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울수록 선명해지는 본질
단순함과 구조로 혁신을 만든 독일 디자인 3선
세상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며 발전합니다. 하지만 발전의 방향성은 분야마다 다르게 흘러갑니다. 기술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조금 더 정교하고 복잡하게 진화하지만, 어떤 분야는 반대로 단순화하는 방향을 택하기도 합니다. 디자인이 바로 그렇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프로덕트의 인터페이스는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선과 면만으로 기능을 전달하는 '플랫 디자인'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로고 역시 과거의 복잡한 형태를 버리고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지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애플, BMW 등의 로고가 변해온 과정이 그 증거입니다.
디자인은 심플함의 미학을 통해 과잉의 시대 속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내놓습니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 “무엇이 핵심인가?” 디자인은 이 질문에 답하며 진짜 인간을 위한 모습이 무엇인지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복잡함을 정리하고 구조를 세워, 사람이 인지 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디자인의 발전 과정 속에서, 과연 심플함의 미학은 어떻게 현대 디자인의 토대가 되었을까요? 그 과도기에서 혁명적인 사유로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선보였던 독일의 디자인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디터 람스의 브라운 턴테이블

'디자이너의 디자이너'라 불리는 디터 람스는 글로벌 브랜드 브라운(Braun)에서 산업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는 제품 디자인의 시스템을 정립하고, 브라운만의 일관된 시각적 언어를 구축한 인물입니다. 그의 수많은 대표작 중에서도 필자는 브라운 턴테이블 SK 4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950년대의 오디오 기기들은 대부분 목재로 만들어졌고, 거실 가구처럼 보이기 위해 화려한 장식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SK 4는 이러한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기기를 가구가 아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했습니다.
디터 람스는 차가운 흰색 금속 바디를 전면에 내세워 가구처럼 보이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자기기를 숨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잘 정리된 기술 시스템 그 자체로 당당히 드러낸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기능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구조를 체계화함으로써 심플함의 미학을 실천했습니다. 또한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덜어내고 핵심만을 명확히 남겼습니다. 버튼과 다이얼에 위계질서를 부여하고 기능별로 그룹화했습니다. 정렬과 간격을 통해 기능의 질서를 만듦으로써, 사용자가 별도의 학습 없이도 직관적으로 기기를 다룰 수 있게 배려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Less, but better(적지만 더 좋게)"라는 명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는 단순함을 단순히 '최소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절제를 통해 기능을 질적으로 더 높게 재정의했습니다. 디터 람스의 이러한 문법은 훗날 애플의 아이팟 디자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작 요소를 최소화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구현하며, 현대 산업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바실리 체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현대 디자인의 출발점이라 불릴 만큼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필자가 소개할 '바실리 체어(Wassily Chair)'는 이러한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가장 혁신적인 형태로 구현해낸 디자인 중 하나입니다. 바우하우스의 교수 마르셀 브로이어가 설계한 이 의자는, 동료 교수였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가 즐겨 사용한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본래 이름은 'B3 체어'입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의자는 대부분 목재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의 의자는 장인의 손길을 거친 수공예품으로서 무거웠고,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 같은 형태를 지녔습니다. 네 개의 다리는 정직하게 바닥을 지탱했고, 화려한 조각이나 곡선 장식이 가득했습니다. 의자는 앉는 도구인 동시에 공간을 장식하는 사치품이었기에, 구조보다는 외형의 화려함이 우선시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실리 체어는 기존 의자의 문법을 뒤바꿨습니다. 외적으로 큰 목재 덩어리를 걷어내고 의자를 선(Line)으로 환원했습니다. 자전거 핸들에서 영감을 얻은 강철 튜브 프레임으로 의자의 뼈대를 드러내고, 가죽 스트랩만으로 최소한의 면을 구성했습니다. 장식을 제거해 무게를 가볍게 만든 것은 물론, 가구가 지녔던 권위적인 무게감을 해체한 것입니다. 이 디자인의 진정한 가치는 공간을 비움으로써 그 자리에 인간을 앉혔다는 데 있습니다. 의자가 공간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가구의 구조 사이로 공간이 투과되면서 그 위에 앉은 인간의 움직임이 비로소 주인공이 되게 한 것입니다.
바실리 체어는 이후 현대 의자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재료와 구조를 숨기지 않는 얇은 프레임과 단순한 색채는 현대 가구 디자인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재료를 꾸미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내며 위압적인 권위를 내려놓은 바실리 체어. 이는 가구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인간 존중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픽토그램

1972년 뮌헨 올림픽의 디자인을 총괄한 인물은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시각 시스템 설계자인 오틀 아이허(Otl Aicher)입니다. 그는 뮌헨 올림픽 프로젝트를 통해 완전히 체계화된 시각 언어를 창조해냈습니다. 이전의 올림픽에도 시각적 상징은 존재했지만, 대부분 체계가 부족하거나 국가주의적 색채가 짙은 고전주의 조형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뮌헨 올림픽은 전 세계에서 모인 관람객을 위해 소통에 집중한 시각 언어를 선보였습니다. 통일된 그리드 시스템과 기하학적 단순화, 그리고 반복 가능한 시각 문법을 제시한 이 프로젝트는 오늘날 현대 공공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평가받습니다.
픽토그램의 본질은 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접근성에 있습니다. 오틀 아이허는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더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디자인 방법론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엄격한 그리드 시스템을 픽토그램에 도입했습니다. 모든 아이콘을 동일한 모듈 그리드 위에서 제작하고 기울기를 45도로 제한했으며, 선의 두께를 통일해 수많은 픽토그램이 마치 하나의 일관된 언어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혁신적인 점은 스포츠의 핵심인 움직임을 기하학적 요소로 환원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선수의 몸을 원, 직선, 각도만으로 단순화하여 표현했습니다. 덕분에 모든 종목을 하나의 시각 언어 체계 안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는 개별적인 아이콘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이 픽토그램은 공항, 지하철, 병원 등 현대 공공장소 사인 시스템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언어를 초월해 정보를 전달하고 문화권에 얽매이지 않는 이 표준 시스템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공공 디자인의 기본값이 되었습니다. 디자인이 단순화를 거쳐 국제적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구조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세 가지 사례는 모두 현대 디자인에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하며 디자인의 기본 문법을 정립한 유산들입니다. 이들은 구조를 세우고 단순함을 입히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이 어떻게 인간 중심의 가치를 지켜왔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디자인이란 세계와 인간 사이의 번역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기능을 직관적인 형태로, 방대한 정보를 간결한 기호로, 그리고 무질서를 질서로 번역하며 언제나 인간을 우선시하고 존중해 왔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이 단순해지는 과정은 결코 의미의 축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모든 기능을 늘어놓는 대신 본질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이 복잡한 세계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디자인의 진화였습니다.
우리는 이 혁신적인 사례들을 통해,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거장들의 흔적을 봅니다. 이 글이 앞으로의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본질로 삼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