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게 될 때

점, 선, 면으로 걸어본 러너들의 카페 라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게 될 때
이미지 출처: 카페 라이다

브랜드는 제품을 파는 동시에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널리 외치고 있는데요. 시선을 끄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많지만, 좋은 여운을 남기며 또 만나고 싶어지는 소통은 드뭅니다.

차이는 관점과 연결입니다. '판매자의 관점에서 출발한 단편적인 콘텐츠'와 ‘고객의 관점에서 출발한 유기적인 콘텐츠’. 필자는 이 차이가 진정성 있는 소통과 관계를 만들어낸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유사한 형상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입니다. 이미 수많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해본 소비자들은 점점 더 숨겨진 디테일과 배려들을 섬세하게 발견합니다.

이미지 출처: bauhaus bookshelf

바실리 칸딘스키는 『점, 선, 면』에서 모든 형태의 시작을 하나의 점으로 보았습니다. 점에 방향성이 생기면 선이 되고, 선들이 연결되면 면이 됩니다. 브랜드가 고객들과 연결되는 방식을 여기에 빗대보면 어떨까요.

점은 브랜드의 출발점이 되는 추상적인 철학입니다. 선은 그 철학에서 출발한 구체적인 움직임입니다. 고객이 실제로 느끼고 체험할수 있는 것들이에요. 면은 이 궤적들이 연결되며 만들어내는 인식, 이미지, 가치와 같이 브랜드가 갖게 되는 자산입니다.

오늘은 이 점-선-면이라는 흐름을 따라 소개해 드리고 싶은 브랜드의 공간이 있는데요. 서울을 달리는 러너들의 사랑을 받는 코스인 잠수교, 그 곁에서 조용히 러너들을 기다리고 있는 카페 라이다입니다.


점ㆍ추상적 컨셉
러너의 몰입

라이다는 스포츠 활동을 위한 퍼포먼스 아이웨어를 만드는 국내 브랜드인데요. 라이다의 출발점이 되는 언어는 러너들의 '몰입'입니다. 운동선수들의 눈을 보호해주는 퍼포먼스 아이웨어에서 ‘일체감’은 특히 중요합니다. 역동적인 신체활동 중 프레임이 흔들리거나 얼굴의 일부를 압박한다면 불편하겠죠.

라이다는 기술을 통해 러너들의 몰입을 도울 수 있는 제품을 구현했습니다. 광대뼈의 크기나 코의 높이와 상관 없이 전 세계 모든 러너들이 보편적으로 착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죠. 손으로 셀프 피팅이 가능한 코받침이 있어 얼굴형에 맞게 착용감을 최적화시킬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미지 출처: 라이다 웹사이트

브랜드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제품이고, 제품이 판매되어야 브랜드는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가 생존에서 의미로 나아가듯, 브랜드도 공동체에 의미있는 영향력을 주고받고 싶어합니다. 이때 매장이라는 공간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제품 진열과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기에 상업적인 맥락을 벗어나기가 힘들죠. 세일즈나 프로모션 이외의 소통이 일어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여기서 라이다의 ‘몰입’이라는 점은 ‘러너들과의 관계’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갑니다. 그 선이 바로 카페 라이다라는 공간이었습니다.


선 — 구체적 소통
카페 라이다

1) 러너들의 시간과 공간

이미지 출처: 카페 라이다

오전 7시 30분, 카페 라이다의 오픈 시간입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달리고 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아침 일찍 달리고 커피 한잔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러너분들도 많죠. 잠수교는 서울로 런트립을 오는 러너가 있다면 꼭 달려보라고 추천해줄 정도로 멋진 코스입니다. 한강 바로 위를 가로지르는 광활한 다리를 건너다보면 수많은 러너들을 만나죠. 카페 라이다는 러너들이 실제로 달리는 시간과 공간 곁에 있었습니다.

2) 첫 인사와 끝 인사, 머무름과 나아감 사이에서

카페 문 앞에 서면 문을 여닫는 버튼이 보입니다. 카페에 들어가는 러너에게는 ‘Finish’, 다시 하루를 이어가는 러너에게는 ‘Start’라고 말을 건네는 버튼입니다. 머무름과 나아감, 이 사이에서 카페 라이다의 시공간은 자연스럽게 러너의 여정과 하나가 됩니다. 러닝 전 지하에 물품보관을 하러 온 러너, 피트스탑에 들리듯 재정비하는 러너, 오늘의 러닝을 마무리하고 차분히 회복하는 러너, 동료들과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러너들이 보입니다. 일상복 차림으로 커피와 공간 그 자체를 즐기러 온 손님들도 함께합니다.

3) 달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

커피를 주문했는데 생수 한 병이 바디 와이프와 함께 나옵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흘렸던 땀을 닦고, 수분을 보충합니다. 카페에 막 도착했을 때 느끼는 찝찝함과 목마름. 그 불편함을 헤아리고 있다는 다정함이 느껴집니다. 라이다의 아이웨어에 담겨 있던 몰입에 대한 일관된 고민이 카페에서도 이어지는 듯 합니다. 쇼케이스 안에 진열된 “Run Boost”, “Fresh Finish” 라는 이름의 에너지 드링크도 재밌습니다. 러너 입장에서 러닝 전후 자기 상황에 맞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게 되거든요. 필자는 러닝을 끝내고 방문한 터라 ‘상쾌한 마무리’라는 의미에 시선이 갔습니다.

4) 달리기라는 세계관으로 초대하는 미쟝센

창가에는 잠수교 인근 추천 러닝 코스가 담긴 신문 오브제가 놓여 있습니다. 매장 가운데에는 해외 컨템포러리 러닝 매거진 Mental Athletic이 모여 있어 편하게 열람해볼 수 있었어요. 벽면의 스크린에서는 영화나 경기에서 달리는 장면들을 콜라주한 영상이 반복 재생됩니다. 경기를 하는 운동선수, 도망치고 추격하는 영화속 인물들, 데이트를 하며 뛰어노는 연인들, 영상 속 인물들의 달리기는 스포츠 안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달리는 동물이었음을 상기시켜주네요. 신문, 잡지, 영상은 ‘달리기’라는 인간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문화적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나’의 러닝에서 ‘우리’의 러닝으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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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유로운 거리감

이미지 출처: 카페 라이다

브랜드에서 전개하는 공간에 제품 이야기를 완전히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카페 라이다도 지하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두고 있는데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매장과 제품에 대한 메시지가 카페 경험을 방해하지 않도록 분리했다는 겁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기다림과 용기가 필요한 선택인데요. 덕분에 러너로서 카페에서는 온전히 휴식, 회복, 대화에 몰입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1층에서부터 상업적 메시지나 광고로 인한 피로감을 느꼈다면 러너로서 다시 쉬러오고 싶은 공간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공간에 익숙해지고 나니 매장을 둘러보는게 또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되기도 하더군요. 고객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제공하고, 브랜드는 한걸음 물러나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단지를 찔러넣는 일방적인 접근이 아니라, 먼저 고객이 호기심을 느끼고 스스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라이다의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면 □ 해석된 이야기

각자의 라이다

카페에서 휴식을 취한 후 자동문에 적힌 “Start” 버튼을 눌러 다시 잠수교 방향으로 나왔습니다. 터널을 통과하니 아까 신문 오브제에서 봤던 문안(RUNNING START HERE)과 사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카페 안에서의 기억과 지금 여기의 감각이 다시 연결됩니다. 아마도 이 페이지는 카페에 방문했을 러너의 시점과 동선을 상상하며 만들었을 겁니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태도가 없었다면 이 장면과 맥락을 그려볼 수 없었겠죠.

집으로 돌아오며 필자가 발견했던 조각들을 하나 둘 회상해봤습니다. 7시 30분이라는 오픈 시간, 잠수교라는 위치, 건네받은 생수와 바디 와이프, 상징적인 오브제, 휴식과 몰입의 기억, 그리고 잠수교로 다시 나오며 보았던 풍경까지. 라이다는 '러너의 몰입'이라는 브랜드의 언어를 시간, 공간, 오브제, 서비스라는 느낌의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브랜드가 품고 있는 뜻과 철학, 그 점은 아직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추상적인 관념입니다. 하지만 그 점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움직이면 선이 됩니다. 선들이 서로 연결되면 고객의 머리 속에서 맥락과 이야기라는 면이 만들어집니다. 남에게 들은 설명은 금방 휘발되지만, 스스로 발견한 이야기들은 더 오래 남습니다. 카페 라이다가 필자의 기억에 남은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겁니다.

카페를 들어가며 누른 Finish 버튼과 다시 잠수교를 향해 나서며 누른 Start 버튼. 그 사이에 라이다의 공간은 조용히 러너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