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의 새로운 얼굴 'NEWoMAN TAKANAWA’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반복의 미학

쇼핑몰의 새로운 얼굴 'NEWoMAN TAKANAWA’

비슷한 간판, 층만 달라질 뿐 내용은 복사된 매장들. 쇼핑몰을 방문하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죠. 대형 쇼핑몰은 무엇보다 효율성이 중요합니다. 이미 검증된 구조와 구성, 반복되는 동선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할 만하죠.

그런데 도쿄 다카나와 게이트웨이 시티에 새롭게 탄생한 ‘NEWoMAN TAKANAWA(이하 뉴먼 타카나와)’는 반복의 공식을 조금 다르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같은 브랜드라도 다른 매장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죠. 이곳의 구조와 분위기를 따라 매장들이 각자 ‘타카나와 버전’으로 재편집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단순히 브랜드 간판과 인테리어만 바꿔서는 새로움을 주기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을까요? 뉴먼 타카나와에서 경험한 반복과 변주, 새롭게 제안한 쇼핑몰의 풍경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하나의 공간을 완성하는
둥근 형태의 반복

뉴먼 타카나와에 처음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화려한 브랜드 간판이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눈을 어디에 두어도 둥근 것들이 보였죠. 곡선의 선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자연스럽게 흐르고, 매장 안 지열대의 모서리마저 둥근 형태로 이어져 있습니다. 걷다 보면 시야 속에서 둥근 선들이 계속 겹치고 반복되는데요. 마치 공간 전체가 ‘곡선의 파도’와 같은 리듬으로 채워진 모습이었습니다.

이 둥근 형태의 반복은 몸의 움직임과도 연결됩니다. 매장 전체가 날카로운 모서리나 직선의 형태가 아닌, 둥근 형태로 이어져 있는데요. 자연스럽게 사람의 동선도 공간을 따라 부드럽게 돌아가며 움직입니다. 벽과 기둥이 직선으로 공간을 구분짓는 대신, 곡선이 다음 행선지로 연결해주는 느낌이죠.

흥미로운 건 이 곡선이 특정 구역에만 쓰인 포인트 장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카페의 테이블, 레스토랑 매장의 입구와 천장, 패션 브랜드의 디스플레이 테이블, 휴식 공간의 벤치까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오브제들이 같은 ‘둥근 언어’를 나눠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매장을 옮겨 다니면서도 공간이 끊어졌다는 느낌이 아닌, 한 편의 긴 이야기를 읽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복제된 매장이 아닌
변주된 브랜드의 얼굴

이곳에도 우리가 잘 아는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매장’으로 복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간판은 익숙한데, 안을 들여다보면 디스플레이, 매장의 컨셉, 색상 등 이전에 봤던 매장과는 조금 다르죠. 브랜드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이 건물의 구조와 소재, 주변 매장과의 관계에 맞춰 새로운 얼굴로 탄생한 버전이었습니다.

이솝 매장은 뉴먼 타카나와에서 실험적인 변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트로-퓨처리즘 컨셉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미지의 매장을 선보였는데요. 바닥, 벽, 천장, 집기를 모두 동일한 연한 그린 계열로 통일해 다른 이솝 매장보다 극도로 적은 색상을 활용했죠. 또한 살짝 바랜 듯한 색감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가장 큰 변주는 실내 조형이었는데요. 벽과 집기를 하나의 덩어리처럼 이어 붙여,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매장으로 탄생했습니다.

이런 방식의 반복은 소비자에게도 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여기에도 있네”에서 끝나는 반복이 아니라, “여기서는 어떻게 다를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 차이를 발견하려고 매장 안을 자연스럽게 보게 되고, 공간 전체를 새로운 큐레이션으로 읽을 수 있죠. 뉴먼 타카나와는 브랜드를 나열하는 대신, 각 매장의 개성으로 새로운 얼굴로 변주하고, 재탄생시키고 있습니다.

뉴먼 타카나와는 브랜드를 나열하는 대신, 각 매장의 개성으로 새로운 얼굴로 변주하고, 재탄생시킨다.

반복과 변화를 통해
사운드 풍경을 만드는 BGM

쇼핑을 하는 고객과 점원의 대화, 식사 중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울리는 발소리. 뉴먼 타카나와에 머물다보면 반복되는 소리들 외에, 강의 시냇물이나 새와 벌레의 소리 등 자연을 담은 소리가 퍼지고 있는 것을 듣게 되는데요. 사운드 브랜딩 에이전시 ‘Soundscape Design Lab’에서 뉴먼 타카나와의 BGM을 기획했습니다.

뉴먼 타카나와는 사운드 스케이프 디자인과 함께 음향기기, 스피커 등을 맞추어 특별한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자연이나 거리를 걷다 보면 들리는 소리도 조금씩 변하죠. 공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른 소리를 듣게 되는데요. 뉴먼 타카나와 BGM도 각 장소마다 변화하며 다양한 사운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의 사운드 기획, 작곡을 담당한 사운드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침에 녹음한 소리는 ‘아침의 소리’라고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아침 시간에 나오는 소리는 반드시 아침에 녹음한 소재를 사용합니다. 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매장의 컨셉과 타카나와의 역사, 자연 환경을 담아 소리와 함께 풍경을 볼 수 있는 사운드 스케이프를 형성했습니다. 매장에서 무한 반복되는 BGM이 아닌, 장소와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반복하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뉴먼 타카나와 공간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로 자연의 소리,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사운드 풍경을 들을 수 있다.

뉴먼 타카나와를 걸으며 가장 많이 떠오른 단어는 ‘새로움’보다, ‘반복’이었습니다. 둥근 모양이 다시 나타나고, 익숙한 브랜드가 또 등장하지만, 그 모든 것이 조금씩 다른 위치와 조합으로 배치되어 있었죠. 이런 반복은 공간 경험을 천천히 축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도시의 상업 공간에서 반복은 피할 수 없는 전제입니다. 도쿄의 도심에서 뉴먼 타카나와가 잘 만든 것은 한 번의 인상적인 풍경이 아니라 ‘여러 번 다시 오고 싶은 매력’인 것 같습니다. 반복을 줄이는 대신, 반복의 리듬과 퀄리티를 바꾸며 다시 보고 싶은 공간으로 이끌고 있죠. 그 결과 출근길에 잠깐 들르는 사람에게도, 의도적으로 방문한 사람에게도, 각자의 리듬으로 다시 찾아올 이유를 하나씩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반복과 변주, 그 사이 리듬을 맞추며 도시와 방문객들에게 공공의 자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