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서 만난 로컬 커뮤니티와 환대

동네 이웃의 울타리로 여행객을 보듬는 곳, 잠시섬

강화에서 만난 로컬 커뮤니티와 환대
강화유니버스 라운지, 아삭아삭 순무민박 외관

도시에 사는 사람은 ‘자립’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깁니다. 떠나온 고향으로부터의 자립, 가족으로부터의 자립, 떠나온 공동체로부터의 자립까지. 홀로서기라는 단어는 어른이 되는 것이 동의어인 것처럼 사용되기도 하죠. 자립은 단절로 이어집니다.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도시인들, 그들은 홀로서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연결되기를 갈망합니다. 최근에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커뮤니티 관련 플랫폼이 이를 증명하며, '경찰과도둑', '감자튀김모임' 등의 인기도 결국은 잊고 지냈던 ‘공동체’적인 감각을 체감하기 위해서이죠.

서울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섬, 강화에는 도시의 사람들에게 ‘잠시, 쉼’을 제안하는 포근한 공간이 있습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이상, 우리는 남이 아니라고요. 여행자가 동네 가게의 단골이 되고, 주민과 여행자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경계 없이 섞이는 곳. 도시에서는 잃어버렸던 ‘비빌 언덕’을 내어주는 이 마을에서, 저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결코 약함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서로에게 기대어 완성되는 강화의 따뜻한 유니버스에서 5박 6일의 시간을 소개합니다.


잠시섬이 여행객을 환대하는 방식

잠시섬은 크게 4개의 공간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여성 전용 숙소인 아삭아삭 순무민박과 잠시섬 빌리지, 남성 전용 숙소인 스테이아삭, 그리고 아삭아삭 순무민박 1층에 있는 강화유니버스 라운지. 처음 잠시섬에 가게 되면 숙소에 셀프 체크인을 하게 됩니다. 제가 묵게 된 곳은 스테이아삭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방과 아늑한 조도의 조명이 반겨주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로운 로컬을 만드는 키워드 11 선언문', 그리고 '강화유니버스 약속문'입니다. 일반적인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는 것은 예약을 하는 과정에서도 안내가 되어 있었지만, 선언문과 약속문을 보니 공간이 지향하는 바가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습니다.

침대 위에는 작은 웰컴키트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5000원 쿠폰, 웰컴 티, 공책, 그리고 작은 편지가 있었죠. 천천히 살펴보니 무엇 하나 동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웰컴 쿠폰은 로컬 카페에 세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고, 웰컴티는 강화의 티 브랜드 '차완'과의 협업으로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공책에는 제작 지원을 받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로고가 함께 있었죠. 작은 웰컴키트를 전함에 있어도 '강화유니버스' 혼자서만 전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강화 커뮤니티 속에서 탄생한 다정한 이야기들 덕분에 근사하고 세련된 호텔의 키트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에피소드별 미션과 회고 프로그램

체크인을 마친 후 혼자 시간을 보내다, 잠시섬 피플이 모이는 공간 '강화유니버스 라운지'로 향했습니다. 잠시섬은 강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다섯 가지 갈래로 제안합니다. 강화에 오는 길에 설문을 통해 강화를 찾는 이유에 스스로 답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맞는 에피소드를 제안하죠. 에피소드는 1명의 크루가 기획하고 운영을 하며, 각각 6개의 미션이 달려 있습니다. '로컬 카페에서 강화 쑥 디저트 먹기', '공설운동장 러닝 후 잔디밭에 누워서 쿨다운 해보기' 처럼 여행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미션이 있는 한편, '아침에 나를 위해 채소나 과일 한 가지 챙기기', '쓸모없을 것 같아도 내 눈엔 예쁜 장면 9컷 찍기'와 같은 루틴/창작과 관련된 미션도 있습니다. 잠시섬과 강화에서 머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다양한 미션과 에피소드를 조합하여 구성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별다른 계획 없이 강화를 찾았었는데, 에피소드를 따라가며 일정을 구성하다 보니 5박 6일의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가득 찼습니다.

에피소드 선택과 미션 수행은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느슨한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한 가지 강하게 권고되는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매일 저녁 9시 30분에 열리는 회고입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머무를지, 머무르는 동안 무엇을 할지, 어떤 미션을 수행할지는 모두 자신만의 호흡에 맞춰서 결정하지만 하루 한 번 있는 회고 시간은 잠시섬에 머무르는 모두가 한자리에 모입니다. 라운지에 크루와 여행객이 모두 모여 자신이 보낸 하루를 설명하고 별점을 매기죠.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강화도 여행객'에서 '잠시섬 피플'로 정체화를 하게 만드는 강력한 계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회고에서 만난 사람이 내일 떠날 수도, 내일은 또 새로운 여행객이 찾아올 수도 있지만 잠시섬에 머무른 사람이라는 공통의 유대감이 생기는 시간입니다.


매일 열리는 커뮤니티 프로그램

매일 진행되는 다채로운 커뮤니티 프로그램은 적극적으로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기를 제안합니다. 커뮤니티는 작게는 라운지에 모여 회고를 하거나 책을 읽는 프로그램 부터, 함께 요리를 하거나 활동을 하는 모임, 온천이나 약쑥 체험관 같은 로컬 공간에 함께 가서 여행의 일부를 함께 하는 방식까지 다양합니다. 처음으로 참여했던 프로그램은 '제철 요리와 명상'입니다. 강화의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손질하고 요리하며 명상의 시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이었죠. 주인공은 강화의 순무였습니다. 순무를 직접 키우신 생산자분께서 직접 가져오셔서 의미가 더해지기도 했습니다. 평소의 식생활, 식습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요리를 매개로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프로그램은 마지막 날 진행되었던 '비건 디너 파티'입니다. 독서 모임과 소셜 다이닝이 결합된 형태의 모임이었는데, 좋은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은 후 만난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역시나 강화의 로컬 식재료로 만든 정성이 가득 담긴 요리, 따뜻하게 우려낸 차와 로컬 카페의 디저트로 테이블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만난 강화의 이야기가 한 상에 모두 모인 것만 같았죠.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음식 하나하나, 재료 하나하나가 무엇으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공동체 감각은 그저 사람이 모인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간의 연결을 만들어줄 강한 중심, 강화유니버스에는 그 중심에 '동네와의 연결'이 있었습니다.


강화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여행객으로서 보낸 쉼의 시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동네의 커뮤니티와 연결되고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음을 할 수 있는 '연결'의 시간이었습니다. 동네 전체와 연결되어 여행객을 맞이해 주고, 자신에 맞는 방식으로 동네와 관계맺기를 제안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죠. 강화의 청년과 주민들이, 또 외부에서 찾아온 여행객이 모여 만들어지는 연대와 의존의 장 강화 유니버스. 홀로서지 않아도 괜찮은 곳, 서로에게 의존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삶을 배울 수 있는 강화로 머지 않아 다시 떠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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