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이 삼키지 못한 문장들, 머무름의 책 3권

결론 중심 독서의 시대, 사유의 주권을 되찾는 일

요약이 삼키지 못한 문장들, 머무름의 책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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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감상하며 묘한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25년간 제지업에 몸담으며 삶에 만족하던 전문가 ‘만수’가 구조조정을 이겨내지 못해 밀려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죠. 그에게 날아든 해고 통보서에 적힌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정성을 지워버리는 시스템의 차가운 얼굴을 대변합니다. 기계가 찍어내는 속도 앞에서, 몇십 년간의 숙련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수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타인을 MBTI 네 글자로 유형화하고, 영화의 결말을 유튜브 요약본으로만 소비하며 빠른 답을 선택하도록 권유받는 일상.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머뭇거리며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유의 주권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며 효율의 세계로 등 떠밀 때, 저는 보란 듯이 며칠간 멈춰 서야만 했던 세 권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지성을 멈춰 세우는 백색의 장벽

한강, 『흰』

한강 『흰』 표지

한강의 『흰』은 논리적 서사를 따라가는 독서라기보다, 자욱한 백색 풍경 속에서 흰 사물의 물성을 하나씩 더듬어 나가는 촉각적인 경험에 가깝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페이지든 무작위로 펼쳐 그곳의 '흰 것'에 마음이 베이는 경험 자체가 곧 독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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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필자를 오랫동안 멈춰 세운 것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아기에 관한 에피소드였습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중얼거렸지만 아기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맙니다. 작가는 이 아기를,

어린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무력한 짐승, 달떡처럼 희고 어여쁜 여자아이


라​고 호명합니다. 이 '달떡'이라는 단어는 앞장의 본문에 나온 후 다시 다음 장의 제목으로 튀어나오며 독자를 강제로 멈춰 세웁니다. 이 비유가 지닌 슬픔과 아름다움 앞에서 필자는 지성의 개입을 멈추고, 몇 번이고 책장을 앞뒤로 헤매야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철저한 실패입니다. 하지만 핵심만을 추출하려는 압박에서 벗어나 "아니, 난 그냥 이 문장에 며칠간 갇혀 있겠어"라고 다짐하는 순간, 비효율의 경험은 현대 시스템에 대한 가장 우아한 저항이 됩니다. 이 개별적인 머무름의 경험이야말로, 인간이 여전히 예술의 중심에 서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결말을 알아도 건너뛸 수 없는 생의 밀도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표지

『흰』에서 사물의 감각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면, 테드 창은 그 공간을 채우는 과정의 밀도에 집중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정보를 가장 빠르고 쉽게 획득하는 것은 곧 유능함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테드 창은 외계 존재 헵타포드의 언어를 통해 이 견고한 직선적 시간관에 균열을 냅니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라는 주인공 루이즈의 고백은, 효율성 중심의 사고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죠. 우리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직선의 시간을 순차적으로 살아간다면, 외계 존재 헵타포드는 삶의 시작과 끝이 한꺼번에 펼쳐진 지도처럼 모든 시공간을 동시에 인식합니다.

이 소설의 백미는 루이즈가 딸에게 남긴 편지 형식을 통해, 딸의 탄생부터 모녀가 나누는 찬란한 교류를 묘사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헵타포드 언어를 배우면서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인식하게 된 루이즈는, 딸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아이를 낳고 사랑하기로 선택합니다. “사랑을 나누고, 너를 가지기 위해” 남편과 약속하는 시작 지점과, 죽은 시신을 확인하며 “제 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끝이 맞물리는 이 구조는 생의 무게가 요약된 결과가 아닌 촘촘한 과정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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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의 속도는 결과로만 달려가기 바빠 그 사이의 우여곡절을 지워버리지만, 루이즈의 동시적 세계관은 경험 그 자체가 신성한 목적일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달빛 아래에서 남편과 십 대처럼 춤을 추고, 아이를 잉태하며 느끼는 그 고양감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결말을 알면서도 그 사이를 채우는 감정의 진폭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술의 시대에 되찾아야 할 유일한 주체성일 것입니다.

삶의 의미는 결코 3줄의 결론에 있지 않으며, 그 여정을 채우는 무수한 떨림과 환희의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완성됩니다.



요약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광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표지

감각을 회복하고 시간의 주권을 되찾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타인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별의 시간』은 타인을 완벽히 요약할 수 있다는 현대인의 오만을 신랄하게 고발합니다. 필자 또한 주인공 마카베아의 인생을 마주하고 난 뒤, 그녀의 삶을 ‘결국 가난하고 비참하게 막을 내린 삶’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싶은 욕구를 애써 눌러야 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로만 보면 그녀의 생은 불행의 집합체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고 그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으로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개가 자신이 개라는 것을 모르듯, 그녀도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불행을 인식하지 못했다


리스펙토르가 묘사하는 마카베아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무지해 보이지만, 동시에 타인이나 시스템이 침범할 수 없는 거대한 내적 자유를 지닌 인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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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와 남자친구에게 매번 무시를 당하면서도 보도블록 틈새의 풀잎을 보며, “풀은 참 쉽고 단순하네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변덕스러운 생각, 그리고 자기 전 마시는 설탕 가득한 차가운 커피 한 모금은 효율의 관점에선 무의미한 낭비이자 사치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 사소한 순간들이 곧 온전한 삶의 조각이었습니다. 필자가 마카베아에게 끝내 흔들린 것도 그 커피 때문이었습니다. 속 쓰림을 알면서도 마시는 그 한 모금이 얼마나 충분한 삶인지를, 우리는 너무 쉽게 지나쳐버리지 않았나 싶었죠.

사실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지만, 그 사실들 사이에 속삭임이 있다. 나를 경악시키는 건 그 속삭임이다


라는 화자의 고백처럼, 타인의 삶을 요약하는 행위는 한 인간의 별과 같은 고유한 광채를 삼켜버리는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해 욕구와 결론을 내리려는 본성을 그대로 닮아버린 AI 시대에,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타인에 대해 ‘이해되지 않음의 상태’를 견뎌보시길 바랍니다. 타인을 다 안다고 확신하는 오만함을 버리고 그들의 속삭임 옆에 묵묵히 머무르는 것. 그것이 효율 중심 사회가 지워온, 어쩌면 또 다른 마카베아일지 모를 타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 것입니다.



세 권의 책은 사물의 감각, 과정의 밀도, 해석의 윤리라는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하나의 결론을 가리킵니다. 머무를 수 있는 힘이 곧 인간의 자부심이라는 사실이죠. AI의 정답은 명쾌하지만 우리의 사유를 멈추게 합니다. 반면 문장의 여백 사이에서 길을 잃고 상상을 덧붙이는 오독(誤讀)은, 나만의 의미를 발견하는 창조의 시작이 됩니다. 기술의 폭격으로부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영토는 바로 이러한 비효율적인 머무름입니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속 만수에게 건네진 시스템의 일방적인 통보 대신, 우리는 기꺼이 멈춰 서며 ‘어쩔 수 있는’ 머무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단어 하나에 매료되어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그 찰나 속에, 결말을 알면서도 생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루이즈의 비합리적인 결단 속에 우리의 인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유의 주권은 그 머무름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죠. 그러니 이제 요약된 정답을 덮고, 당신만의 불충분한 이해를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