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
김해미 개인전
공간의 낯섦은 사람이 주는 그것과 다르다. 이는 분명한 사실로서 어렵사리 구한 지하방과 앞으로 볼 일 없는 사람을 취합한다. 앞선 종합은 입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이를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절을 표할 수 없는.
한두 번은 인식을 형성하기 적절한 횟수였다. 그것에 완전함을 더하려면 서너 번 정도면 될까. 물론 완고함이 덧붙여지겠지만, 그런 건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닌지도.
시야가 비약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생각에 흔적을 남기며, 남은 자국에 새것인 꼬리가 단정하게 개켜져 있는 것을 뒤늦게 본 기억은 사물의 전면을 겸한다.

떠돌이의 이목을 끄는 나무의 생김은 더없이 굴곡투성이이며 용케 상징적이다. 고루한 숨과 참신한 스침이 예의 나무를 더욱 생생하게 할 때 외톨이는 그저 단출한 차림으로 대로변을 배회한다. 그에게 골목이란 무엇인지. 고가나 많은 신호등, 그리고 횡단하는 이들까지.
우리는 정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그것은 때론 정물이 되기도 한다는 싱거운 말을 하며 매번 같은 시간에 빛을 토하는 가로등의 영광을 떠올린다.
호흡의 높이를 낮추기 적합한 훈김이다. 천천히 회전하는 사고. 기분은 큼직한 보폭으로 구경 주위를 기웃거린다. 동그마한 게 동그맣다.

예상보다 작은 덤불이었다. 그 주변을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웬만큼은 눈에 익다고 생각했는데, 설익은 인상은 기껏해야 두 주먹 정도이다.
동그마한 게 동그맣다. 외따로 오뚝하다. 밤낮으로 생경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모든 대상으로부터 동떨어짐으로써 획득한 거리는 이야기의 거추장스러운 부분이 되었다. 단적으로 긴 시간. 공간마다 숨 쉬는 정서. 정작 소리로써 뱉어진 적 없는 곤궁함.
유사함을 두른 너와 내가 하물며 잦은 오독을 범해도 뒤집힌 것은 바로 전과 다르지 않다.

찬란한 벌판의 한복판에 주저앉기를 거부하는 이가 있다고 한다. 그의 인상착의는 넝마와 낡음을 공유하며 시시각각 부서지는 얼굴을 쫓지 않고 그와 함께 제자리에 섰다.
눈부신 주변엔 부적절한 요소가 보이지 않아 그는 다소 안심했다. 이름 모를 은유가 공중을 떠다니고, 그것의 유영을 바라보다 보면 사물을 향한 지레짐작을 멈출 수 없어 규칙적으로 눈을 감기도 했다.
섣부른 건 유독 걷잡을 수 없는 면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염없이 하는 것. 우두커니 선 개체와 이를 삼키려 드는 일거.
해가 저물 때쯤 그는 억양에 수기로 다음날을 기록했다.

종이 위로 떨어지는 지나침이라는 것도 옳다. 단지 그뿐이가 싶은 정황도 이곳저곳으로 부지런히 옮겨 다닌다. 아직 꼭대기가 젖은 이동, 땅에 겨운 화단으로 기운다.
가는 날이 조금 움질거려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얕은 개울이나 구덩이를 떠올려 보는 게 좋겠다. 저만치에 펼쳐진 하늘은 낮고, 밤은 아직 이르다. 키를 뛰어넘은 지붕에 꼭 달라붙은 낮이 두서없이 환할 때 정각마다 문을 두드리는 이의 일상이 뒤늦게 시작될까.
가벼운 것을 나열해 봄 직해, 무게와 책임은 연이어 생각의 뒤를 사로잡고. 별안간 꿈적도 하지 않던 수레가 움직이는 건 계절의 부숨과 어떤 연관이라도 있다는 건지.

흉물스러운 자태의 연속 곧 그을음은 청명한 하늘을 증명한다. 존재의 부재와 앞뒤가 다른 말. 어제 같을 내일.
한때의 기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앞으로 달려가는 것보다 뒤로 물러나는 게 더 어쭙잖지 않다.
무엇을 보든 사물의 분명한 외침을 잃지 않는다. 순간에 닻을 내린 후 순수한 수순을 그대로 따라가는 일은 퍽 정겨운 느낌을 어렵지 않게 자아내었다.
긴 한숨. 우리는 둘로 나뉘기 충분한 대상인지도 모른다. 홀로 지핀 불꽃, 부자연스럽게 흘러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