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크레딧까지 감상하는 사람들

영화가 끝나는 시점은 언제일까

엔딩 크레딧까지 감상하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Unsplash

상영관에서 조명이 켜지는 순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퇴장하기 시작한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들. 불 켜진 상영관에는 오직 소수의 관객만이 자리를 지키며 스크린을 주시한다. 그들은 검은 화면에 흰 이름만 빼곡한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나서야 일어선다. 한 상영관에 모여 앉아 같은 영화를 봤지만, 감상이 끝나는 시점은 제각기 다른 것이다. 일부 관객은 엔딩 크레딧을 영화가 끝났으니 퇴장하라는 시그널로, 일부는 영화의 마지막 챕터로 받아들인다. 문득 엔딩 크레딧도 영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부가적인 정보에 불과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영화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엔딩 크레딧은 무엇인가

이미지 출처: IMDb

엔딩 크레딧이 보편적으로 영화에 삽입된 건 1970년대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The End’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가 끝나거나, 주요 제작진과 배우의 이름을 오프닝에 띄울 뿐이었다. 지금처럼 엔딩 크레딧에 수많은 이름을 새겨넣은 영화는 1973년,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청춘낙서>가 대표적이다. 당시 스태프들은 제작비가 부족해 금전적인 보상을 받기 어려웠는데, 그 대신 감독이 엔딩 크레딧을 만들어 그들의 이름을 남겼다고. 함께 고생한 영화인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마음이 초기 엔딩 크레딧이 된 것이다. 이후 엔딩 크레딧은 점차 영화에 빠지지 않는 요소로 자리 잡았고, 더 나아가 영화적 연출이 더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쿠키 영상이다. 크레딧 중간이나 마지막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쿠키 영상은 주로 팬 서비스 차원으로 제공되며, 간혹 후속작에 대한 힌트가 되기도 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지루한 크레딧 영상을 반강제로 감상할 때가 있다. 이처럼 엔딩 크레딧은 영화 연출의 일부로 기능할 때가 있으며, 이때 크레딧은 누구나 ‘기다려서 볼만한’ 존재로 변모한다.

이미지 출처: 영화 ‘어벤져스’

한편 엔딩 크레딧은 영화의 허구적 세계관과 현실이 맞닿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크레딧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사진이나 인터뷰, 혹은 배우 ‘성룡’의 영화 크레딧에 삽입된 NG 장면 모음 같은 사례를 떠올려 보자. 이 사례들은 모두 비하인드 씬을 공개하면서 작품에 대한 친밀감이나 리얼리티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특별한 연출을 하지 않아도, 사실 모든 엔딩 크레딧은 영화와 바깥 세계가 이어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가 촬영된 장소, 삽입된 음악, 제작 및 투자사, 협업한 아티스트 등 영화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존재들. 영화라는 종합 예술이 스크린에 구현되기까지의 고군분투가 엔딩 크레딧을 통해 드러난다. 즉, 크레딧을 감상하는 시간은 영화가 단지 고립된 허구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체감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관객들은 영화를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엔딩 크레딧은 실제 상영 환경에서 온전히 존중받고 있을까?


영화의 끝을 설계하는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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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관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불이 켜지고 퇴장 문이 열리는 걸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이 절차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안전상의 이유 때문이다. 어두운 통로나 계단에서 넘어져 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영화관에서는 조명을 켜준다. 영화를 다 본 관객들의 원활하고 안전한 퇴장을 돕는 것이다. 물론 영화관은 운영 시간 동안, 상영 스케줄이 빠르게 회전되어야 하는 상업적 공간이다. 직원들은 상영이 끝나는 대로 재빨리 청소를 마치고 다음 회차 관객을 맞이해야 한다. 반면, 소수의 아트하우스 영화관에서는 관객의 퇴장 여부와 무관하게 크레딧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않는다. 관객들 역시 캄캄한 상영관에 다 함께 남아 크레딧을 감상한다. 상영관에서 조명을 켜는 타이밍. 이 작은 차이는 관객의 태도를 바꾼다. 간혹 엔딩 크레딧을 보지 않고 퇴장하는 관객이 있지만, 상영 도중에 화장실을 가는 사람처럼 허리를 숙이고 조용히 자리를 뜬다. 아직 다른 관객들이 크레딧을 감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일반 영화관에서는 관객이 퇴장하기 때문에 불을 켠 걸까, 불을 켰기 때문에 관객이 퇴장하는 걸까?

이미지 출처: Netflix

영화관이 조명을 켜서 관객의 퇴장을 돕는다면, OTT 플랫폼은 퇴장이란 옵션을 버튼 형태로 삽입한다. ‘넷플릭스’, ‘왓챠’ 등의 플랫폼에서 영화를 감상하면 엔딩 크레딧 타이밍에 맞춰 여러 선택지가 등장한다. 방금 본 영화에 별점을 매기거나 ‘좋아요’를 누를 수도 있고, 엔딩 크레딧을 마저 볼 수도, 다른 추천작의 예고편을 감상할 수도 있다. 플랫폼마다 상이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화면을 아주 작게 축소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 별다른 제스처가 없다면 플랫폼은 자동으로 크레딧을 끊고 다른 작품을 홍보한다. 여러 편으로 나뉜 시리즈의 경우 다음 에피소드가 자동으로 재생되기도 한다. 이는 OTT 플랫폼의 구조상, 여운의 시간은 최소화하고 플랫폼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영화의 끝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조명이나 버튼처럼 영화를 제공하는 환경이 먼저 결정짓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의 영화 감상 태도 및 문화는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크레딧을 감상하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영화 ‘파벨만스’

엔딩 크레딧을 보지 않는 관객들은 영화의 스토리가 종료됨에 따라 즉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들에게 크레딧은 굳이 볼 필요 없는, 일종의 출처 표기일 수 있다. 마치 한 권의 책을 완독하고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기록된 초판 인쇄 일자와 출판사 주소 등의 정보를 모든 독자가 꼼꼼히 읽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독서 경험은 작가의 마지막 문장, 혹은 편집자나 평론가, 옮긴이의 말에서 끝날 때가 더 많다. 마찬가지로 엔딩 크레딧을 과감히 스킵하는 사람들은 검은 화면에 나열된 정보를 굳이 왜 감상해야 하는 걸까 의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간혹 퇴장하지 않고 상영관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크레딧을 보지 않지만 스마트폰으로 쿠키 영상의 여부를 검색하는 사람들, 옆자리 지인과 영화의 감상평을 나누는 사람들, 뻐근한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하는 사람들. 행동과 태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크레딧을 영화의 범주에 넣지 않는 관객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지 출처: 영화 ‘브루탈리스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레딧을 끝까지 감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크레딧에 가족이나 지인의 이름이 없더라도 자리를 지키는 관객들. 이들은 왜 엔딩 크레딧을 감상하는 걸까? 크레딧은 영화 본편의 내용과 무관한, 바깥 세계의 TMI 정보일 수 있다. 그러나 크레딧의 정보는 영화를 한층 더 내밀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장소와 음악의 출처를 알아볼 수도 있고, 액션 씬에 몇 명의 스턴트 배우가 동원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관객은 영화의 안과 밖을 모두 감상하는 체험을 하면서, 영화와 한 뼘 더 가까워진다.

또한, 제작진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의미로 크레딧을 보는 관객도 있다. 자신의 감상 행위가 제작진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나 후원을 하진 못하지만, 작품 뒤에 숨은 이름을 읽는 것으로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보는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애착 관계가 형성된다. 마찬가지로 작품에 대한 애정이 곧 크레딧 감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본편의 이야기처럼 영화의 알맹이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껍데기까지 온전히 즐기고 싶은 마음. 평소 크레딧을 보지 않던 사람들도 정말 마음에 든 영화라면 끝까지 여운을 즐기며 상영관에 남는다.


영화는 언제 끝나는가

이미지 출처: 영화 ‘가여운 것들’

엔딩 크레딧을 두고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관객들. 그렇다면 엔딩 크레딧 역시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영화 티켓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티켓에 표기된 러닝타임은 명백히 크레딧이 포함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내외 주요 영화제의 출품 규정에서도 러닝타임은 크레딧을 포함한 것으로 측정된다. 이는 영화가 공식적으로 크레딧까지 포함해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엔딩 크레딧에 포함된 아트워크, 타이포그래피, 음악 등의 연출적 요소도 크레딧을 영화에 귀속시킨다.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디자인한 크레딧은 영화의 맥락과도 어우러지며, 연출의 종결부라고 할 수 있다. 법적으로도 크레딧은 영화처럼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단순히 스태프의 이름에는 저작권이 없지만, 크레딧 속 모든 아트워크와 음악은 창작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영화 ‘시네마 천국’

엔딩 크레딧은 영화의 일부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관객이 크레딧을 끝까지 감상해야 하는 건 아니다. 크레딧을 보지 않았다고, 영화의 마지막을 놓친 것이라며 비난할 수 없듯이 말이다. 감상의 권리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다. 상영관의 불이 켜지면 누구나 언제든 퇴장할 수 있고, 반대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관객이 사라지더라도 끝까지 자리에 남아 크레딧을 감상할 수 있다. OTT 플랫폼이 10초를 카운팅하며 다른 추천 작품을 제시하더라도 꿋꿋이 크레딧에 머무는 선택지가 있다. 이처럼 모든 관객은 개인적 차원에서 감상을 시작할 수도, 끝맺을 수도 있다. 따라서 영화가 끝나는 타이밍은 영화감독이나 제작사, 영화관이나 플랫폼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로지 관객의 손과 발, 눈과 귀가 결정하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성숙한 관객의 태도라면 상영관 조명이 켜질 때 퇴장하더라도, 여전히 자리에 남아 크레딧을 감상하는 다른 관객의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일 것이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면 독특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모든 관객이 감상을 이어가다가, 다 함께 박수를 치는 것이다. 영화관과 영화제의 차이는 또 무엇일까. 일반 영화관과 같은 상영작, 같은 크레딧이지만, 영화제에는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관객들이 똘똘 뭉쳐 감상하는 일종의 공동체감을 형성한다. 굳이 불 켜진 상영관에 남아서 엔딩 크레딧을 감상하는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작품에 대한, 영화 산업과 제작진에 대한, 영화를 함께 보는 관객들에 대한 애정에서 기인하는 마음. 엔딩 크레딧은 대체로 ‘반드시 봐야 할 필요는 없는’ 정보의 영역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감상해야 마땅한 ‘영화의 클라이맥스’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