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다시 쓰는 사람들
모방 이후의 창작에 대하여
전시장이나 이미지 피드를 넘기다 보면, 가끔 멈추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분명 예전에 본 것 같은 이미지인데, 설명은 달라져 있고, 맥락은 어긋나 있으며, 이상하게도 낯섭니다. 익숙해야 할 장면 앞에서 우리는 종종 의심부터 꺼냅니다. ‘표절’이라는 단어입니다. 반복되는 이미지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빠르게 의혹을 결론으로 바꾸는 걸까요. 동시대 사회는 새로움을 성과처럼 요구하고, 오리지널리티를 창작의 최소 조건으로 삼아왔습니다. 그 결과 모방은 종종 게으름이나 침해로 단정됩니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에서 반복과 차용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글은 모방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하지 않습니다.대신 질문을 이동시키려 합니다. 모방은 정말 창작의 반대편에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하게 왜 이 이미지는 지금 다시 등장했는가. 이미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는 것’으로 사용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큐레이션합니다.
새로 만들지 않는 선택
동시대 미술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지 않는다’는 선택은 더 이상 소극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선택은 이미지를 둘러싼 질서 전체를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이미지는 늘 생산되어 왔고, 이미 충분히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가 어떻게 의미를 얻고 소비되어 왔는지를 다시 묻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모방은 여기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과 태도의 문제가 됩니다. 무엇을 새로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것을 어떤 위치에 다시 놓았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이 글이 큐레이션하는 작업들은 바로 그 선택을 택한 사례들입니다.
저자의 삭제 — 셰리 레빈

셰리 레빈은 1980년대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개념미술 작가로,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거의 변형 없이 다시 제시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그는 사진, 회화, 조각 등 미술사 안에서 이미 ‘정전(canon)’으로 자리 잡은 작품들을 반복적으로 호출해 왔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After Walker Evans』 연작에서 레빈은 사진가 워커 에번스가 대공황 시기에 촬영한 농민들의 초상을 다시 촬영합니다. 이 작업은 단순한 재현처럼 보이지만, 제목에서부터 명확한 방향을 드러냅니다. After라는 단어는 시간적 이후이자, 권위에 대한 거리 두기를 의미합니다.
레빈의 작업에서 이미지 자체는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이 전면으로 떠오릅니다. 이 이미지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사진을 만든 사람의 손인가, 그 손에 부여된 이름과 역사인가. 그의 모방은 원본을 훼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본이라는 개념을 성립시키는 조건을 비워냅니다. 그렇게 이미지 뒤에 숨어 있던 저작권, 남성 중심의 미술사, автор(author)라는 개념이 드러납니다. 레빈에게 모방은 이미지의 복사가 아니라, 권위의 구조를 다시 쓰는 방식입니다.
맥락의 이동 — 리처드 프린스

리처드 프린스는 대중문화와 광고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으로 옮겨온 작가로, 차용 미술(appropriation art)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신문, 잡지, 광고 등 이미 대량으로 유통되던 이미지를 다시 촬영해 작품으로 제시합니다.『Cowboys』 시리즈에서 프린스는 말보로 담배 광고 속 카우보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옵니다. 이 카우보이는 미국적 남성성, 자유, 개척 정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고, 오랫동안 소비자에게 이상적인 삶의 이미지를 팔아왔습니다.
그러나 프린스는 이 이미지를 미술관 벽으로 이동시킵니다. 상품 설명도, 브랜드 로고도 제거된 상태에서 이미지는 더 이상 무언가를 설득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미지가 어떻게 욕망을 조직해 왔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프린스의 모방은 이미지의 외형을 훔치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지가 작동하던 맥락과 목적을 제거하고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소비 시스템 자체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모방은 도용이 아니라, 이미지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폭로하는 전략이 됩니다.
언어의 개입 — 바바라 크루거

바바라 크루거는 그래픽 디자인과 사진, 텍스트를 결합한 작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중 잡지나 광고에서 가져온 이미지 위에 짧고 공격적인 문장을 얹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YOU”, “YOUR”, “WE”와 같은 직접적인 호명은 관객을 이미지 바깥의 관찰자가 아니라, 이미지 안의 주체로 끌어들입니다.『Untitled (Your body is a battleground)』에서 크루거는 여성의 얼굴을 반으로 나눈 뒤, 그 위에 문장을 삽입합니다. 이미지는 더 이상 미적 대상이 아닙니다. 대신 관객은 질문받는 위치에 놓입니다. 이 이미지를 보고 있는 당신은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
크루거의 모방은 시각적 차용을 넘어섭니다. 텍스트는 이미지를 해석하는 도구가 아니라, 해석의 방향을 강제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미지를 보는 시선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관객이 무심히 소비해 왔던 이미지 읽기 방식을 중단시킵니다. 그의 작업에서 모방은 이미지를 다시 쓰는 동시에, 관객의 위치를 다시 쓰는 행위가 됩니다.
동일한 반복 — 엘레인 스터티번트

엘레인 스터티번트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동일하게 반복 제작한 작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비슷하게’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똑같이’ 재현합니다. 중요한 점은 스터티번트가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차이가 없을 때, 우리는 작품 내부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대신 작품을 둘러싼 조건—누가 만들었는지, 어디에 전시되었는지, 어떤 이름이 붙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스터티번트의 반복은 창작의 개념을 시험합니다. 작품이 작품이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최초의 아이디어인가, 실행인가, 아니면 제도적 승인인가. 그의 작업은 모방을 통해 이 질문을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여기서 모방은 질문을 생산하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이 됩니다. 차이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창작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드는 것입니다.
이 작업들은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다시 씁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왜 이 이미지는 지금 다시 등장했는가, 그리고 이 이미지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다시 쓰였는가. 모방은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기보다, 이미지를 읽는 방식에 대한 점검입니다. 새로움은 반드시 새로운 이미지를 뜻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익숙한 이미지를 낯설게 만드는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이 글이 제안하고 싶은 것은 결론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이미지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 자신이 이미지를 어떻게 읽어왔는지를 돌아보는 일. 그 질문이 모방 이후의 창작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