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코어의 중심, 토마토 시집 2권
Z세대가 제철 과일을 '시집'으로 즐기는 방법

“사과가 되지 말고 도마도(토마토)가 돼라.”
최근 SNS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말, 들어보셨나요? 토마토처럼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원래는 북한 속담이지만 Z세대 사이에서는 하나의 ‘밈’처럼 유행하고 있습니다. 토마토에 대한 관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퍼져 나가고 있는데요. 티셔츠, 키링, 책갈피 등 패션과 일상 소품에서도 토마토 디자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심지어 서점에서도 ‘토마토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토마토를 주제로 한 시집이 등장해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는데요. 화사하고 귀여운 표지와 함께, 읽다 보면 토마토가 지닌 복합적인 상징성과 감성에 눈물 짓고 또 웃게 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시집과 함께 출시된 굿즈까지 구입해 여운을 간직하려 하고요. 올여름 10, 20대 사이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토마토’. 오늘은 MZ세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펴낸 토마토 시집 두 권을 소개합니다.
감정이 말라붙은 시대에
'단단함'이라는 미덕

토마토 중에는 ‘소의 심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품종이 있습니다. 크고 무거운, 불규칙한 하트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요. 이 붉고 울퉁불퉁한 토마토를 심장에 비유한 시집이 있습니다. 바로, ‘문단의 아이돌’ 이라 불리는 고선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입니다.
‘심장보다 단단한’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은 강인함과 감수성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단지 모양만이 아니라, 토마토에 비유된 심장은 여러 감정과 의미를 담아냅니다.
아삭아삭할 겁니다. 겨울을 견뎌 본 심장이라서요.
_ 고선경,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시인의 말 중
시인의 말을 시작으로, 시집은 기쁨과 슬픔, 진심과 고백을 이야기하며 토마토 한 알에 “우리가 살아서 나눠 가진 아름다움”을 담아냅니다. ‘영원히 찾아 헤매겠다 생각했던 것들 (…) 사람의 것과 사람의 것 아닌 아름다움’을 좇는 기대와 소망을 품고 있으며, ‘침착하게 식어 가기 / 최선을 다해 가라앉기’ 같은 구절을 통해 에너지가 넘치던 시간을 지나 고요한 수용의 시기로 나아갑니다. 또한 ‘슬픔은 늘 뭉텅이야 / 흐느끼지 말고 시원하게 울어’ 라는 말에는, 슬픔을 억누르기보다 충분히 흘려보내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 모든 감정의 흐름 끝에서 독자는 단단하고 아삭한 토마토로 성장한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시인이 직접 밝힌 “떨군 고개를 원래 스트레칭하려 해던 척 한 바퀴 돌리는 것까지가 제 시집의 장기” 라는 말처럼, 시 전체에 유연하고 너그러운 시선이 흐릅니다. 특유의 유머와 패기, 솔직한 고백은 삶의 무거운 감정들을 유희 가득한 방식으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시인이 토마토를 통해 그려낸 감정은 상처받기 쉬운 것이지만, 동시에 상처 위에 껍질을 덧입히며 살아가는 생명력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
감정이 쉽게 메말라가는 시대에, ‘단단함’ 이라는 미덕을 품은 토마토는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을 품어주는 상징으로 떠오릅니다. 일상적이고 경쾌한 언어 속에서, 고선경 시인은 소외되고 상처 받은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합니다.
텁텁하고 서툴렀던
그 시절 여름을 추억하며

차정은 시인의 시집 『토마토 컵라면』은 여름의 뜨겁고 끈적한 기억, 첫사랑과 이별, 청춘의 순간들을 일상적인 소재 속에 담아낸 청춘 시집입니다. 제목 속 ‘토마토’와 ‘컵라면’이라는 조합은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시선을 끄는 첫인상을 주는데요. 시집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독특한 조합이 지닌 의미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됩니다. 시인은 “토마토의 새빨간 색은 여름을 떠올릴 수 있는 색, 컵라면은 시원한 여름 계곡에서 먹던 기억을 표현한 제목이 됐다”고 소개하며, 그 상징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익숙한 컵라면과 상큼한 토마토의 조합처럼, 시집 속에는 서툴고 솔직한 사랑과 아련한 추억이 절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여름의 텁텁하고 서투른 글자들에 한 철 식은 추억을 하나둘 눌러 담았다. 나의 사랑 가득한 여름 이야기에는 언제나 쌉쌀한 토마토의 향기가 잔뜩 퍼진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겨울이 되어서야 여름 햇살이 그리워지듯, 지나고 나서야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죠. 이 시집은 바로 그런 기억들을 붙잡아 산뜻하면서도 아련한, 한 철 식은 추억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는데요. 지나간 순간을 애틋하게 되새기도록 만듭니다.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 속에는 사랑했던 시간의 열망과 식어가는 감정의 여운이 함께 녹아 있어, 독자들에게도 지난 날의 소소한 감정과 추억을 자연스럽게 곱씹어보게 합니다.
『토마토 컵라면』의 인기는 대형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10, 20대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 각종 SNS 채널에서 콘텐츠로 재해석 되고 공유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시집을 모티브로 한 티셔츠, 휴대폰 케이스 등 여러 굿즈도 제작되어, 일상의 영역에서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그만큼 이 시집은 청춘의 여름과 사랑을 함께 기억하고 추억 하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익숙하고 사소한 것들이 문학 속에서 어떻게 특별해지는 지를 보여주는 시집, 『토마토 컵라면』은 청춘의 감정들을 담백하게, 또한 깊이 있게 전합니다.
"저렇게 던져 놓아도 내년엔 토마토가 열리더라. 신기해."
-영화 '리틀 포레스트' 중
먹다 남은 토마토를 흙 밭에 툭 던지며 내뱉은 이 대사에는 토마토의 생명력과 회복력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토마토에 끌리는 건 단지 맛이나 귀여운 모양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불확실한 시대, 건조한 감정, 가벼워진 관계 속에서 우리는 토마토를 통해 자연의 흐름과 건강한 삶, 진심 어린 감정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소개한 두 권의 토마토 시집도 그런 마음을 표현합니다. 단단하고도 여린, 생기 넘치면서도 아련한 토마토 한 알에 각자의 사랑과 성장, 이별과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토마토처럼 솔직하고 진실한 삶이 우리 일상에서도 열매 맺길 뜨겁게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