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에서 발전으로

작은 재료에서 시작되는 클래식 음악 세 작품

반복에서 발전으로
이미지 출처: Unsplash - Europeana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이 생깁니다. “이 부분, 아까 들었던 것 같은데?” 하고 처음에 들었던 리듬이나 선율이 다시 등장하는 것 같은 순간 말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 보면 완전히 같은 음악은 아닙니다. 속도가 조금 달라지기도 하고, 다른 악기가 연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재료인데도 음악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이런 짧은 단위의 주제를 동기(motif.영, motiv.독)라고 부릅니다. 몇 개의 음, 혹은 짧은 리듬처럼 음악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작곡가는 이 작은 조각을 반복하고변형하며 곡을 전개합니다. 음악 이론에서는 이 과정을 전개(development)라고 설명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음악의 발전이 반드시 새로운 재료를 계속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등장한 재료가 다른 위치에 놓이고, 다른 기능을 맡고, 다른 성격을 띠는 과정 속에서 음악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특별한 몇 작품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이 작은 동기에서 출발해 반복과 변형을 통해 전개됩니다. 다만 어떤 작품들은 그 과정을 유난히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전, 낭만, 그리고 20세기의 세 교향곡을 통해 그 장면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작은 재료 하나가 어떻게 곡의 구조가 되고, 반복이 어떻게 발전으로 이어지는지를 느껴보세요.


네 개의 음이 만든 구조

L.V.Beethoven : 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 

“다다다단-” 이 작품은 아마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시작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도입은 선율이라기보다 짧-짧-짧-길의 리듬형, 즉 리듬 동기(혹은 리듬 모토)에 가깝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이 작은 조각을 반복하고 변형하며 음악의 흐름을 만들어 갑니다.

베토벤의 독창성은 이 단순한 재료를 악장 전반을 조직하는 원리로 쓰는 데 있습니다. 처음 등장한 리듬은 이후 음악 곳곳에서 계속 모습이 바뀌어 나타납니다. 음정이 달라지기도 하고, 다른 화성 위에 놓이기도 하고, 악기가 바뀌면서 성격이 달라지기도 하죠. 때로는 더 작은 조각으로 분해되어 음악 속에 숨어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의 재료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며 음악을 이끌어 가는 방식을 동기 발전(motivic development)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등장하기보다 이미 등장한 재료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긴장을 만들어 내는 방식입니다. 마치 같은 단어라도 문장 속에서 역할이 달라지면 의미가 달라지는 것처럼요. 같은 리듬이라도 어디에서 등장하는지, 어떤 화성 위에 놓이는지, 어떤 악기가 연주하는지에 따라 다른 표정을 갖게 됩니다.

이 작품을 들으실 때 네 음의 리듬을 따라가 보셔도 좋겠습니다. 어느 순간 이 작은 재료가 악장 전체를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변화의 축적

J.Brahms :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이 악장의 시작에는 아래로 내려오는 짧은 선율이 있습니다. 몇 개의 음으로 이어진 단순한 선율입니다. 그런데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는 이 선율을 그대로 반복하며 전개하지 않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다른 성부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어떤 순간에는 음정 간격이 달라집니다. 하나의 재료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아주 작은 변화를 계속 더해 갑니다. 선율이 다른 위치로 옮겨 가고, 화성 속에서 다른 역할을 맡고, 여러 성부에 나뉘어 나타나면서 음악의 질감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러한 방식을 음악에서는 발전적 변형(developing variation)이라고 부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갑자기 등장하기보다, 이미 제시된 재료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며 음악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 점에서 브람스의 음악은 베토벤과 다른 인상을 줍니다. 베토벤의 동기가 강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음악을 끌고 간다면, 브람스는 비슷한 선율을 여러 성부에 분산하여 배치 시키며 변화를 축적합니다. 그래서 이 악장은 비슷한 움직임들이 서로 겹쳐지며 점점 더 밀도있는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이 작품을 들으실 때 처음 등장하는 하행 선율의 움직임을 기억해 보세요. 이후 음악 속에서 비슷한 흐름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순간들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같은 동기, 달라지는 의미

D.Shostakovich : Symphony No. 5 in D minor, Op.47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Dmitrijewitsch Schostakowitsch)’의 교향곡 5번 1악장은 같은 재료가 반복되는데도 장면의 인상이 계속 바뀌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음악 이론적으로 말하면, 동기의 형태를 크게 바꾸기보다 오케스트레이션(누가 연주하는가)과 다이내믹(dynamics, 얼마나 크게/강하게 울리는가)을 통해 성격을 바꾸는 경우입니다. 쉽게 말해 같은 음악이라도 연주하는 악기와 음량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장면처럼 들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음형이 다시 등장할 때, 현악기에서 낮은 음역으로 나오면 긴장을 유발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음향이 두꺼워지며 관악기·타악이 더해지면 같은 재료가 더 단단하고 에너지있는 성격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전개부에서 음악이 행진의 성격으로 바뀌는 대목은 이러한 ‘오케스트레이션의 변화’가 분위기를 바꾸는 대표적인 순간입니다. 이는 음악의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기보다, 같은 말을 각기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 형태에 가깝습니다.

이 지점에서 앞의 두 작품과 차이가 드러납니다. 베토벤이 하나의 동기를 뚜렷하게 전개해 구조를 만들고, 브람스가 작은 변화를 계속 축적해 음악의 밀도를 발전시킨다면, 쇼스타코비치는 같은 재료를 다른 음악적 상황 속에 놓아 음악의 기능과 인상을 바꿉니다. 그래서 이 악장을 듣다 보면 새로운 재료가 계속 등장하는 것 같기보다, 이미 들었던 음악이 다른 장면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들으실 때 같은 음형이 다시 등장하면, 지금은 어떤 악기가 말하고 있는지, 소리가 얼마나 커졌는지를 함께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 순간 ‘변형’이 음형의 변화만이 아니라, 음악적 맥락이 바뀌며 의미가 달라지는 방식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것은 완전히 다른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예술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베토벤의 네 개의 음, 브람스의 짧은 선율, 쇼스타코비치의 단순한 동기. 처음에는 작고 단순해 보이는 조각들이 반복되고, 다른 자리로 옮겨지고, 다른 소리 속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음악 전체의 방향을 만들어 갑니다. 교향곡이라는 큰 구조도 결국은 이런 작은 재료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발전이란 새로운 것을 계속 더하는 일이기보다, 이미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조직하는 과정에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같은 재료가 다른 맥락 속에서 다시 들리는 순간, 음악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음악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