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관객에서 통과하는 몸으로
공간·시간·접속으로 감각하는 현대예술 작품 3선
우리는 왜 자꾸 이해부터 하려 할까요? 현대예술을 감상할 때 우리는 종종 작가의 의도나 제작 배경, 예술사의 계보 같은 설명을 먼저 찾습니다. 하지만 현대예술의 흥미로운 점은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이미 감상의 언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죠.
최근 미술관에서 전시를 본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낯선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본능적으로 긴장하고, 거대한 구조물 앞에서 압도감을 느끼죠. 어둠을 가르는 소리의 진동이 피부에 닿는 순간, 감각을 통해 우리 몸은 작품을 곧장 이해합니다. 몸에 입력되어 있는 감각 체계가 이미 작품을 만나기 위한 배경지식처럼 작동하는 것이죠.
현대예술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양식, 즉 스타일을 발명하기 위해서만 발전해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객과 작품이 어떻게 만나는지에 주목해 그 접점을 바꾸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죠. 어디에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가의 질문을 중심으로 몸의 감각을 깨우는 현대예술 작품 3선을 소개합니다.
1. 공간: 숨 쉬는 건물, 생태계가 된 미술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오랫동안 우리는 미술관에서 낯선 용어가 많은 전시 서문과 함께 배치된 작품들을 만나왔습니다. 어려운 단어를 곱씹으며 의도적으로 설계된 동선을 따라 작품들을 바라보며 이해하기 위해 애썼죠.
그런데 어떤 전시는 설명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만듭니다. 관객이 이해하고 해석하기 전에 몸으로 먼저 반응하도록 설계되었죠. 지난 2월 종료된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전시 <적군의 언어>가 그렇습니다.

비야르 로하스는 미술관 자체를 낯선 생태계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기존 출입구는 흙더미로 막혀 있고, 전시 서문이 쓰여 있었던 것 같은 벽은 조각난 글자의 흔적만 남아있죠. 전시는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전시장을 포함하여 복도·계단·화장실·극장까지 전체 건물에 걸쳐 조성되었습니다.

흙과 식물 사이를 거닐고,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설 때마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듯한 경험은 건물을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계단을 오를수록 덥고 습해지는 느낌은 착각이 아니라 몸이 먼저 감지한 진실입니다. 작가가 건물 내부의 온·습도 제어 장치를 의도적으로 멈추어 미술관의 섬세하게 관리되는 표준적인 환경을 해체한 것이죠. 이는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보다 우리를 환경을 감각하는 본능으로 되돌아가게 만듭니다.

이 전시는 비야르 로하스가 개발한 ‘타임 엔진(Time Engine)’에서 게임 엔진과 인공 지능이 함께 만든 가상 세계의 디지털 이미지들을 현실로 옮겨와 구현하는 방식으로 작업되었습니다. 작가의 오랜 관심사인 인간이 멸종 위기에 있거나 이미 멸종한 세계를 상상하도록 돕죠. 미술관은 이제 단지 감상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관객에게 낯선 느낌을 유발하는 하나의 거대한 경험 장치가 됩니다.
2. 시간: 불편함을 견디고 만나는 해방
안네 임호프, <Sex>

안네 임호프는 작품 <Sex>에서 관객들에게 길고 지루하며 불편한 시간을 선사합니다. 꽤나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시도인데요. 2019년 테이트 모던의 탱크(Tanks) 공간에서 펼쳐진 이 라이브 퍼포먼스는 설치·사운드·조명 등이 결합된 형태로 10일간 전개되었고, 밤에는 별도로 구성된 라이브 작업이 실연되었습니다.

임호프의 작품에서 관객들은 기존의 관람 방식을 내려놓기도 전에 낯선 사건들을 마주합니다. 높은 단상 위에 선 퍼포머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관객을 내려다보며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유리와 목재로 된 조형물 곁에서 춤을 추기도 합니다. 무엇이 벌어질 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견디면 돌발적으로 공간 전체가 폭발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어두운 공간을 찢고 나오는 강렬한 스트로브(strobe) 조명의 섬광과 클럽 레이브를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사운드는 관객의 감각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습니다.

낮과 밤, 안과 밖의 경계를 흐리는 시간의 틈에서 관객들은 지금 이 순간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있다는 의식을 잃고, 맥박을 울리는 소음과 혼돈에 온몸을 맡길 수밖에 없죠.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수 시간 동안 지루함과 긴장 사이에서 진동하다 비로소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빠르고 효율적인 것이 고평가되는 시대에 임호프의 작업은 역설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견디는 능력 자체를 감상의 핵심으로 만듭니다.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관객이 아니라 온전히 통과하는 관객을 요청하는 것이죠. 작품을 보고 나오는 길에 느끼는 묘한 잔상은 관객이 그 시간의 압력과 섬광의 여운을 온몸으로 통과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3. 접속: 작품의 일부가 되는 관객
로렌스 렉, <NOX>

디지털 환경의 예술은 이제 화면 너머의 이미지를 감상하는 단계를 넘어서 관객을 선택의 주체로 접속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로렌스 렉의 <NOX>는 라이브 시네마이자 게임 퍼포먼스로 관객을 미래의 스마트 시티 속을 부유하는 인공지능 탐사자로 설정합니다. 게임 속 가상 공간을 그대로 현실에 옮겨놓은 듯한 거대한 구조물 사이를 직접 걸어다니며 관객은 가만히 보고 있기 보다는 직접 접속하여 움직이고 반응하죠.

‘NOX(Nonhuman Excellence)’는 불복종하는 자율주행차를 다시 프로그래밍하기 위해 만들어진 AI 재활센터입니다. 게임의 주인공은 반항하는 자율주행차 ‘Enigma-76’으로 기계의 논리와 인간을 닮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죠. 전시장 곳곳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인공지능 자율주행차의 시점으로 렌더링된 영상이 흐르고, 관객은 ‘Enigma-76’의 시점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유영하며 게임을 플레이하듯 따라갑니다.

디지털 환경은 관객을 접속과 반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밀착감을 만들어냅니다. 화면 속 가상 세계와 실제로 이동하며 만나는 현실이 겹치며 우리 몸이 게임의 규칙과 서사에 상호작용하는 기묘한 감각이 발생하죠. 관객은 작품이라는 시스템 속으로 접속하여 그 세계를 함께 완성해가는 일부가 됩니다.
예술의 발전을 새로운 양식이나 스타일의 발명으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늘 변화를 뒤쫓아가기 바쁜 감상자가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만남의 방식에 주목해 본다면 어떨까요. 미술관은 살아 움직이는 환경이 되고, 퍼포먼스는 몸을 통과하는 시간이 되며, 디지털은 접속 가능한 세계가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예술 감상의 발전은 더 많은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설계한 조건들 속에서 내 감각이 어떻게 변화하고 조율되는지 알아차리는 민감함에 있습니다. 해석을 서두르기 전에 지금 내가 무엇을 통과하고 있는지 먼저 느껴보세요. 피부가 알아차리는 공기의 변화, 시야를 어지럽히는 빛, 가상 현실로의 접속 같은 감각의 증상이 바로 현대예술을 감상하는 몸의 언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