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바꾸는 죄책감의 순간

죄책감의 무게를 넘어 삶의 균형을 찾는 세 편의 영화

우리를 바꾸는 죄책감의 순간
이미지 출처: Unsplash

어떤 상황에서든 큰 감정의 동요를 겪지 않고, 평온하고 유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볼 때 균형잡힌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궁금해합니다. 균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균형은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난 후,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중한 이의 상실, 깊은 후회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죄책감 등... 그 경험과 감정은 우리 삶에 잊지 못할 생채기를 내기도 하지만, 그 상처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중심을 세우고 균형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가장 깊은 감정 중에 하나인 죄책감도 이와 같습니다. 죄책감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후회, 반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죄책감은 쉼없이 우리를 찌르고 흔들어, 타인을 이해하게 만들고, 나를 붙잡기도 하며, 조금 더 윤리적인 선택을 만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죄책감이 균형을 맞추는 추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 안의 죄책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죄책감이 우리와 세상, 그리고 삶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 해당 아티클에는 <미스백>, <스틸 앨리스>, <그을린 사랑>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나와 마주친 순간, <미쓰백>

이미지 출처: 영화 <미쓰백> 스틸컷
이미지 출처: 영화 <미쓰백> 스틸컷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학대 당하고, 보육원에 버려진 백상아는 어느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소녀였습니다. 보육원에서 지내던 시절 성폭행을 당하다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히지만, 순식간에 가해자로 둔갑되어 전과까지 얻게 됩니다.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백상아는 아무도 믿지 않는 어른으로 자랍니다.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도 않고, 장섭의 관심에도 "나같은 게 어떻게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냐"고 조소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상아는 길에서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배고픔을 호소하는 아이 지은을 만납니다. 명백한 폭행과 학대의 흔적, 백상아는 아이를 지나치지 못합니다. 아이의 모습이 백상아의 가슴 안에 웅크린 오랜 죄책감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미쓰백> 스틸컷
이미지 출처: 영화 <미쓰백> 스틸컷

백상아의 죄책감은 과거 일에 대한 응어리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 자신을 지켜주지 않은 어른들에 대한 분노, 폭력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기에 대한 자책감과 혐오, 삶에 대한 의지가 뒤섞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백상아는 학대 당하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겁니다.

백상아가 학대 받던 아이, 지은을 구하는 과정은 곧 과거의 자신을 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상처 속에 갇힌 자신을 꺼내고, 타인을 지키며 자신에 대한 오랜 원망까지 거둡니다. 백상아의 죄책감은 더이상 백상아를 가두지 못합니다. 삶을 일으키는 중심이 됩니다.

기억을 잃어도 나를 잃지 않도록, <스틸 앨리스>

영화 스틸 앨리스
이미지 출처: 영화 <스틸 앨리스> 스틸컷

언어학자인 앨리스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다정다감한 남편, 안정적인 커리어와 사랑스러운 세 아이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앨리스는 자신의 일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익숙한 레시피를 잊어버리고, 익숙한 길을 잃거나 약속을 잊기도 합니다. 앨리스는 '조발성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습니다.

앨리스의 병은 가족력으로, 아이들에게도 유전될 수 있습니다. 앨리스는 이 사실을 고백하며, 자신의 병이 가족들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임신을 준비하던 큰 딸 애나가 양성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딸은 물론 손녀와 손자에게도 유전될 수 있다는 걱정에 앨리스의 죄책감은 더욱 심해집니다.

앨리스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매일 단어 퀴즈를 풀고, 아이들의 이름, 자신의 생일 등을 매번 반복해 메모하지만, 앨리스의 노력과 관계없이 병은 점점 깊어집니다. 자신의 병은 물론 자신의 존재까지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고 느끼게 된 앨리스는 죄책감에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하면, 꼭 이 영상이 시키는대로 하라"며 미래의 자신에게 자살을 지시하는 영상을 남깁니다. 죄책감으로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스틸 앨리스> 스틸컷

하지만 병세가 깊어진 앨리스는 영상 속 지시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자살 시도는 실패로 끝납니다. 그리고 앨리스는 서먹하던 막내딸 리디아와 가까워지며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집니다. 간단한 단어도 기억해내지 못하면서도 앨리스는 리디아에게 'LOVE'라는 단어를 기억해 들려줍니다.

앨리스의 깊은 죄책감도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죄책감 아래 깔려있던 사랑은 앨리스가 잊어버리지 못한 유일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앨리스의 죄책감을 뚫고, 앨리스의 삶의 균형을 바로 세우며, 앨리스를 다시 나로 살아가게 합니다.

고통의 굴레 끝에 남긴 사랑이라는 단어, <그을린 사랑>

영화 그을린 사랑
이미지 출처: 영화 <그을린 사랑> 스틸컷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몬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서와 함께 편지 두 통을 받습니다. 어머니는 편지 한 통은 쌍둥이의 친부에게, 또 다른 편지는 쌍둥이가 존재조차 몰랐던 오빠이자 형에게 전달해달라 당부합니다. 그 전에는 자신의 묘비를 세우지 말라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이 담겨 있습니다.

잔느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납니다. 쌍둥이의 어머니, 나왈은 중동계 이민자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이 첨예한 갈등과 내전을 온몸으로 겪은 인물입니다. 나왈은 이슬람교도와 사랑에 빠져 첫 아이를 임신해 명예 살인을 당할 위험에 처하고, 결국 아이를 빼앗기게 됩니다. 나왈은 내전 속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고아원으로 향하지만, 고아원이 파괴된 것을 보고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그을린 사랑> 스틸컷

아이를 빼앗기고, 다시 만나지 못해 결국 아이를 잃게 되었다는 나왈의 죄책감은 나왈을 복수로 이끕니다. 이후 나왈은 정치범으로 감옥에 15년 동안 수감되며, 그곳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아이까지 출산하게 됩니다. 충격적인 이야기는 더 남아있습니다. 잔느와 시몬의 친부인 고문관, 아부타렉이 나왈의 첫 아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쟁으로부터 시작된 비극은 복수라는 파괴적인 감정과 더해져 한 가족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대물림합니다. 하지만 나왈은 이 모든 굴레를 끊어내고자 합니다. 아부타렉의 정체를 알게 된 나왈은 편지 속에 "네가 태어나던 날, 어떤 일이 있어도 널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며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고 말합니다. 쌍둥이에게도 너희의 시작은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으로 시작되었음을 잊지 말라 당부합니다.

죄책감과 복수로 뒤얽힌 고통의 굴레를 자신의 손으로 끊고 싶었던 나왈. 아이들이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바랐던 나왈. 나왈이 남긴 사랑이라는 단어를 오래도록 곱씹게 되는 이유입니다.


사소한 실수부터 돌이킬 수 없는 선택까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죄책감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죄책감을 고통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도록 죄책감은 우리를 가두는 감정으로 이야기 되어왔습니다. 죄책감은 후회와 자기혐오로 얼룩져, 쉽게 지울수도 벗을 수도 없는 감정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책감은 후회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속에 남아 그때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그때와 비슷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고,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결국 죄책감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중심이 되기도 하죠.

나를 찌르고 흔들지만, 단단히도 만드는 감정. 우리 삶의 과정과도 닮아있습니다. 죄책감을 통해 삶의 균형을 배우게 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