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 없는 만화, 와야마 야마의 세계
조금 이상하지만 맘 편히 웃긴 만화가 필요하다면
한 작가의 세계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모방은 타인을 흉내 내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반복적으로 호출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같은 결, 같은 온도,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며, 이야기는 비로소 양을 갖추고 한 세계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만화가 와야마 야마는 그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2019년에 데뷔한 와야마 야마는 데뷔작으로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영상화되며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죠. 이번 아티클에서는 데뷔작부터 현재 연재작까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와야마 야마의 만화를 소개합니다.
와야마 야마의 출발점, 『빠졌어, 너에게』

2019년에 출간된 작가의 데뷔작인 이 만화는 중·고등학교가 연결된 남학교를 배경으로 한 단편집입니다. 학원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첫사랑이나 성장의 서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제목이 말해주듯,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는 친구나 우정 혹은 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도 있는 새로운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8편의 단편 중 절반은 하야시라는 인물이, 나머지는 니카이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하야시는 수업 시간에 ‘곰을 만나면’이라는 엉뚱한 책을 읽다가 압수당하고, 운동회에선 장애물 달리기를 하다 그물에 엉켜서 그대로 그물을 휘감고 서 있는 어딘가 이상하지만 묘하게 귀엽기도 하고 웃음이 나는 인물입니다. 니카이도는 아이돌 뺨치는 잘생긴 외모 때문에 시달리는 일이 많아지자, 일부러 음산하고 불길한 애인 척 연기를 한다는 비밀을 안고 있습니다.
이 만화의 유머는 인물의 이상한 매력에 더불어 그것을 대하는 주변의 반응에서 생겨납니다. 책에 실린 짧은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학창 시절의 반짝이는 순간을 그립니다. 와야마 야마 식의 학원 만화의 등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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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두 사람의, 『가라오케 가자』,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

작가는 두 번째 작품 『가라오케 가자!』에서 전혀 다른 배경으로 이동하지만,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조직 내 가라오케 대회에서 벌칙을 피하고 싶은 야쿠자 나리타가 합창부원인 중학교 3학년 남학생 오카에게 노래 잘하는 법을 배우면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처음엔 겁을 먹은 오카가 나리타의 노래에 신랄한 평을 내리고, 문신 왕초보 회장님이 직접 새겨주는 문신을 피하게 위해 노래 연습에 필사적인 야쿠자를 조금은 불쌍하게 보게 됩니다. 인물의 관계 역전이 웃음을 유발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노래 레슨은 오카의 중학교 마지막 합창 대회 시즌과 맞물려 진행됩니다. 서로의 행운을 빌며 유대감을 쌓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카가 대학생이 된 후를 그린 속편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에서 계속됩니다.

속편에서는 나리타에 대한 오카의 감정이 좀 더 표현됩니다. 나리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그의 메시지에 답장을 고민하며 문장을 썼다 지우는 장면이 묘사되죠.
이 시리즈의 매력은 감정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소프트 BL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작가는 둘의 관계를 독자의 해석에 맡깁니다. 장르 구분보다 이 만화의 매력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인물이 아주 작은 계기로 연결되어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관계를 이어간다는 점입니다. 3월에 일본에서 출간될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 下 편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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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마 야마의 확장된 세계, 첫 장편 『여학교의 별』

2020년부터 연재 중인 『여학교의 별』은 작가의 첫 장편 작품입니다. 어느 여자 고등학교 2학년 4반을 배경으로 담임 호시 선생님과 학생들의 일상이 펼쳐집니다.
이 만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물 모두가 ‘조금씩만’ 독특합니다. 과한 설정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개그가 없습니다. 반 아이들은 서로 다투거나 갈등을 겪지 않고, 또래 선생님들끼리의 불편한 상황 묘사도 없습니다. 입시 스트레스에 삐뚤어진 학생이나 선생님에게 대드는 버릇없는 학생도 없습니다. 인물들 사이의 적당한 거리감이 만화의 적정선을 만듭니다. 안전한 경계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말장난과 반전되는 상황은 예측하지 못한 웃음을 만듭니다.
1권의 한 에피소드에선 학생들이 붙이는 선생님들의 별명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옷차림 때문에 학생들에게 폴로셔츠 앰배서더, 무인양품이라고 불리는 걸 알게 된 선생님들은 우스갯소리를 하며 서로를 놀립니다. 선을 넘지 않는 학생들과 과민 반응하지 않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이 에피소드 전체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듭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을 이보다 더 짓궂은 별명으로 부르곤 했던 추억을 떠올리게도 하죠.
이 만화는 학창 시절에 대한 향수를 넘어 작품 속 학교에 다녔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생각하게끔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 하나 없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매일매일 엉뚱한 일이 일어나는 학교생활,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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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마 야마의 만화를 읽고 나면 강한 인상이 남기보다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풀린 상태로 책을 덮게 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관계, 긴장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순간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반복되는 어색함과 엉뚱함, 말로 다 하지 않은 감정들이 쌓이며 하나의 세계를 이룹니다. 그 세계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안전하고도 색다르기에 더 오래 남습니다.
여전히 디지털이 아닌 손으로 만화를 그리는 1995년생 와야마 야마의 작품은 독자에게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계라면 조금 더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손끝에서 시작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