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붙이지 못한 채로 끝난 것들

그 땐 그게 전부였던 우리들에게

이름 붙이지 못한 채로 끝난 것들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들' 스틸컷


관계라고 하면 우리는 으레 로맨스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가장 오래 남는 관계는 연인만은 아니었습니다. 종일 학교에서 얘기를 나눴는데도 돌아와 집 전화기를 붙잡고 밤새워 일상을 나누던 시간, 우윳갑 모양으로 편지를 접고 과자 봉지로 가방 모양을 만들어 축하해 주던 서프라이즈 파티, 그 애가 다른 친구와 논다는 것만으로도 샘이 나던 때. 그 시절 우리에게 그 관계는 생존이었고, 내 세계의 전부였습니다. 다만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해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관계의 시작에는 수많은 축하와 예의를 갖추지만, 정작 '끝' 앞에서는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이 글은 관계의 마지막 페이지를 우아하게 닫기 위한 예의, 즉 유통기한을 인정하는 태도에 관하여 말합니다. 세 편의 영화가 나이의 결을 달리하며 같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들이, 한때 개인의 세계를 지탱했던 가장 진한 사랑이었다는 것을요.

(※ 본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봉숭아꽃이 물들던 여름

윤가은, <우리들> (2016)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들' 스틸컷


여름방학, 선과 지아는 서로의 전부가 됩니다. 사춘기 시절의 친구란 단순히 노는 상대가 아니라, 내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거대한 타자이기 마련입니다. 전부였기 때문에 조금만 어긋나도 세계 전체가 흔들렸고, 그 공포는 서로를 더 날카롭게 할퀴는 상처가 되어 남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손등에 봉숭아꽃을 물들여 주던 그 오후가 있었습니다. 내 비밀을 처음으로 털어놓던 그 골목,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던 그 여름날의 공기.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들' 스틸컷


그렇기에 선은 전학생 지아가 학급의 실세인 보라와 친해질 것을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곁에 묶어 두려 처절하게 노력합니다. 하지만, 지아는 결국 보라와 가까워지며 선을 멀리하게 되죠. 실제로 이 시기의 많은 여자아이들이 더 큰 무리에 편입하고자 순수성을 배신하거나 권력을 좇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지아가 보라를 모방해 바르는 매니큐어는 세련되지만 왠지 작위적입니다. 선이 지아에게 봉숭아물을 들여 주던 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들' 스틸컷


그 안에서 가장 오래 남는 대사는, 의외로 선의 어린 동생 입에서 나옵니다.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기를 반복하는 누나를 지켜보다 툭 던지는 한마디.

그럼 언제 놀아? 나 계속 맞고, 계속 때리고, 계속 맞고, 계속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이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서로를 할퀴면서도 놓지 못하는 관계의 본질이, 곧 그 시절 우리가 서로를 그만큼 원했다는 증거였음을 가장 날카롭게 꿰뚫는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들' 스틸컷


영화는 권선징악적 단절이나 극적인 화해를 거부합니다. 운동장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이전처럼 손을 맞잡지도, 외면하지도 않은 채 모호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이들의 서툶과 이기심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어기제였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그 미숙함이 잘못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고, 지나간 것을 담담히 수용하길 바라는 마음이 스토리 전반에 짙게 담겨 있습니다.

10대 시절, 이성보다 친구가 세계의 전부였던 시절, 손톱에 꽃물이 물들듯 서로의 마음에 붉게 스며들던 그 아름답고도 복잡한 마음들. 그 섬세한 기억의 파편들이 모여 지금의 나라는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랑해 대신 조심해

조현철, <너와 나> (2023)


이미지 출처: 영화 '너와 나' 스틸컷


수학여행 전날 밤, 두 소녀 세미와 하은이 함께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들로 웃고, 사소한 것들로 다투고, 그러면서도 서로 곁에 있는 하루. 이 영화는 그 평범하고 눈부신 하루를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리고 그 하루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조현철 감독은 2017년 광화문 집회에서 한 학생이 "친구가 꿈에라도 나와서 인사해 줬으면 좋겠다"고 발언하는 것을 목격했고, 그 간절한 염원을 영화적 실체로 번역해 냈습니다. 영화 내내 화면을 우울한 색채 대신 생동감 넘치는 활기와 환상적인 빛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 눈부신 하루가 더 눈부실수록,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더 선명해집니다. 이것이 이 영화가 택한 애도의 방식입니다.



두 소녀 사이에서 가장 절실한 언어는 "조심해"라는 한마디였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단어 하나에 다 담겼습니다. 명명되지 못한 사랑의 가장 절실한 발화였죠. 마지막인 줄 모르고 건넨 평범한 인사들이, 남겨진 자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자책의 문장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이 나눈 진심의 총량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체하고도 남을 만큼 이미 충만한 마침표였습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그 밤, 세미는 차마 하은 앞에서 꺼내지 못한 말을 자신의 앵무새 조이에게 수십 번이고 되뇝니다. 그토록 애달팠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잠들기 전 조용히.




떠난 이가 빛과 거울, 혹은 불어오는 바람의 형태로 여기에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남겨진 이들이 완전히 믿어낼 때, 비로소 세미와 하은은 생사를 초월해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그때, 이별의 끔찍한 방식이 관계가 지녔던 고유의 가치를 결코 훼손할 수 없음이 증명됩니다. 두 소녀의 투명한 교감은 미완이 아닌 완성된 사랑의 자리에 놓여 마땅합니다. 영화는 남겨진 자들에게 관계가 끝내 매듭짓지 못한 서사로 남았다는 죄책감을 내려놓고, 아름답게 치유하길 바라는 숭고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박혜수, 김시은의 [너와 나], 영화 ‘너와 나’ OST




마침표 너머의 변주

리처드 링클레이터,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이미지 출처: '비포 선셋' IMDb


앞선 영화들이 관계의 서툰 시작과 불가항력적인 단절을 응시했다면,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셋>은 유통기한이 지난 관계가 한 개인의 내면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물리적인 관계는 끝났을지언정, 그 시절의 교감은 삶의 저변으로 세련되게 스며듭니다. 오직 하루를 함께했을 뿐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연인이라는 협소한 이름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습니다. 

비엔나에서의 하룻밤 이후 9년. 파리에서 재회한 셀린과 제시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영감이었음을 확인합니다. 제시는 그날을 소설로 썼고, 셀린은 자작곡을 불렀죠. 찬란했던 하루는 소멸하지 않고 각자의 창작물 속에, 그리고 일상의 호흡 속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었습니다. 9년이 지나도록 서로는 서로의 가장 깊은 영감이었던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비포 선셋' IMDb


파리의 골목을 거닐며 나누는 대화에는 엇갈린 타이밍에 대한 회한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습니다. 9년이라는 긴 공백을 가로질러 확인한 진실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은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으며,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재회는 상대의 존재를 확인하는 절차를 넘어, 서로를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된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비포 선셋' IMDb

나도 간단히 잊을 수가 없었거든. 요즘은 다들 쉽게 사랑하고 쉽게 끝내잖아. 옷 바꿔 입듯 상대를 쉽게 바꾸지. 난 아무도 쉽게 잊은 적 없어. 누구나 저마다의 특별함이 있거든. 헤어진 빈자린 딴 사람이 못 채워줘. 난 헤어질 때마다 큰 상처를 받아.


멋들어진 말 대신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이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굳이 낭만적인 이성적 감정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 시절 오로지 '나'였고 '서로'였던 그 자체로, 그들은 파리의 선셋 아래 충분히 눈부셨으니까요. 잊지 못한다는 말만큼 진실된 것은 없습니다. 마침표를 찍은 관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는 문장 속에, 흥얼거리는 노래 속에, 그리고 생의 중요한 선택들 속에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 나의 일부로 영원히 흐릅니다.



만남에는 정해진 시절이 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이면 관계의 밀도와 우선순위는 필연적으로 변합니다. 거리를 둔다며 서운해 할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지 관계의 계절이 저문 것일 뿐, 그때의 교감 자체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과 지아에게 관계는 봉숭아물처럼 서툴고 번지더라도 따뜻하게 스며들었던 온기였고, 세미와 하은에게는 끝이 어떻게 왔든 훼손되지 않는 마음의 증거였습니다. 제시와 셀린에게는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고 예술적 영감을 부여하는 모티프였죠.

그러니 스스로를 '인색한 사람'이라 깎아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관계의 유통기한을 인정하는 것은, 지나간 인연을 실패라는 서랍에 숨겨 두지 않겠다는 자신에 대한 굳건한 선언일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일에 서툽니다. 이름 붙이지 못해 흩어지던 그 감정들은, 여름날 손등에 들였던 봉숭아물처럼 삶 어딘가에 날것의 선홍빛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그 계절은 지났을지라도, 과거의 온 세계를 지탱했던 그 빛깔만큼은 결코 바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한때 당신 곁에 머물러 주었던 그 사람에게, 이 문장들이 조용히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