니다. 사진과 조각, 판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로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태조산 공원, 이미지 출처: 천안시청 공식 홈페이지

전시와 정원을 둘러보고 나니, 자연에 더 깊이 머무르고 싶어졌습니다. 미술관 바로 앞 태조산으로 향하면 산책하기 좋은 길을 갖춘 태조산 공원이 있습니다. 부담 없이 계절을 즐기며 걷고 싶은 이들을 위한 산책로 ‘무장애나눔길’이 눈에 띕니다. 이름처럼 장애인, 노약자, 교통 약자 모두 산길을 누릴 수 있도록 경사가 급하지 않고, 길목마다 쉼터가 잘 조성된 산책길입니다. 좀 더 특별한 체험을 원한다면 짚라인을 탈 수 있는 레포츠 단지도 방문할 수 있습니다.

 

각원사 청동대좌불, 이미지 출처: 천안시청 공식 홈페이지

숲이 우거진 산을 생각하면 고요한 풍경의 절이 함께 떠오르곤 합니다. 태조산에는 절이 여러 곳 있어 리각미술관과 함께 방문하기 좋습니다. 도심에서 가까운 각원사는 국내에서 가장 큰 청동 좌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높이 15미터, 무게 60톤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에 압도되어 사사로운 고민을 잠시 잊게 됩니다. 근방의 성불사에 도착하면 840살이 넘은 오래된 느티나무가 반깁니다. 천안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품은 성불사에서 천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조용한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루쯤 일상을 떠나 온전한 휴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리각미술관이 품은 자연과 예술의 조화는 여유를 찾고 싶다는 마음을 채워주었습니다. 빛에 물드는 하늘과 단풍이 하나가 되는 태조산을 바라보니 봄과 여름, 겨울의 리각미술관이 모두 궁금해졌습니다. 가까이에서 자연을 한가득 느낄 수 있는 리각미술관에 방문해 보길 추천합니다.

 

[참고문헌]

  • 충청남도 공식 블로그
  • KPI뉴스, [인터뷰]구순(九旬) 앞두고 개인전 가진 조각계의 거장 '이종각' 작가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