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언어를 대신하는 누군가의 얼굴

브랜드와 셀러브리티의 관계는 협업인가 종속인가

브랜드의 언어를 대신하는 누군가의 얼굴
출처: Unsplash

특정 브랜드를 설명할 때, 제품보다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나요? 브랜드와 셀러브리티가 함께하며 브랜드는 인지도를 얻고 셀러브리티는 이미지를 확장합니다. 이런 관계는 오랜 시간 시너지로 설명돼 왔지만 그 안에는 불균형한 구조와 위태로움도 함께 존재합니다. 패션 업계에서 이 관행은 왜 당연해졌고, 대체로 긍정적인 서사로만 소비돼 왔을까요. 본 아티클에서는 브랜드와 셀러브리티 협업의 구조를 되짚으며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할 본질을 묻습니다.


자크뮈스는 왜 브랜드의 대표 얼굴로 할머니를 세웠을까

디지털 미디어의 규모가 커지면서, 트렌드는 짧은 주기로 교체되고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정보와 선택지는 지나치게 늘었습니다. 이때 '정보 과잉'에 지친 소비자는 구매 결정까지의 복잡한 처리 과정을 줄이기 위해 보다 직관적인 단서에 의존하게 되는데요.

브랜드 역시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한 번 보면 바로 이해될 수 있는 전략에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셀러브리티는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소비자에게 빠르게 이해받고, 무엇보다 확실히 잘 팔리기 때문이죠. 어떠한 브랜드이든 셀러브리티와의 만남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도 그 강력함 때문인데요.

출처: Jacquemus

이런 흐름에서 최근 자크뮈스가 택한 결정은 소소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최초의 앰버서더로 유명인이 아닌 디자이너의 할머니인 릴린 자크뮈스(Liline Jacquemus)를 택했는데요. 자크뮈스는 릴린을 현재까지도 가장 강한 영감의 원천으로 소개했습니다. 유명인의 화제성 대신 현재까지 이어지는 영감의 원천을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자크뮈스라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셀러브리티의 명성이라는 지름길 대신 브랜드의 출발점 자체를 지표로 삼았습니다. 현 업계의 기본값과는 반대의 방향에 위치하고 있죠. 역설적으로, 자크뮈스의 사례는 브랜드가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현실을 보여줍니다.


협업이 종속이 될 때

패션 업계에서는 유명인이 일정 기간 동안 브랜드의 대표 얼굴이 되며 서로의 홍보 효과를 꾀하는, 일명 '셀러브리티 브랜딩'이 자주 포착됩니다. 이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죠. 그 효과는 화제성과 즉각적인 매출로 증명되기에, 둘의 관계는 오랫동안 서로에게 시너지를 주는 구조로 설명되어 왔는데요. 하지만 그 프레임만으로 두 관계를 온전히 정의하기에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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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협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이 많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관계가 반복되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관심의 초점이 조금씩 이동합니다. 브랜드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보다 누가 함께했는지에 집중되기 시작하죠.

이 지점에서 브랜드와 셀러브리티의 서사는 혼재되기 시작합니다. 브랜드의 방향성이 제품이나 컬렉션의 맥락에서 출발하기보다 인물의 취향과 태도로 정리됩니다. 브랜드가 새로운 시도를 해도, 변화가 브랜드의 선택으로만 읽히지 않고, 셀러브리티의 이미지 변화로 해석이 옮겨가죠.

반대로 셀러브리티의 다음 행보도 개인의 작업으로만 정리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언론이 인물을 소개할 때 개인의 작업보다 특정 브랜드와의 조합이 꼬리표처럼 따라오고, 작업이 종료된 시점에는 그 내용보다 관계 변화가 중심으로 다뤄지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새 작업 또한 독립된 시도로 평가받기 어려워지며, 기존 결합의 연장선으로 정리되거나 단절로 분류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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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와 셀러브리티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둘은 사실상 조합처럼 기억됩니다. 계약 기간이나 조항과는 별개로 대중의 인식 속에서 두 이름이 한 세트로 저장되죠. 변화가 생기면 자연스레 비교가 붙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꾀한 전략보다 이전 조합과의 대비에서 오는 간극에 먼저 집중되기 쉽습니다. 셀러브리티가 다른 브랜드와 협업해도 개인의 확장으로만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전 관계를 기준으로 평가가 붙기 때문입니다.

독점에 대한 기대가 생긴 상태에서 관계를 바꾸는 건 어렵습니다. 브랜드는 소비자가 이미 익숙해진 이미지를 다시 구축해야 하고, 셀러브리티는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를 떼어내야 합니다. 어쩌면 이 비용이 커질수록 관계는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불편함이 있더라도, 결별하는 결정이 더욱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의 리스크: 이미지 의존이 만든 공백과 혼란

'럭셔리 아이웨어의 아이콘' 이미지를 가진 제니가 최근 젠틀몬스터와의 계약 종료 후 경쟁사의 얼굴이 되었죠.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젠틀몬스터의 기업 성장과 방향성 구축에 있어 일정 부분 타격이 존재할 것으로 전망하였으며, 대중들 또한 우려와 혼란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나 젠틀몬스터는 제니와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키워 왔고, 관련 협업이 반복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출처: Gentle Monster

그 때문일까요? 모델 계약 종료 소식이 전해진 뒤에는 이제 브랜드의 얼굴은 누구인지, 브랜드가 무엇을 내세우려는지와 같은 질문이 먼저 부상하고 있습니다. 모델의 부재 그 이상으로, 브랜드가 자신을 말하는 방식에서 큰 공백이 발생하게 된 거죠. 얼굴을 통해 설명을 축약했던 만큼 얼굴이 빠졌을 때 브랜드의 뼈대를 유지할 단단한 서사가 요구됩니다.


뮤즈의 리스크: 이미지 고착과 책임 전가

브랜드가 얼굴을 통해 의미를 전달할수록 셀러브리티는 개인보다 브랜드의 일부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이때 협업은 커리어 확장의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동시에 관계가 길어질수록 ‘그 브랜드의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강해집니다. 브랜드의 규모가 커질수록 뮤즈는 더욱 강하게 그 브랜드의 일부로 명명됩니다. 그러한 호칭은 명예이자, 동시에 족쇄로 작용합니다. 사람들은 이 시점부터 뮤즈를 주체성 있는 개인이 아닌 브랜드 이미지의 일부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출처: Balenciaga

발렌시아가의 2022년 소아성애 광고 논란은 책임 전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줍니다. 당시 아동이 등장한 이미지와 아이템의 연출이 큰 반발을 불렀고, 브랜드는 사과와 함께 캠페인을 철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와 긴밀히 협업해 온 킴 카다시안도 강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캠페인 기획에 있었지만, 대중의 분노는 가장 눈에 띄는 얼굴로 수렴하였죠.


브랜드가 한 얼굴에 기대어 성장할수록 관계는 견고해 보이지만 위험도 함께 한 지점으로 모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인지와 매출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결합으로 작동하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브랜드의 설명은 얼굴에 붙고 셀러브리티의 평판은 브랜드의 선택과 엮이게 됩니다. 위기가 닥치면 이 결합은 곧바로 시험대에 오릅니다. 브랜드는 손실을 줄이려 하고 셀러브리티는 유명세를 지키려 합니다. 어느 쪽도 이상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같은 구조 안에서 서로 다른 우선순위가 드러나며 균열이 커지게 됩니다. 핵심은 누가 옳았는지가 아니라, 이런 관계가 오래 가도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입니다.

조건은 결국 메시지에 있습니다. 얼굴이 앞서는 순간이 늘수록 브랜드는 얼굴이 사라진 뒤에 남을 설명을 먼저 강화해야 합니다. 셀러브리티도 이미지 제공에서 끝나는 역할로 머물면 책임만 커지기 쉽습니다. 기획과 메시지에 참여하는 범위가 분명할수록 권한과 책임의 선도 함께 정리됩니다. 자크뮈스가 유명인의 화제성 대신 기원과 헤리티지를 전면에 둔 선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이유도 이 지점과 닿아 있습니다. 얼굴로 단축하는 길이 아니라 브랜드가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소비자의 몫입니다. 브랜드의 캠페인을 볼 때 그 브랜드가 이번에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 말을 왜 그 인물이 대신 말하고 있는지를 고민해 봅시다. 이 두 질문을 한 번만 거치면, 협업을 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결국 시장의 기본값은 우리의 반응이 만들기도 하니까요. 당신이 최근 가장 강하게 기억한 브랜드의 얼굴은 누구였나요? 그 얼굴을 가린 뒤에도, 그 브랜드를 같은 강도로 설명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