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거장이 바라본 메가시티, 영화 <도쿄!>

도시와 관계에 대한 상상력

세 거장이 바라본 메가시티, 영화 <도쿄!>

도쿄는 천만의 삶이 뒤엉키는 메가시티입니다.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로 상징되는 도쿄의 혼잡함은 이 도시를 이루는 복잡한 연결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히키코모리 문화나 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1인 식당의 풍경은 필요 이상의 연결, 혹은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고독이 이 도시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영화 <도쿄!>는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 세 감독이 입체적인 이 도시를 각자의 언어로 담아낸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존재보다 쓸모를 요구받는 개인, 지하에 묻어둔 추악함, 사회적 병리로서의 고립까지. 도쿄라는 도시에 대한 느슨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은 도쿄를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단면을 보게 합니다.


<아키라와 히로코>, 미셸 공드리

이미지 출처: 영화 <도쿄!>

히로코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남자 친구 아키라를 따라 도쿄로 상경합니다. 아키라에게 도쿄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무대이지만 히로코에게는 자신의 쓸모를 끊임없이 되묻는 삭막한 공간입니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주어진 현실의 문제를 충실히 해결해 나가는 히로코이지만 명확한 직업적 목표가 없는 그녀에게 주위 사람은 ‘포부가 없다’라는 평가를 내립니다. 도쿄에서 자신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그녀의 몸이 서서히 의자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도쿄!>

공드리는 도시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우화의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각자의 필요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듭니다. 그 밀도로 인해 이 도시로 향하는 것은 물론 계속 머무는 것 역시 일종의 선택이 됩니다. 이렇게 목적으로 가득 찬 도시는 끊임없이 개인의 쓸모를 묻습니다. 히로코는 남자 친구를 돕기 위해 도시에 왔고 전과 같이 자신만의 취향과 추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관계와 취향만으로 그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고 존재감을 잃어가다 끝내 의자로 변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던 히로코가 사물이 됨으로써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광경은 아이러니합니다. 이 상황을 담담하게, 어쩌면 조금은 기쁘게 받아드리는 히로코의 모습이 개운치 않은 것은 우리 모두 존재가 아닌 쓸모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인>, 레오 까락스

이미지 출처: 영화 <도쿄!>

도쿄의 하수구 깊은 곳에 광인이라 불리는 남자가 살고 있습니다. 그는 맨홀 뚜껑을 열고 거리로 올라와 사람들에게서 담배를 빼앗고 꽃을 씹어 먹으며 거리를 엉망으로 만듭니다. 급기야 폭탄 테러를 감행한 그는 경찰에 검거되어 재판에 넘겨집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광인은 교수형에 처하지만 죽지 않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도쿄!>

광인이 살던 하수구에는 탱크와 수류탄, 욱일기 등 전쟁의 잔재가 가득합니다. 그는 도시가 지하에 묻어둔 채 외면하고 있는 폭력과 함께 존재합니다. 숨겨둔 폭력이 지표면 위로 터져 나오듯 그는 거리의 질서를 어지럽힙니다. 사회 시스템은 그를 처단하는 것으로 사회를 다시 표백하려 하지만 광인은 홀연히 모습을 감출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깨끗한 거리와 단정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도시는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작동하고 있지만 실은 해결되지 않은 많은 논의를 지하에 묻어둔 채입니다. 그것들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까락스는 도발적인 방식을 통해 보여줍니다.

<흔들리는 도쿄>, 봉준호

이미지 출처: 영화 <도쿄!>

11년째 집 밖을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하루는 원을 그리듯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매달 아버지에게서 받는 돈봉투를 열어보기. 배달원과는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기. 매주 토요일에는 피자를 시켜 먹기. 쌓여가는 피자 상자만이 고인 채로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우연히 피자 배달원인 여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그 사소한 사건으로 오롯이 혼자이던 그의 ‘완벽한’ 세계를 뒤흔듭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도쿄!>

여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11년 만에 문을 열고 나선 그가 마주한 것은 텅 빈 거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히키코모리가 되어 버린 도시에 지진이 시작되고 잠시간 격리되어 있던 모든 세계가 동시에 흔들립니다. 하지만 지진이 사그라들자, 거리로 튀어나온 사람들은 다시 자신만의 고독으로 재빠르게 숨어듭니다. 이제 거리에 남은 것은 눈을 마주친 그와 그녀 뿐입니다. 이 도시의 병리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봉합하는 것이 다소 거친 방식이 아닌가 싶다가도  그 사소한 눈빛조차 사라진 것이 이 병리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낯선 사람들이 스치고, 욕망과 기억이 교차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습니다. 때로는 도시의 복잡한 밀도가 오히려 고독을 두드러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세 감독이 도쿄에서 포착하는 것은 바로 그 역설입니다. 히로코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사물이 되었고, 광인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고립을 깨고 나온 남자가 마주한 건 더 광범위한 고독입니다. 이는 모두 도시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관계와 연결이 실패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는 도시에 필요한 관계와 연결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