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 우먼 NOT 파이터
대중이 놓친 스트릿 문화의 시작
최근 방영된 여성 댄스 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 흥행 덕분에 코로나로 침체된 스트릿댄스 씬은 다시 살아나는 듯 활기를 얻었습니다. 이전까지 대중에게 댄서는 무대 뒤에서 아티스트를 받쳐주는 존재로 인식되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 시선을 온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카메라 앞과 조명 아래에서 자신만의 해석과 세계관을 그대로 표현하는 댄서들을 보며, 사람들은 비로소 그들을 예술가 그 자체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프로그램은 하나의 선입견도 만들기도 했습니다. ‘스트릿댄스 = 배틀’이라는 선입견 말이죠.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상대를 압도하는 고난도 테크닉을 선보이고, 모든 박자를 쪼개어 몸으로 풀어내야만 진짜 스트릿댄서라는 오해도 자리 잡게 됐죠. 아무래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서 자연스럽게 승부라는 키워드를 강조했고, 많은 이들이 스트릿댄스의 시작부터 그랬을 거라 믿게 되었어요.
실제 스트릿댄스 커뮤니티에 발을 들이는 순간, 스트릿댄스의 시작은 현재 알려진 배틀 중심 문화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지금부터 우리가 놓쳤던 풍경들을 되짚어보며, 춤이라는 언어 이전에 춤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과 공간의 기억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스트릿댄스를 ‘이겨야 하는 춤’이라고 착각하게 된 걸까요?
춤이 태어나던 자리에는 기술이 없었다

스트릿댄스의 시작에는 화려한 기술의 이름도, 장르별 룰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파티 문화였습니다. 음악과 움직임이 뒤섞인 열기, 웃음소리, 리듬은 늘 언제나 함께였죠.
사실 클럽, 지하공연장, 어두운 파티룸, 좁은 연습실이든 공간의 상태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파티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낮게 떨리는 베이스가 바닥을 타고 올라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리듬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로 그 순간을 더 크게 끌어올렸고, 그 에너지는 파티 안에 있는 모두에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화의 중심이 ‘실력’일까요? 놀랍게도 본질은 아니에요. 그곳에는 누가 더 잘하는지 판단하는 눈도, 공식적인 심사 기준도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단 하나, '지금 이 파티 안에서 함께 춤추자'라는 마음이었죠. 1세대 스트릿댄서들이 그토록 외치던 community vibe는 바로 파티 문화 속에서 피어났습니다.
누군가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몸, 그 움직임을 이어질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는 서클(circle), 서로의 에너지를 북돋는 따뜻한 호응, 그리고 무대도 조명도 없는 작은 공간이 한순간 거대한 파티로 확장되는 기적 같은 순간들. 이 모든 순간은 기술이 아니라 존재와 연결에서 시작됩니다. 이 문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술보다 사람, 경쟁보다 환대가 있었습니다.
기술보다 존재가 먼저였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기 훨씬 전인 1970년대, 뉴욕 브롱스의 블록파티에서 브레이킹이 시작되었습니다. DJ가 브레이크 비트를 트는 순간, 사람들은 둥글게 서클(circle)을 만들었어요. 그 중심에 들어간 사람은 즉흥적으로 몸을 던졌어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윈드밀이나 헤드스핀 같은 기술보다 얼마나 비트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종종 거칠고 투박했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고 날 것 그대로였죠. 보는 사람들도 환호하며 개인의 스타일을 인정했고, 서로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얽히며 공통의 에너지를 빚어냈습니다.
그 순간 그들에게 중요한 건 누가 더 잘했는지가 아닌, 누가 이 비트를 더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지었어요. 이런 흐름은 브레이킹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죠. 같은 시기, 다른 도시에서도 몸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는 움직임이 피어올랐습니다.
영상 출처: Youtube 채널, Red Bull BC One Red bull Lords of the Floor 2024
왁킹(Waacking)의 탄생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1970년대 LA의 게이클럽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당시 동성애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차별 속에서 말로 자신을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몸으로 외치는 방식이었어요. 디스코 음악이 울려 퍼지는 클럽에서 그들은 팔을 크게 돌리고, 뻗고, 회전하며, 카메라 플래시의 대상이 된 듯 포즈를 취했어요. 누구도 마이크를 건네지 않았지만, 그들의 몸은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이게 나다”라고 또렷이 외쳤습니다.

왁킹의 초창기에는 현재 알려진 트월, 포즈, 익스텐션과 같은 정형화된 기술이나 룰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을 숨기지 않고 존재를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죠. 누군가의 움직임이 아름다우면 그 표현에 응답하듯 자연스럽게 호응이 이어졌고, 박수와 눈빛이 공간을 채우며 환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어요. 그 생생한 공기, 터질 듯한 박수, 동료들과의 즉각적인 연결이 오늘날의 왁킹을 이루는 본질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본질은 변하지 않듯 지금도 왁킹은 여전히 ‘개성’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정교함보다 자신을 얼마나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도 무대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퍼포먼스들이 그 본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상 출처: Youtube 채널, Bitgoeul Dancers
2019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배틀 행사 ‘LINE-UP’에서 댄서 Wacoon과 크루 Coming Out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왁킹의 본질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에 맞춰 펼쳐진 공연은 단순한 쇼케이스가 아닌, 정체성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관객들은 그들의 몸짓 속에서 삶의 무게와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고, 울고 웃으며 그들을 뜨겁게 받아들였어요. 그 순간 무대는 단순한 퍼포먼스의 공간을 넘어, 존재를 환대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장이 되었죠.
영상 출처: Youtube 채널, Bitgoeul Dancers
배틀은 경쟁이 아니라 교환이었다
서로를 마주 보는 형식이 생기기 전, 자유롭게 춤추는 사이퍼(cypher)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이퍼(cypher)는 장르보다 파티 문화가 먼저였던 시절,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만든 즉흥적인 원형의 무대입니다. 둥글게 모인 사람들 사이로 한 명이 용기 있게 몸을 던지듯 서클(circle) 속으로 들어가 춤을 시작하면, 그 옆에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그 에너지에 조용히 반응합니다. 상대의 춤을 이해하면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그 마음이 몸을 앞으로 이끄는 순간들이 자연스레 이어졌죠.
이는 도발이나 경쟁이 아니라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신호에 가까웠어요. 너의 움직임이 아름다웠으니 거기에 내가 답해보겠다는 마음. 그렇게 두 사람의 리듬이 이어지고 겹치며 공기가 뜨거워졌고, 그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배틀’의 가장 초창기 형태입니다. 당시의 배틀에는 심판도, 룰도 없었어요. 판정은 종이에 적히는 점수가 아니라,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체온과 숨결이 만들어낸 분위기였습니다. 어느 순간 환호가 터지면 그것이 하나의 신호였고, 음악에 몸을 얼마나 솔직하게 맡겼는지, 얼마나 그 순간을 살아냈는지가 자연스럽게 감지되었습니다.
영상 출처: Youtube 채널, Studio NWNC 스튜디오 뉴니크
이렇듯 초기의 배틀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경기가 아니라 서로를 빛나게 만들고 공동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장에 가까웠습니다. 음악과 사람, 그리고 공간이 서로에게 반응하며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놀이이자 소통 방식이었어요. 시간이 지나 장르가 다양해지며 서서히 현재의 배틀 형태로 갖춰졌어요.
각 지역의 댄서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같은 장르 안에서도 서로 다른 스타일이 얽히자 자연스럽게 비교와 평가가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이퍼(cypher)의 즉흥적인 교감이 무대 위 형식으로 옮겨가고, 규칙과 심판이 생기며 현재의 배틀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형태가 달라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배틀의 중심에는 늘 상대를 꺾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더 큰 에너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살아있습니다. 결국 배틀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바라보고 더 크게 반응하려는 몸들의 대화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영상 출처: Youtube 채널, Red Bull Dance
이처럼 배틀은 스트릿댄스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배틀의 본질조차도 깊게 들여다보면 경쟁이 아니라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댄서 허니제이와 댄서 리헤이가 깊은 갈등 속에서도, 배틀 이후 서로를 존중하며 환대했던 장면이 그 증거입니다.
만약 독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 스트릿댄스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면, 어떤 리듬에 먼저 몸을 맡겼을까요? 어쩌면 지금 독자의 작은 움직임이, 먼 훗날의 새로운 스트릿댄스 문화를 만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스트릿댄스는 결국 누가 이기느냐의 문화가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서로를 환대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