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된 스침을 그린 영화 3편

낯선 사람이 우리가 될 때까지

관계가 된 스침을 그린 영화 3편
이미지 출처: Unsplash

좋아하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다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 있으신가요? 학교에서, 직장에서, 혹은 운동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여러 과정과 시간을 거쳐 우리가 되었지만 그 전에는 몰랐던 사람이라는 게 가끔은 신기하기도 합니다.

서울에는 천만 명이 삽니다. 출퇴근길 버스와 지하철, 퇴근 후 들린 카페까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해도 우리는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이름도 묻지 않고 헤어지는 사람들. 스침이 관계가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관계를 만드는 스침을 세 편의 영화로 만나봅니다.


실수가 만들어준 특별한 점심, <런치 박스>

인도의 뭄바이에는 매일 20만 개의 도시락이 배달됩니다. 도시락이 잘못 배달될 확률이 600만 분의 1이라는 다바왈라 시스템이 어느 날 실수를 저지릅니다. 남편과 소원해진 사이를 돌이키기 위해 일라가 정성껏 만든 도시락이 퇴직을 앞둔 회계사 사잔에게 잘못 배달된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런치 박스> 스틸컷

일라는 남편이 저녁에 도시락 메뉴를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도시락이 잘못 배달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날도 정성껏 도시락을 싼 뒤, 쪽지를 넣습니다. "제 남편을 위해 만든 음식입니다. 도시락을 다 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몇 시간 동안 행복했습니다." 쪽지를 받은 사잔도 답장을 넣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이에서 매일 이야기를 주고받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런치 박스> 스틸컷

남편과 함께 있어도 외로운 일라, 아내의 죽음과 퇴직을 앞두고 고독한 사잔의 모습은 어쩐지 닮아있습니다.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사이기에 오히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솔직해지고, 서로의 위로가 되어줍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대도시의 익명성 아래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때로는 친한 친구보다 인터넷에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편한 이유도 이 때문은 아닐까요. <런치박스>는 말합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해도 우리는 서로의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가장 가까운 타인, <썸원 썸웨어>

파리에 사는 레미와 멜라니는 5미터 거리의 옆집에 살지만 서로를 알지 못합니다. 레미와 멜라니는 같은 카페를 가고,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식료품점에서 음식을 구매하지만 놀랍도록 서로를 마주치지 않습니다. 거대한 도시 파리 아래에서 두 사람의 일상은 같지만 다르게, 각자의 속도로 흘러갑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썸원 썸웨어> 스틸컷

어린 시절 여동생을 잃은 레미는 지하철에서 쓰러질 정도로 극심한 불안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멜라니는 전 남자친구와의 이별 후 몸이 망가질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에 시달립니다. 두 사람은 꾸준히 상담을 받지만 내면의 상처는 두텁기만 합니다. 그러던 두 사람은 상담을 통해 과거를 마주하며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옆집에서 들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주위 사람들과 마주하는 등 외부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썸원 썸웨어> 스틸컷

거대한 도시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각자의 상처에 갇혀 바로 옆에 있는 친구의 이야기까지 들리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요. <썸원 썸웨어>를 보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긴 시간을 거친 뒤에야 타인과의 관계를 여는 시작점이 됩니다.

피할 수 없는 사이, <6번 칸>

이미지 출처: 영화 <6번 칸> 스틸컷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이던 핀란드 유학생 라우라는 암각화를 보러 무르만스크로 향합니다. 그리고 '6번칸'에서 러시아 광부 료하를 만납니다. 연인 이리나와 만나려 했던 여행에서 혼자 오게 된 것도 모자라 술 냄새를 풍기는 무례한 료하와의 만남은 라우라를 불편하게만 만듭니다. 며칠을 함께 보냈음에도 라우라는 누군가 두 사람이 일행이냐 묻자 "친구 아니다" 라고 잘라 말할 정도로 거리를 둡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6번 칸> 스틸컷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계속 먼 상태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차가 달리듯이 두 사람 사이도 변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료하의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료하는 암각화가 보고 싶은 라우라의 꿈을 이해해주고, 6번 칸 안에서 피할 수 없어 마주했던 남자를 라우라는 '료하'라고 부르게 됩니다.

모든 관계가 우리가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6번 칸>의 두 사람처럼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관계가 우리에겐 더 익숙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는 우리에게 달린 것은 아닐까요.


지난 주말, 꽃이 잔뜩 피어있는 공원에서 노부부에게 사진을 찍어달란 부탁을 받았습니다. 사진을 찍어드리며 오랜만에 타인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어쩌면 다시는 만날 일 없는 스침이겠지만, 그날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관계가 그렇게 스침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