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중독 사회 선택을 피하는 이유

안전하게 살기 위해 취향도 골라주는 시대

유행 중독 사회 선택을 피하는 이유
이미지 출처: Dupephoto

시대마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모방하는 유행이 있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유행을 따라가는 건 일상의 활력이 되고, 어색한 자리를 풀어주는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하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음식부터 패션, 공간 브랜딩 같은 모든 분야에서 유행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쉽게 꺼져 피로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유행이 순간적인 도파민을 위한 콘텐츠처럼 점점 소모적으로 변하고 말았는데요. 이를 뒤쫓기 위해 무분별한 카피와 재생산이 넘쳐 나면서 윤리 문제도 커지고 있습니다. 유행의 혼돈 속에서 어쩌면 이건 우리 삶의 근원적인 모습과 연결되지 않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오늘은 유행이 대체 왜 이렇게 넘쳐서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들

트와이스 지효, 레드벨벳 슬기, 에스파 카리나, 이미지 출처: 카카오스타일

요즘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두툼하게 챙겨 입은 위에는 하늘색 혹은 은빛의 경량 패딩을 두르고, 다리 모양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큰 사이즈의 바지, 어그 부츠를 신어줬습니다. 친구를 만나 두바이 쫀득 쿠키를 맛보기 위해 일찍부터 카페에 줄을 서서 간신히 구매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불량 연애>와 <흑백요리사2>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한참 쇼츠를 넘기며 반복되는 밈을 시청하니 잘 시간이 되었네요. 그런데 문득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바이 쫀득 쿠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편안하고 귀여운 착장과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하는 입맛, 연애와 요리 콘텐츠를 즐기는 건 분명 멋진 취향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취향과 입맛을 지닌 게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말 내 마음을 따른 것인지, 혹은 주위에서 많이 보이고 들리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하죠. 평소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외국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자신을 꾸미고 취향을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에서 우리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옷부터 음식과 취미, 넓게는 삶의 양식과 가치관까지 유행을 따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솔직해지자면, 새롭고 낯선 길을 가는 건 큰 위험 부담을 지는 일입니다. 나만의 고유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건 많은 시간이 들고 때로는 값도 많이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반드시 성공할 보장은 없는 그야말로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도전입니다. 열심히 가꾼 취향이 생각보다 별로일 수도 있고, 얼마 못 가 흥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죠. 반면 유행하는 옷을 입고, 유행하는 식당과 카페에 가면 위험 부담 없이 안전하게 일상을 꾸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만큼 만족할 확률도 높습니다.

다마고치 게임기, 이미지 출처: 코스모폴리

오래전 유행했던 패션이 돌아오고 세기말 감성을 따르는 복고 트렌드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트렌드를 불러와 다시 한번 향유하고 오늘날에 맞춰 발전시켜 나가면서 새로움에 대한 불안은 덜고 안전한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분명 얼마 전엔 촌스러워 보였는데, 거대한 유행 안에서 보니 어쩐지 세련되고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가 아닐까요?

 

같은 옷을 입을 때 소외되지 않는다

우리는 소속된 집단에서 배제되고 싶지 않아서 유행을 따르기도 합니다. 다수와 반대되는 의견을 지니고 크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집단과 점차 멀어지는 일. 한 번쯤은 본 적 있지 않나요? 개인의 개성이 중요해진 시대이지만, 여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집단과 소속감은 중요합니다. 학교와 직장, 삶의 터전에서 낙오되고 싶지 않아서 서로의 모습을 따라 하고 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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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과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은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모두 같은 교복을 입어서 멀리서 보면 고유한 한 사람이 아닌 익명의 학생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었으나 옷에 따라 경제적 수준이 드러나고 갈등이 생기자, 다시 철회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을 배려한 배경이 있었지만 자기만의 꿈과 삶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학생들을 획일화한다는 단점은 분명 존재합니다. 교복뿐만 아니라 친구들 사이 유행하는 유명 브랜드의 패딩부터 운동화, 화장품에 대한 기억도 선명합니다. 인생의 어느 때보다 친구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는 시기에 서로를 비슷하게 따라 하고 무리를 이루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인이 된 후 우리는 교복을 벗었습니다. 하지만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보이지 않는 교복을 찾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가까운 친구부터 직장 동료,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가장 흔한 주제는 트렌드입니다. 유행하는 예능을 보았는지, 인기 많은 음식을 먹어보았는지 끊임없이 유행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인터넷에서 떠오르는 밈과 챌린지를 따라 하며 웃거나, 이를 잘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사회적 나이를 체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트렌드의 힘이 세고 따르는 사람이 많을 때 대화 주제에 참여하기 위해 유행에 더 집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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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설적으로 집단을 따라가기 위해 유행을 좇으면, 유행은 금세 소모되고 촌스러워지고 맙니다. 트렌드에 맞는 옷을 입고 입소문 난 공간을 방문하는 건 좋은 취향과 미감을 지닌 집단에 속해 대중보다 한 발 더 앞선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소속감을 위해 이 소수를 따라가며 집단적으로 모방을 시작하면, 유행은 특별한 소수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차별성을 위해 다른 유행을 찾아 나서면 같은 일이 반복되고 말죠. 도망치고 붙잡는 게임이 되고 맙니다.

 

취향도 외주 맡기는 세상

집단과 사회를 따라 유행을 놓치지 않는 건 의지를 발휘해 일상에 새로움을 더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하기 싫어서, 그 선택 과정을 줄이려는 빼기의 마음으로 유행을 따르기도 합니다. 나의 것이 아닌 유행을 택하면 쉽고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취향까지 가성비를 따지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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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취향을 찾고 싶을 때를 떠올려 볼까요. 마음속 깊은 곳까지 울림을 주는 음악을 찾고, 새로운 장르를 이해하면서 취향을 확장해 가는 과정은 참 번거롭습니다. 우선 수많은 음악을 들어보아야 하고, 다양한 공간에서 음악과의 만남을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과 학업, 일상의 무게로 피곤한 가운데 시간을 내어 음악을 탐구하는 건 절대 쉽지 않습니다. 취미마저 일이 되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이러한 마음들이 모여 특정한 시기와 감정 상태에 맞는 음악을 추천해 주는 플레이리스트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음악의 제목도 가수도 잘 모르지만, 쉽게 재생을 누르고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되죠. 알고리즘의 발달로 취향을 만드는 건 더더욱 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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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행과 알고리즘 덕에 간편히 음악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큰 노력 없이도 좋은 취향을 완성한 것만 같죠. 그런데 사실 이건 작은 상자에 갇혀 더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일입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선택하고 좋아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끝없이 비슷한 연결고리를 추천합니다. 유행도 이러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퍼지게 되죠. 그 끝에 취향은 확장되지 않고 같은 굴레를 반복하며 제한됩니다.

 

“1995년이 딱 영화 100주년이었는데, 그때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허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래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같은 작품을 극장에 보러가서 러닝타임 내내 졸고 나오면서도, 그 영화를 욕하지 않았어요. 어쨌건 그 영화를 봤다는 게 중요했죠. 사실 허영이죠. 1990년대 중반의 관객은 오늘은 짐 자무쉬 영화를 보러 가서 자고, 다음날은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면서 잤더라도, 졸지 않고 본 5분씩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도약의 순간을 경험해요. 훈련이 되니까요. 대중문화도 교양이니까 훈련이 필요해요.”_이동진,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평론가는 귀찮고 수고로운 일이지만 나의 세계를 위해 많이 경험하고, 성공도 실패도 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합니다. 직접 보고 듣고, 좋은 것과 싫은 것을 구분해 보고, 그 이유도 생각해 보고, 시간이 흐른 뒤엔 그 생각이 바뀌는 경험도 해볼 수 있죠. 유행과 알고리즘으로 취향도 외주를 주는 오늘날, 나를 알아갈 기회마저 잃게 됩니다.


파도처럼 일상을 뒤덮은 유행 앞에서 잠시 멈춰 보았습니다. 굳이 힘들게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싫어서, 유행에 뒤처진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쉽게 알고리즘에 맡기고 싶어서 그 파도를 타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 유행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또 하나의 과제처럼 처리하고 있진 않았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 되었을 때, 그래서 비로소 안전해졌을 때 과연 정말 행복한 걸까요? 새해에는 유행도 좋지만 내 안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