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해도 특별해지는 대만밴드 4선

‘샹견니’로만 알던 대만의 반전매력

지난 10월, 짙은 초록과 청춘의 나라 대만에 다녀왔습니다. 대만과 밴드를 유독 사랑하는 한 친구는 마주칠 때마다 대만 인디밴드가 얼마나 진국인지 호소하곤 했는데, 대만에 다녀오니 그 마음이 이제야 이해됩니다.

대만의 길거리를 거닐면 빌보드 차트와 한국, 일본의 인기차트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스포티파이 대만 인기차트를 켜보면 세계의 음악이 공존하고 사이사이 현지 음악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을 포용하는 친절한 분위기는 음악을 향한 열린 마음과 일맥상통하여 새로운 음악이 환영받는 대만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대만밴드들이 작년 즈음부터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과 올해 개최된 락페스티벌 라인업에는 대만밴드가 한 팀 씩 자리 했고, 관객은 열광했습니다. 삶을 다채롭게 하는 대만밴드를 혼자 경험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으로 페스티벌 고인물들이 인정한, 내한 전적이 있는 대만 밴드 4팀을 소개합니다.


맑은 가을 오후의 향기가 있다면, Sunset Rollercoaster(落日飛車)

이미지 출처: Sunset Rollercoaster 인스타그램

선셋 롤러코스터는 2009년 타이페이에서 결성된 밴드로, 재즈와 신스팝 사운드를 기반으로 음악을 전개합니다. 작년 혁오와 프로젝트 앨범 “AAA”를 발매하고 투어를 하며 한국의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각인되기도 했죠.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대만밴드의 첫인상으로 남았을 밴드입니다.

주로 영어 가사를 사용하는 선셋 롤러코스터의 앨범을 전체 재생해보면 선명하지 않은 발음이 편안한 분위기를 증폭합니다. 영어 가사의 영향으로 2016년 싱글 발매한 ‘My Jinji’는 스포티파이에서 8000만뷰를 돌파했습니다. 선셋 롤러코스터는 이후 세계적인 공감을 얻으며 활발한 해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벅스 뮤직

2025년 펜타포트 페스티벌에서 혁오 X 선셋 롤러코스터의 합동 무대를 관람했습니다. 두 밴드가 모이면 총 10명이라는 군집이 됩니다. 각자의 소리로 소란할 법 한데 두 팀의 연주는 절묘하고 환상적이었습니다. 최근 선셋 롤러코스터의 단독 내한 공연이 확정되었으니 이번 앨범으로 입덕한 분이라면 공연 정보를 확인해보셔도 좋겠습니다.

한국의 밴드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는 한 인터뷰에서 선셋 롤러코스터에게 영감을 받아 밴드를 만들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세련되게 부드러운 감각을 공유하는 두 밴드의 음악을 번갈아 들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웨이브 투 어스의 음악을 즐기는 분은 선셋 롤러코스터를 누려보세요.

추천곡

My Jinji - 혁오, Sunset Rollercoaster

Vanilla - Sunset Rollercoaster


경험한 적 없는 노스탤지어, The Chairs(椅子樂團)

이미지 출처: The Chairs(@chairchairmusic) 인스타그램

더체어스의 음악은 별다른 일정이 없는 주말 아침을 닮았습니다. 여유롭고도 화창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음악이죠. 어쿠스틱하다가도 사이키델릭하고, 부드러운가 싶다가도 락의 과감함을 보여줍니다. 절묘한 사운드의 더 체어스는 2019년 대만 금곡장(Golden Melody Awards)에서 최우수가창그룹상을 받으며 현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더체어스는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리드보컬과 세컨보컬의 위치를 주고 받으며 다양한 층위에서 화음을 쌓는 순간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하모니에서 살아보지 않은 70년대의 향수를 느끼며 눈을 감고 장면을 그립니다.

데뷔 이후 큰 공백 없이 짧은 주기로 앨범을 발매하며 성실히 청취자를 유입시키고 있는 더체어스는 2025 DMZ 피스트레인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습니다. 열띤 반응에 무대 내내 감격과 행복을 숨기지 않던 더체어스는 한국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 기억하고 있을런지 궁금합니다. 저는 기억하거든요.

추천곡

Maybe Maybe - The Chairs

棉花糖駱駝 - The Chairs


단단한 자부심, Flesh Jucier(血肉果汁機)

이미지 출처: Flesh Jucier 인스타그램

오늘 소개하는 밴드 중 가장 강렬한 비주얼과 사운드를 가진 플래시쥬시어는 헤비메탈 음악을 전개합니다. 2006년 타이중에서 결성된 이 밴드는 사운드는 물론 이미지 역시 빠짐없이 강력합니다.

플래시쥬시어는 대만 특정 지역의 전통을 표현합니다. 앨범 컨셉 포토와 공연 포스터에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민속적인 그림은 대만의 민속문화를 나타내며, 그들의 가면은 대만 지역제사의 돼지머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음악에서도 민남어*를 자주 사용하는 이 밴드는 대만밴드의 고유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밴드입니다.

최근 2025 부산락페스티벌에 초청된 플래시쥬시어는 한낮의 락페스티벌 현장을 더욱 뜨겁게 달구며 화끈한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공연 도중 ‘우리는 중국이 아니라 대만에서 왔다’는 메시지를 외치며 대만 밴드로서의 자부심을 가감없이 드러냈습니다. 사회에 영향을 받는 동시에 반항심을 잃지 않는 인디 정신을 확실히 드러내 매력있는 밴드입니다.

*중국어와 함께 사용되는 대만의 공용어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Wendy Wander

이미지 출처: Wendy Wander 인스타그램

웬디 완더는 2016년에 결성, 2020년에 첫 앨범을 발매한 밴드입니다. 1집 앨범인 <Spring Spring>으로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웬디 완더의 멤버들은 타이페이와 그 근교 도시인 린커우, 산종 등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음악에는 편안하게 재잘거리는 타이페이 교외의 소음이 그대로 담긴 듯 합니다.

2024년 웬디 완더는 한국 밴드 라쿠나와 서로의 곡을 커버하는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라쿠나는 웬디 완더의 대표곡 ‘너와 함께 있고 싶어(我想和?一起)’를 , 웬디 완더는 라쿠나의 ‘춤을 춰요(Dancing in the Rain)’를 재구성했습니다. 웬디 완더는 여성 객원보컬을 섭외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등 한국을 향한 열린 마음을 보여주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데뷔 초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무대로 한국을 찾은 웬디 완더는 최근까지도 2025 그랜드민트페스티벌 등으로 부지런히 내한하며 한국의 팬들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추천곡

Spring Spring - Wendy Wander

Nightglow Dreamer - Wendy Wander, Billyrrom


이미지 출처: 서울국제도서전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는 대만이 주빈국으로 참여, ‘대만감성 臺灣感性’을 주제로 내세웠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대만감성’을 ‘자유로운 바람, 열린 품, 반얀 나무, 골목골목 속 일상’ 등으로 소개합니다. 소담한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 가치를 지키겠다는 대만의 결심이 느껴지는 설명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여유와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 감상의 시간마저 사회의 무언가에게 쫓기는 기분이 드는 한국에서 잠시 고개를 돌려 대만의 밴드를 만나보세요. 꾸밈없이 몸을 흔드는 나를 발견하고 자연히 행복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