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작품에 스며든 촘촘한 시간의 밀도

반복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커다란 캔버스 위로 점이 찍히고 선이 그어집니다. 잘라낸 흙판 조각이 층층이 쌓입니다. 그 과정이 무수히 반복됩니다. 어떤 작품에서 느껴지는 압도감은 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긴 시간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점, 선, 면 같은 단순한 요소가 모여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독립된 일부가 조화를 이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시간이 축적된 작품 앞에서 느껴지는 감동 위로 이런 질문을 떠올립니다. 이 느낌은 어디서 비롯하는 걸까요?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겠습니다. 반복은 어떻게 예술이 될까요? 순간이 겹겹이 쌓여 전체로 확장되는 광경을 곱씹어보며 반복이라는 행위가 갖는 예술성을 고찰해 봅니다.


김환기, 전면 점화

점으로 다가갑니다.

부암동의 한 언덕 위에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 지어진 환기 미술관이 있습니다. 전시 동선을 따라 전시관을 오르다 보면 곧 높은 벽 전체를 채운 점면 점화 시리즈를 만나게 됩니다. 입구에 서면 광활하게 펼쳐진 단색의 화면들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림이 눈에 가득 차도록 다가가면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미세한 기운에 압도됩니다. 한 걸음 더 다가가면 화면을 촘촘히 메우고 있는 진동하는 점 속으로 침잠합니다.

이미지 출처: 환기미술관

1963년부터 1974년까지 뉴욕에서 작업을 이어가던 김환기는 1968년 1월 23일 일기에 이렇게 적습니다.

“날으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그가 그려온 산, 달, 강, 새 같은 자연의 기호는 점차 간결해지며 ‘점’이라는 근원적 단위로 수렴됩니다. 이 응축된 조형 언어가 캔버스 위에 하나씩 새겨집니다. 수많은 점이 모여 구성하는 화면은 자연의 형태를 재현하기보다 자연을 향한 감각을 선명하게 만듭니다. 맑게 희석된 유화 물감은 캔버스에 스며들어 번짐의 층위를 만들고 동양화의 담채를 연상시키는 투명한 울림을 남깁니다.

이미지 출처: 환기미술관

김환기의 점은 자연과의 내밀한 대화입니다. 어느 날 도착한 친구의 편지를 읽고 그는 이렇게 씁니다.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고 했다. 뻐꾸기의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고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1960년대의 뉴욕에서 그는 마음속에 새겨진 산과 달, 강과 새를 떠올리며 종일 점을 찍습니다. 그리움, 인연, 자연 그리고 살아온 시간이 점 하나에 고요히 스며듭니다. 점들은 번지고 서로 울리며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점으로 다가갑니다. 그가 오랜 시간 반복을 통해 만든 고요한 본질의 세계에 가까워집니다.

박서보, 연필 묘법

선에서 멀어집니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선을 들여다봅니다. 결을 따라 흐르는 질감은 손끝으로 만져지는 듯한 양감을 품고, 색과 색이 엉켜들며 만들어내는 선들의 압도적인 기세는 그린 이의 거친 몸놀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순간, 화면을 지배하던 역동성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시간의 반대쪽으로 물러납니다. 규칙성 속에서 가라앉은 선들 위로 고요한 전체가 나타납니다. 텅 비어 있으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띤 캔버스 앞에서 나의 자아가 조용히 떠오릅니다.

이미지 출처: 박서보 재단

1967년부터 시작된 박서보의 연필 묘법은 흰색으로 밑칠한 캔버스가 완전히 마르기 전, 그 표면 위를 연필로 반복해 긋습니다. 선을 긋고, 다시 흰색 물감을 덧발라 지우고 또다시 선을 긋고 지우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예술은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연필 묘법은 수행자의 노동과 호흡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작업입니다. 캔버스에 패인 홈, 흑과 백이 충돌하며 남긴 흔적, 고통과 번뇌를 밀어내듯 그어진 선들. 그 앞에 선 관객은 무의 감각과 여운이 스며드는 기묘한 침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박서보 재단
“서양의 종과 동양의 종이 뭐가 다른지 아세요? 서양 종은 꽝 때리자마자 소리가 나지만 동양 종은 타종 막대가 종에서 떨어지고 난 다음에야 댕 하고 울려 울려퍼집니다. … 서양은 많은 것이 인간의 지배나 통제 하에 이뤄지지만 동양은 그렇지 않아요. 여운의 세계가 있지요.”

박서보는 바로 이 여운의 세계를 회화적으로 표현합니다. 타종 막대가 떨어진 뒤 시작되는 소리의 울림처럼 그의 작품은 비워짐 속에서 또 다른 파문을 일으킵니다. 선이 사라진 자리, 지워진 뒤 남은 여백, 반복된 행위가 응축된 표면. 그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자아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와 만나게 됩니다. 선에서 멀어집니다. 침묵 위로 내면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배세진, 고도를 기다리며

면을 기다립니다. 

흙으로 형태를 빚고, 마르기를 기다립니다. 마른 흙을 가마에 넣어서 짧게는 이틀, 길게는 삼사일을 굽습니다. 때로는 유약을 바르고 다시 굽는 과정을 거칩니다. 도예는 기다림의 예술입니다.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기다림, 그 자체의 본질을 묻듯 도예 역시 기다리는 행위 속에서 시간을 드러냅니다. 

이미지 출처: baesejin

시간은 지속하고, 반복하고, 순환합니다. 그리고 그 반복은 늘 변화를 품습니다. 자연 재료인 흙을 다루는 일은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맞대는 과정입니다. 배세진은 도예의 가장 기본적인 판성형 기법을 사용해 이 시간의 층위를 가시화합니다. 베케트의 희곡에서 이름을 따온 그의 작업은 숙성된 흙판을 잘라 일련번호를 새기고, 벽돌을 쌓듯 하나씩 차곡차곡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수많은 작은 조각이 그의 손을 거치며 구조를 이룹니다. 그의 시간과 흙의 시간이 맞물리며 하나의 작품으로 응집됩니다.

이미지 출처: baesejin
“나는 흙의 본성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흙을 재료로 하여 시간을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일련번호를 찍고 조각을 붙여 면을 쌓아 올리는 반복은 단순한 행위의 누적이 아닙니다. 반복되는 시간의 깊은 리듬 속에서 그가 쌓아 올린 작은 면들의 총합은 공간을 이루는 구조이자, 시간을 기다리는 수행의 흔적이 됩니다. 면을 기다립니다. 그 시간 속에서 자연이 품고 있는 기다림과 변화, 축적과 순환의 시간성을 마주합니다.


어떤 작품 앞에서 느껴지는 압도감은 그 안에 촘촘히 스며든 시간의 밀도에서 비롯합니다. 점을 찍고, 획을 긋고, 조각을 올리고, 다시 처음을 돌아가 같은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수련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반복이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미세한 차이와 멈추지 않는 의지 속에서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삶이 본래 시지프의 형벌처럼 굴러떨어질 돌을 계속해서 다시 올려야 하는 숙명이라면 그 반복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조금씩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참고 자료

환기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http://whankimuseum.org/

Baesejin 공식 홈페이지, https://www.baesejin.com/

정성갑, “#120 화가 박서보 vol.2 이토록 스타일리시한 색채의 비밀”, 디자인프레스, 2019.7.15

김수지, “흙으로 시간을 쌓다 도예가 배세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