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위에 선 시간 속 최재은 작가가 묻는 질문들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서 자연을 기억하는 방식

자연은 인간의 거울인가요, 혹은 우리가 결코 닿을 수 없는 타자인가요.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지만, 실은 끝없이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계절은 흐르고, 나무는 자라며, 강물은 같은 자리에서 끝없이 흘러가죠. 인간은 그 안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언가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4월, 우리는 자연을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그것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며, 인간과 얽혀 있는 존재임을 말이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예술은 그 경계를 흐리게 하고, 우리가 망각했던 것들을 되돌려줍니다.
최재은 작가의 작업도 그렇습니다. 작가는 자연을 재현하는 대신, 스스로의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합니다. 돌과 흙, 쇠와 물. 단단한 것과 부서지는 것, 사라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이 그의 작품 안에서 충돌하고 공존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변형시키듯, 자연도 인간이 남긴 것들을 품고 변화합니다. 그의 작업 앞에 선 순간,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죠.
자연을 담는 방식: 조각과 설치의 대화
작가는 자연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돌과 흙, 바람의 숨결 같은 자연의 재료는 그의 손에 들려, 강철과 캔버스, 유리 같은 인공의 몸과 얽히고 설킵니다. 생경한 조합처럼 보이지만,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의 숨을 섞는 지점에선 오히려 고요한 대화가 오고 갑니다. 작품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말 대신 재료로 말하고, 경계 대신 유동하는 관계를 택하는 것으로 말이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When We First Met)>는 작가가 2023년 2월부터 8월까지, 길가에서 마주친 143종의 들꽃을 하나하나 액자에 담아 그 이름을 붙인 작업입니다. 처음 보는 듯, 혹은 어딘가 익숙하나 제대로 불러본 적 없는 이름들이 입 안을 맴돌다, 마음속 어딘가에 가만히 스미게 됩니다. 작가는 이 수많은 들꽃들의 초상화 곁에, 존재를 대면하기도 전에 사라진 멸종 위기 식물 156종의 이름을 또 다른 벽면에 적어 두었습니다. ‘이름 부르기(To Call by Name)’라 불린 이 작업은, 존재를 기억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조용한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숱한 존재들에 마음을 열고 알아가려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방식임을 건네며 말이죠.

들풀과 종이를 활용해 만든 조명을 머금은 설치작품 〈Beacon Within〉아래, 쓰임을 다한 나무 판재와 빛 바랜 종이 위에 적힌 문장은 이 작업의 시간을 다시 열어 봅니다. "I WANT TO BE A TREE AGAIN, IF I AM REBORN…(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다시 나무가 되고 싶다)". 마치 나무의 목소리를 빌려, 작가가 우리에게 남기는 조용한 독백처럼. 들풀의 시간과 나무의 시간, 작가의 시간과 관객의 시간이 나란히 놓이는 이 전시는, 인간 중심의 세계에 '타자'의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자연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존재임을. 그리고, 그 관계를 사유하는 모두를 시인으로 만듭니다. 빛을 품은 듯한 설치는 돌, 유리, 금속의 물성을 이용해 자연과 인간의 서사를 엮습니다. 작품들은 마치 시인의 방처럼, 정적인 듯 흐르고, 단단한 듯 무너지죠. 그녀의 작품에서 자연은 작품 안에서 재료이기 이전에, 하나의 기억이자 언어처럼 작동합니다.
시간성과 자연: 변화하는 풍경
최재은 작가의 작품엔 늘 시간이 흐릅니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 구조이자 주제이며 몸 그 자체이죠. 기후, 계절, 습도 같은 요소가 작품의 표면을 바꾸고, 작품은 그것을 감내하거나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White Death〉(2023)은 그 변화의 정수이자, 사라지는 풍경에 대한 애도입니다. 작품은 바다에서 밀려온 죽음의 색을 담고 있습니다. 기억되지 못한 채, 이름 없이 희미하게 소멸하는 존재들이죠. 작가는 오키나와 바닷가에서 마주한 백화된 산호를 오래도록 응시하다, 편지를 쓰듯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삼십 년 전, 이 바다는 눈부셨습니다.”로 시작되는 문장은, 기록이자 경고였고, 동시에 예술가의 조용한 구조 신호였습니다. 뜻을 함께한 서른 명의 예술가들이 있었고 그렇게 모인 연대는 무게로 따지면 8톤에 달하는 하얀 산호 군락이 되어, 긴자 메종 에르메스의 투명한 전시장 안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하얗게 바랜 산호는 대리석 가루와 백색 실리콘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 흰색은 순수의 상징이 아니라 소멸의 징후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의 표면은 조금씩 닳아가도록 설계되었고, 빛과 관람객의 시선 속에서 점점 더 창백해집니다.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운 이 산호 군락은 정오의 태양 아래서는 눈부시지만, 저녁의 어둠 속에선 마치 사라진 생명들의 그림자처럼 웅크립니다. 산호 더미 사이, 조용히 놓인 깨진 유리 조각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너무도 분명해서, 마치 ‘자연과 인공이 어디까지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맨살처럼 드러납니다. 어두운 전시장, 거울 조각에 반사된 빛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와 함께 공간 전체를 찬연하게 감싸고, 그 안에서 삶과 죽음, 폭력성과 아름다움, 두려움과 슬픔이 묘하게 겹칩니다. 그 풍경 앞에서 인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잠시 멈추게 됩니다.
작품은 변화하는 표면과 조명은 단지 시각적인 효과를 넘어서, ‘무엇이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시간과 함께 묻습니다. 자연은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그 흔적과 침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듯이요. 다시 그 자리, 그러나 결코 같은 모습은 아닌 채로. 작품 속 작가는 독백하듯 말을 맺는 것만 같습니다. “행성 의식.” 그것은 우리가 이 세계와 맺어야 할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며, 사라져가는 존재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세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요.
인간과 자연의 경계에서: 관객과의 소통
경계란 늘 정해진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선을 일부러 흐리게 만듭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그것을 흐리는 인간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를테죠.

이번 국제 갤러리 K3 전시장에서는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진행해 온 ‘DMZ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대지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프로젝트는 이제 〈자연국가(Nature Rules)〉의 단계에 이르러,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생태 회복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데 집중하죠. DMZ, 그곳은 처음 상상했던 ‘손상되지 않은 땅’이 아니었습니다. 남북의 군사적 개입은 숲을 조용히 분해하고, 생태계를 단절시켰죠. 작가는 ‘생태 현황 분석도’를 그려가며, 파편화된 숲의 얼굴을 차분히 마주합니다. 식재 가능 구역을 나누고, 필요한 종자와 그 양을 계산하는 데만 몇 해가 걸렸습니다.

이제, 작가는 여전히 지뢰가 매설된 땅에 자그마한 종자 볼(seed bomb)을 드론으로 뿌릴 준비를 합니다. 100원에 한 개의 종자 볼을 기부할 수 있는 웹사이트가 마련되었고, 관객은 지도 위에서 자신의 구역을 선택해 이름을 남깁니다. 마른 꽃잎을 눌러 만든 병풍 안, 놓여 있는 컴퓨터 앞에서 관객은 자연의 회복을 함께 계획하는 존재가 됩니다. 작가의 모든 작업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어떤 존재였으며, 앞으로 어떤 존재로 남고자 하는가. 그의 작업을 통과한 재료들은 그 질문을 조용히 반복합니다. 바람이 흔든 자리처럼,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로 말이죠.
최재은의 작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것을 소비하고 소유하며, 사라짐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작가의 작업 속에서 자연은 그저 조용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돌은 오래된 시간을 품고, 산호는 백화의 흔적을 드러냅니다.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며,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인간 중심의 세계 속에서, 자연은 배경이 되고, 오브제가 되고,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업 앞에 서면, 우리는 자연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것이 흘러가고 변화하며, 우리와 같은 생명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게 되죠. 인간과 자연의 경계는 흐려지고, 우리는 그 속에 서서 잠시 멈추게 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는 묻게 됩니다. 자연은 인간의 거울인가, 아니면 타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