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울리지 않는 음악
클래식 음악 안에서 ‘의존이 들리는 방식’을 듣는 세 장면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소리를 따라가게 됩니다. 눈에 띄는 악기나 중심에 선 연주자, 혹은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 선율이 그 기준이 되곤 합니다. 음악을 듣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특정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청취 방식은 음악 안에 존재하는 관계를 단순화하기도 합니다. 여러 소리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음악을 상호작용의 구조라기보다 특정 주체가 이끄는 서사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내악에서는 소리가 크거나 음역이 높은 악기가 중심처럼 느껴지고, 협주곡에서는 독주자와 이를 받쳐주는 오케스트라의 구도로 음악을 이해하기도 합니다. 익숙한 방식이지만, 실제 음악이 작동하는 구조와는 어긋나는 지점이 생깁니다.
이번 큐레이션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음악이 의존적이라고 말하기보다, 그 의존이 청취 과정에서 분명하게 들리도록 설계된 음악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특정 선율이나 악기, 연주자에게 귀를 고정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음악은 비로소 관계의 구조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혼자 울리지 않는 음악’은 연주자의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이 작동하는 방식, 곧 선율과 선율, 파트와 파트가 서로를 전제로 움직이는 구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전개가 유지되지 않고, 각자의 역할이 결합될 때 비로소 음악이 성립하는 작품들을 만나보세요.
가장 노골적으로 들리는 의존
J.S.Bach: Prelude & Fugue in c minor, BWV 847
푸가는 여러 성부가 서로를 전제로 삼아야만 성립하도록 설계된 음악 형식입니다. 하나의 선율은 홀로 완결되지 않으며, 반드시 다른 목소리의 응답과 결합될 때 다음으로 나아갑니다. 이 큐레이션의 출발점으로 푸가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푸가는 이러한 의존을 음악의 규칙으로 명시하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Prelude & Fugue in c minor, BWV 847》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이 곡집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마다 24개의 모든 장·단조 조성에 대해 프렐류드와 푸가를 한 쌍씩 배치하고 있습니다. 흔히 조성 체계를 정립한 이론적 성과로 언급되지만, 핵심은 조성 자체보다 여러 목소리의 관계를 조직하는 사고 방식에 있습니다.
푸가에서 한 성부가 주제를 제시하면, 다른 성부들이 이를 서로 다른 음역에서 차례로 모방하며 진입합니다. 흔히 ‘기악적 돌림노래’에 비유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선율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주제가 다른 성부의 응답을 통해 끊임없이 의미를 확장해간다는 점입니다. 각 성부는 앞선 소리와 이후에 등장할 소리를 동시에 의식해야만 다음 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푸가에서의 작곡은 여러 목소리 사이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조율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건반 악기로 연주될 때 이 구조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연주자는 한 명이지만, 두 손으로 여러 성부를 동시에 다뤄야 합니다. 각 성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되, 서로를 의식하지 않으면 곧바로 충돌하거나 무너집니다. 연주자는 하나지만, 청취자는 어느 한 목소리에도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푸가는 이렇게 의존을 음악의 전제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원형이 됩니다.
역할 분산을 통해 드러나는 의존
L. V. Beethoven: String Quartet in c sharp minor, Op.131
실내악(chamber music)은 본래 궁정의 방이나 살롱처럼 소규모 공간에서 연주되던 음악을 의미합니다. 각 연주자가 한 파트를 맡아 음악의 전개를 직접 책임지며, 지휘자가 전체를 통제하기보다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반응하며 곡을 완성하는 구조로 전개됩니다. 현악 4중주는 이러한 실내악의 성격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편성으로,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각각 하나의 성부를 맡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String Quartet No.14 in c sharp minor, Op.131》은 이러한 책임 구조가 극단적으로 구현된 작품입니다. 일곱 개의 악장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며, 전통적인 4악장 틀을 해체한 채 하나의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말년의 베토벤이 탐구했던 과제인 “작은 편성 안에서 어떻게 복잡한 구조를 유지할 것인지”가 이 작품 안에서 실현됩니다.
이 작품의 1악장은 푸가로 시작합니다. 바흐의 푸가에서 확인했던 ‘쫓고 쫓기는 모방의 규칙’은 여기서 단순한 기법을 넘어, 네 성부가 서로를 전제로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으로 확장됩니다. 이후 전개에서도 선율과 역할은 특정 파트에 고정되지 않고 네 성부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방금까지 배경처럼 들리던 파트가 다음 순간 전개의 열쇠를 쥐고, 중심이었던 선율은 자연스럽게 다른 성부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청취자는 한 연주자를 따라 음악을 이해하기 점점 어려워집니다. 어느 한 파트도 오래 중심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보다, 각 파트가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며 전개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유지됩니다. 실내악에서의 의존은 이렇게 역할이 분산된 구조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오해된 구조를 뒤집으며 드러나는 의존
J. Brahms: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협주곡(concerto)은 어원적으로 ‘함께 결합하다’와 ‘경쟁하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닙니다. 바로크와 고전시대를 거치며 이 장르는 점차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대비 구조로 정형화되었습니다. 비발디나 모차르트의 협주곡에서처럼, 독주자가 전면에 서고 오케스트라는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협주곡은 독주자의 기교와 개성을 드러내는 장르로 더욱 강화됩니다.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의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은 이러한 인식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브람스가 남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동료이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아힘에게 헌정되었으며, 두 사람의 긴밀한 교류 속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브람스는 전통적인 3악장 형식을 따르면서도, 독주자 중심에서 벗어나 독주와 오케스트라가 대등하게 호흡하는 교향곡적 협주곡으로 이 장르를 확장합니다.
이 성격은 2악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서정적인 주제는 바이올린이 아닌 오보에에 의해 먼저 제시되고, 바이올린은 이를 변주하며 이어받습니다. 선율의 출발점이 독주자에게 고정되지 않는 이 구조는 협주곡에 대한 기존의 기대를 흔듭니다. 1879년 브람스의 지휘와 요아힘의 협연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즉각적인 호평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파블로 데 사라사테를 비롯한 일부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이러한 구성에 불만을 표하며 연주를 거부했고,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기교적으로 까다로운 독주 파트와 교향곡처럼 쓰인 오케스트라 파트를 이유로 “바이올린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이올린에 반(反)하는 작품”이라 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담한 선택은 협주곡을 ‘나의 음악’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으로 확장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낭만시대 협주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됩니다.
이제 한 번, 귀를 어디에 둘지 정하지 않은 채 다시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선율을 따라가기보다 소리가 어떻게 건네지고 이어지는지에 잠시만 집중해보세요.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물러나는 소리, 전면에 서지 않지만 구조를 지탱하는 움직임, 그리고 서로를 전제로 유지되는 긴장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관계들이 인식되는 순간, 음악은 이전보다 한층 입체적이고 다른 재미로 다가옵니다.
이 글이 클래식을 이해하기 위한 설명서라기보다, 듣는 방향을 조금 넓혀보는 하나의 제안으로 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