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라는 집에 기거하는 과거와 미래
작품을 통해 보는, 미술가 서도호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상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목마를 탄 채 앞사람의 눈을 가리고 있는 사람들이 패턴처럼 나열되어 있는 모습의 동상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우리의 시간을 이어주고 있죠.
이 친근하고 익숙한 작품의 이름은 "카르마"로, 이번 아티클에서 소개할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작품인데요. 서도호의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우리의 현재가 과거나 미래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한복판에서 "카르마"가 우리의 모든 시간대를 하나로 연결해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번 아티클에서는 설치 미술계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서도호의 작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다루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Bridging Home" - 언제나 틈입해 있는 과거

영국의 평범한 건물과 건물 사이, 어디선가 날아와 박힌 듯 한옥이 끼어들어와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10년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화제가 되었던 서도호의 설치 작품, “Bridging Home”인데요. 현재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어릴적 창덕궁 연경당을 본떠 만든 성북동의 한옥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타지에서 지낸 세월이 길어졌음에도 그는 어릴적 자신이 살던 집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Bridging Home”은 서도호가 미국으로 이주해 미술을 공부하며 느꼈던 유년 시절의 향수, 그리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겪은 소속감에 대한 감각이 깊이 반영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현대미술이 낯선 우리나라의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는 커다란 계기가 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죠. 영국의 건물들 사이에 부자연스럽게 끼어있는 한 칸의 한옥은 낯선 환경에 스며들어야 하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버릴 수 없는 이주민, 나아가 ‘소수자(Minority)’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방인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서도호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길이를 자로 재었다고 하는데요. 작품 하나를 통해 그의 모든 이방인으로서의 시간을 헤아려보는 것은 분명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서도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그토록 끈질기게 그의 생을 둘러싸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죠.
서도호의 작품을 보면 지금 여기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와 완전히 구분되는 별개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결국 지금의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우리가 어떠한 경험을 했고, 어떠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영국의 거리 한복판에 날아와 박혀 있는 한옥처럼 과거는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의 현재 사이 사이에 틈입해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로빈 후드 가든” - 끊임없이 휘발되는 현재

1970년대 런던 동부에 건설된 거대 콘크리트 아파트 ‘로빈 후드 가든’은 유토피아적 취지와 달리 점점 슬럼화되다가 치열한 찬반 논란 속에 결국 철거와 재개발이 결정되었는데요. 당시 런던 빅토리아앤앨버트 뮤지엄(V&A)이 건물 일부를 통째로 잘라내 보존하게 되면서 동시에 서도호에게 이곳에 관한 영상작품을 의뢰했고, 그 결과 사진속의 "로빈 후드 가든"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공개되어 큰 화제가 되었죠.
그의 필름은 아파트 한 동이 절반쯤 해체된 상태에서 아직 온전하게 남은 나머지 한 동을 담았습니다. 거대한 외벽, 복도, 아직 사람들이 사는 집들과 이미 떠난 빈 집들의 내부를 수직·수평으로 훑는 이 초고화질 영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성의 생생함을 목격하게 합니다. 카메라의 이동이 느리고 정적인 반면, 빈 방에 드리워진 하얀 사각형의 햇빛은 빠르게 커졌다 줄어들고, 창문 너머 멀리 보이는 굴착기들은 뚝뚝 끊어지는 움직임을 보이는데요. 이는 일반적인 비디오 촬영 영상이 아니라 타임랩스(저속촬영)를 이용한 영상이기 때문입니다.
서도호는 한 인터뷰에서 “동영상 촬영이었으면 30분에 찍을 분량이지만, 거기 살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공간을 그렇게 찍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팀에게 허락된 시간을 완전히 다 써서 타임랩스 사진을 찍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도호가 타인의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해야 합니다.
재개발이라는 시스템은 원래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던 이들의 수많은 과거와 기억을, 즉 인생의 뿌리를 한순간에 뽑아버립니다. 재개발에게 과거란, 질척거리는 것들일 뿐이죠. 하지만 그 시스템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 또한 언젠가 미래의 우리에게 질척거리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의 휘발성을 간과하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누구나 과거의 것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 지금의 나와 무관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타인의 현재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공인들” - 미래를 지탱하는 과거들

커다란 동상 받침대 하나를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모습의 이 "공인들"이라는 작품은 서도호의 말에 따르면 '모뉴먼트의 형식을 취한 안티모뉴먼트' 작품입니다. 모뉴먼트(monument)란, 역사적 사건이나 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조물 및 조형물을 이르는 말인데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모뉴먼트는 역사와 관련된 것인데, 인물과 사건의 선택적 기억과 가치 평가라는 면에서 역사가 불완전하더라도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기준으로 잘못됐다고 다 지워버리면 역사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2020년 ‘BLM(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일어났을 때 영국 시위자들이 과거 노예 상인이었던 인물의 동상을 물에 던져버린 사건을 언급하며 그는 "당시 논란의 동상들을 거리에서 치우고 뮤지엄에 넣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뮤지엄도 역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물을 선택적으로 보존하는 곳이니 정치적 관점이 개입하기 마련이고 이런 동상이 그 컬렉션이 되는 데는 논란이 생길 것. 차라리 동상을 없애고 받침대는 남겨서 흑역사를 지우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는데요.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본다면 우리는 사회 속 개별 주체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떠받드는 위치에 존재하는 것이 각광받는 성공적인 과거들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우리가 지우고 싶어 하는 미숙한 과거들 또한 미래를 지탱하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서도호는 너무나 명확히 알고 있는 듯합니다.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과거는 현재 또는 미래에서 결함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과거를 함부로 지웠을 때, 우리의 현재가 어떤 방식으로 뒤틀려가는지 우리는 여태껏 지켜봐 왔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동상을 없애고 받침대는 남겨서 흑역사를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미래가 조금 더 밝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설치미술가 서도호는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의 "카르마" 동상처럼 우리의 수많은 보편적이고도 개인적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끊임없이 엮어 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각자의 성공만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이처럼 다함께 공통의 시간을 다시금 직조해내는 태도가 필요한 것은, 그 직조의 결과물이 곧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제가 지나면 오늘이 되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이라는 집에는 수많은 어제와 내일이 동시에 기거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배제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더 나은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문소영, <사라진 집들, 논란의 동상들… 기억의 이야기: 서도호 작가 인터뷰>,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4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