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열기를 닮은 에세이
선명한 여름과 삶의 생생함

참 더운 요즘입니다. 일상의 모든 이야기가 무더위에 묻혀버릴 정도입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오늘의 더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한참을 이야기하게 되고 길에서 옆을 지나는 행인이 '오늘 정말 덥다.'하고 일행에게 말을 건네면 속으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게 됩니다. 여름에는 몸의 변화가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해변 모래 위로 내리쬐는 태양과 뜨거워지는 피부, 운동 후 몸을 감싸는 열기와 땀 흘리는 목덜미, 별안간 불어오는 바람과 입에 문 박하사탕처럼 시원해지는 젖은 몸. 그런 변화가 살아있다는 몸의 외침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계절입니다. 선명한 여름의 열기에서 삶의 생생함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자연을 응시하고 그곳에서 삶을 이어지게 하는 힘을 숙고하는 에세이와 함께 이 계절의 열기를 곱씹어 봅니다.
결혼·여름
여름이 오면 생각 나는 ‘여름 콘텐츠’가 있나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부터 영화 <리틀 포레스트 - 여름 가을 편>까지 여름의 분위기를 잘 담아낸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작품뿐만 아니라 계절 그 자체의 몰입 역시 높여주는 것 같습니다. 전 여름이 오면 여름휴가와 바다 수영에 대한 묘사, 태양의 이미지가 강렬한 까뮈의 『이방인』을 즐겨 읽는데요. 올해는 자연에 대한 묘사와 까뮈의 삶에 대한 통찰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에세이를 함께 읽으려 합니다. 1939년부터 1954년까지 그의 여행담을 담은 『결혼·여름』입니다.

아름답게 기억되는 계절은 오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어떤 하루에서 비롯합니다. 까뮈는 알제리의 티파자와 오랑, 이탈리아, 브라질을 여행하며 자연의 민낯과 그 속에 녹아드는 생의 희열을 기록합니다. 우리는 그의 시선을 빌려 그 모든 여정을 함께하게 됩니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죽음은 진실입니다. 우리는 때로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삶의 유한함과 오싹한 무의미를 마주합니다. 몇천 년의 영광을 누릴 것 같던 어떤 유적은 폐허로 남고 그에 비할 수도 없이 짧은 인간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길은 묘연해 보입니다. 까뮈는 이생을 격렬하게 긍정하는 것으로 필멸의 운명에 반항합니다. 그는 부서진 건물 사이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을 봅니다. 그 옆으로 무심히 자리한 나무와 풀을 해치며 걷고 부는 바람에 몸을 식힙니다. 온종일 마음 가는 대로 걸었던 하루의 끝에서 마음에 가득 차는 그 '기이한 기쁨'을 만끽합니다.

까뮈는 드물게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자신의 작품 세계의 청사진을 명확하게 그려둔 작가였습니다. 3개로 구성된 층위에서 첫 번째가 부조리이고 두 번째는 반항입니다. 삶은 유한하고 우리는 하루하루 죽음으로 다가갑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가파른 언덕 위로 끊임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형벌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때때로 태양과 파도, 풀 내음, 입맞춤으로 가득한 충만한 하루를 기쁘게 살아내기도 합니다. 까뮈는 그의 작품에서 필멸과 무의미라는 부조리한 운명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그럼에도 삶을 긍정함으로써 그 운명에 반항하는 인물을 그립니다. 산다는 것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라면 그의 인물들은 파멸을 향해 쉴 새 없이 달려 나가는 삶을 택합니다. 까뮈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망하면서 채 완성되지 못한 세 번째 층위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사는 것이 파멸을 향해 달려는 것이라고 해도 이 세계 속에서 사랑과 삶을 향한 욕망을 찾아 걸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완벽한 날들
여름의 열기를 품고 있던 어느 가을의 초입에 친구와 함께 강원도로 떠났습니다. 짧은 일정 동안 요가, 바다 위에서 해돋이 보기, 명상 등 많은 계획을 세웠는데 여행은 늘 그렇듯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빡빡한 일정으로 요가는 포기했고, 해돋이 배는 선장님의 사정으로 뜨지 못했고, 저는 늦잠을 자버려서 명상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 변수들이 기분 좋은 우연으로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숙소에서 만난 분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등대 앞에서 낚시하는 아저씨들과 함께 해돋이도 봤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 떠나기 직전 시간을 보내려 들어간 작은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합니다. 메리 올리버의 세상에 대한 찬사를 담은 에세이 『완벽한 날들』입니다.

『완벽한 날들』은 ‘세상이 아침마다 우리에게 던지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시인의 대답입니다. 올리버는 메사추세츠 프로빈스타운의 외딴 해변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나무, 들판, 흙, 샘 그리고 바다에 둘러싸여 자신과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에서 발견한 생각을 차분히 써내려 갑니다.
통제된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그의 글은 귀하게 읽힙니다. 도시에서 사람은 자연과 쉽게 분리됩니다. 자연은 제한된 풍경으로 격하되고 인간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세계에서 분리됩니다. 우리는 건조해지고 쉽게 불안해집니다. 그녀는 자연에 자리한 인간으로서 자연을 봅니다. 자연이 주는 새삼스러운 감동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시인의 언어는 오늘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세상이 매일 아침 우리에게 던지는 그 질문을 떠올립니다. ‘너는 이렇게 살아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메리 올리버가 그려내는 자연은 생생하고 무심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자연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저 할 일을 합니다. 바다 앞에서 누군가가 비참함에 눈물을 흘려도 파도는 멈추지 않습니다. 무심히 포말을 일으키며 오고, 또 갑니다. 자연은 할 일을 함으로써 우리를 그곳에 있게 합니다.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태양은 다음날 새로운 아침을 우리 손에 쥐여주며 파도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 어떤 비참과 좌절 속에서도 세계에 우리의 자리가 있다는 듯이. 그는 자연 속에서 머리와 몸에 음악처럼 흐르는 말들을 글로 적어 옮깁니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세상에 주어야 할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더위에 진이 빠진 날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떠오릅니다. '죽음을 피하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내버려두면 - 즉,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 우리 몸은 주변 환경과 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온도, 산도, 수분 함량, 전기적 전위 같은 요소를 측정해보면, 살아 있는 생물의 몸에서는 이 수치들이 환경과 다르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생물이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더위에 온 힘으로 맞서는 몸이 살아 있다는 상태를 유달리 생생하게 느끼게 합니다. 곧 지나갈 열기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 사실 안에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진실을 곱씹어 봅니다.
참고 자료
알베르 카뮈 / 김화영 역 / 『이방인』 / 민음사 / 2011.03
신형철 /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가 전하는 말 / 한겨례 / 2018.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