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을 비난하지 못하는 이유

세 개의 시리즈로 보는 의존의 조건

의존을 비난하지 못하는 이유
이미지 출처: Apple TV

살아가는 데에 우리는 값을 지불합니다. 당장 오늘 필자는 약속 장소까지 오고 가는 교통비, 식비, 카페에서 산 커피, 혹시나 하는 행운을 기대하며 산 복권까지 살뜰하게 소비를 하고 다녔습니다. 물건의 가격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물론, '기대하는 마음'까지도 만족스럽게 구매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본의 관점에서만 사회를 바라본다면 적절한 거래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비합리를 넘어 불합리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살아가기 위해 타인이나 사회에 의존하는 행위 역시 이러한 기준 하에 한 쪽이 다른 쪽에 기대는 관계인만큼, 부적절하거나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심지어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타인이나 사회에 의존하는 행위가 ‘기생한다’는 모멸적인 표현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의존은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 없는 조건이기에, 사회에서 용인받는 삶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의존은 발생하는 것일까요?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의존은 개인의 응석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존하는 개인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 구조와 환경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의존 경험을 그런 관점에서 다룬 시리즈들과, 반대로 의존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진 사회를 상상한 시리즈를 통해, 왜 의존을 쉽게 비난할 수 없는지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구조로 인한 의존, <조용한 희망>

주인공 ‘알렉스’는 남자친구의 폭력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오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도망친 것도 잠시, 사회복지사를 찾아가자마자 잔인한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일을 구하려면, 어린이집이 필요하단 걸 증명하려고 일을 구해야 한다고요? 그게 무슨 헛소리에요?”

혼자 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 딸을 맡길 곳을 구하려면, 먼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지 출처: Netflix

의존이란 종종 누구나 편하게 시도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여겨지곤 합니다. ‘전부 그만두고 사회 복지로만 살아가겠다’는 말을 농담으로 쓰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시리즈는 사회 복지 제도의 촘촘한 시스템은 오롯이 마음 놓고 활용하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끊임없는 경쟁의 굴레에 놓여있다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눈치를 보고 모멸감을 견디는 것도 알렉스의 몫입니다. 알렉스는 가난하고 취약해보일 자신이 ‘백인 쓰레기(white trash)’라고 불릴까 두려워 끊임없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게다가 집을 나온 직후엔 자신이 가정 폭력의 피해자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보호 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합니다. 더 '혹독한'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을 양보해서 자리를 남겨놓겠다고 말하지만, 당연히 폭력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다르지 않습니다. 즉 <조용한 희망>은 알렉스가 외부의 시선을 비롯해, 자신에 대한 냉혹한 시선 역시 견뎌야 하는 이중고에 있음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수’ 역할로 익숙할 마거릿 퀄리(Margaret Qualley)가 알렉스 역으로, 아이를 지키고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싱글맘의 모습을 인상 깊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렉스는 과연 온전히 본인의 권리를 찾고 끝내 자립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용기를 내는 모습에서 제목 그대로 조용히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시청 가능한 페이지 - 넷플릭스

조용한 희망, 지금 시청하세요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내 이름은 알렉스. 아이 아빠의 정신적 학대를 피해 딸을 데리고 도망쳤다. 이제 나는 여자이자 엄마로서 세상에 정착해 홀로 육아를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궂은일을 해서라도 반드시.

상호 파괴적인 의존의 심리, <베이비 레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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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도니'는 성공과는 거리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전 여자친구의 어머니의 집에서 살며, 코미디언이라는 직업보다는 술집에서 간간히 일을 하며 입에 풀칠을 하며 살고 있죠. 코미디를 시도해도 관객들에게 돌아오는 건 야유라고 자조할 뿐입니다.

일을 하던 도중 외모와 성격 모두 호감을 주는 인상과는 거리가 먼 '마사'라는 여성이 손님으로 찾아옵니다. 이 손님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 도니는 자신도 모르게 마사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어느 순간 마사는 반복해서 도니에게 손님으로 찾아오고, 도니의 직장을 넘어 일상까지 집착을 끊이지 않습니다. 점차 상황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고, 도니는 왜 자신이 이런 상황을 허용했는지, 그리고 마사를 만나기 이전 자신의 어두운 과거까지 들여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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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만 보면 마사는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스토커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그 역시 외견과 태도 때문에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남에게 매달리는 방식으로만 인간 관계를 맺었던 인물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마사의 집착을 끝내 거절하지 못하는 도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의 호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인정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한 과거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리하는 데에 실패하고 만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베이비 레인디어>는 상처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된 두 인물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모호한 자기파괴적 의존 관계로 얽히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단순히 스토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의존이 어떤 환경이나 정서를 통해 만들어지는지 불편하게 드러내는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실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하고 연기한 리처드 개드(Richard Gadd)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시리즈의 도니 역 또한 자신이 맡아 제작하였습니다. 넷플릭스에서는 공개되자마자 3주간 전세계 시청 콘텐츠 1위를 차지하며 이목을 끌었습니다.

시청 가능한 페이지 - 넷플릭스

베이비 레인디어, 지금 시청하세요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되는 일이라곤 없던 코미디언이 심리적으로 취약한 여성에게 친절을 베푼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삶을 동시에 무너뜨릴 수 있는 숨 막히는 집착이 시작된다.

혼자가 될 수 없는 존재,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

이미지 출처: Apple TV

그렇다면 '의존'이라는 의미가 말 그대로 없어진 사회에서는 비로소 개인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걸까요? '가장 완벽한 미드'라고 일컬어지는 <브레이킹 배드>의 제작자, 빈스 길리건(Vince Gilligan)의 최신작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영상 출처: Apple TV 공식 유튜브 채널

드라마는 우주에서 오는 이상 신호를 감지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대체 이 신호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과학자와 연구자들은 한데 모여 자신들만의 의견과 이론을 제시하고 논쟁합니다. 새로운 발견이 되리라는 같은 기대감과, 각자 다른 목소리와 생각을 가진 기분 좋은 떠들썩함이 느껴지는 순간이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신호는 인류를 하나의 통일된 의식, '하이브마인드(hivemind)'로 만드는 바이러스의 정보였습니다. 한편 이 상황과 전혀 무관한 로맨스 판타지 소설가 ‘캐롤’은 그의 매니저이자 여자친구인 '헬렌'과 북 투어를 끝내가던 차에, 지구 전역에 퍼지는 이 바이러스와 조우하게 됩니다. 감염된 헬렌은 하이브마인드의 일부가 되는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사망하고, 캐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감염되지 않은 채 뒤바뀐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Apple TV

하이브마인드가 된 사회는 무척이나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개별적인 사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관계나 선택에 기댈 필요 없이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을 통해 사회가 유지됩니다. 그러나 캐롤은 개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며, 우호적인 태도의 하이브 마인드를 거부하고 이 상황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을 찾고자 애를 씁니다. 하지만 하이브 마인드에 감염되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람들조차 캐롤의 주장에 별로 감화되지 않고, 그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현 상황에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캐롤은 오래전부터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려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 온 인물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 로맨스 소설로 성공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관계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태도에는 상업적인 이유로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숨긴 채 작품 속 주인공을 남성으로 설정해 왔던 선택이나, 전환 치료 캠프에 참여했던 과거 등, 본인의 욕망과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려 했던 시간들이 남아있는 탓이기도 합니다.

이런 성격은 하이브마인드 이전의 세계에서는 캐롤이 선택한 생존 전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연인을 잃고, 그의 주장마저 거부당하는 상황에서 캐롤은 완전히 배제됩니다. 그와 관계를 쌓고자 하는 하이브마인드마저 거부한 그는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최소한의 연결을 제공해주는 시스템에서도 전부 고립된 존재가 됩니다. 결국 캐롤은 여자친구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하이브마인드에 마음이 흔들리고,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의존은 선택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본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시청 가능한 페이지 - 애플 TV, 티빙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 - Pluribus 보기 - Apple TV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세상을 ‘행복’으로부터 구해야 한다.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 - Pluribus 시즌1 1화 | TVING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세상을 ‘행복’으로부터 구해야 한다.

의존은 사회 구조적 선택이 낳은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앞서 살펴본 <조용한 희망>, <베이비 레인디어>는 구조와 환경이 어떻게 사람을 의존으로 이끄는지 그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이런 사례를 통해 접근하지 않는다면, 쉽게 포착해낼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의존이 필요한 당사자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비롯해,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일 때에 비로소 의존해야만 유지되는 삶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의존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진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에서도 개인은 어떤 형태로든 타자와의 관계를 필요로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소 뻔한 이야기지만, 사람 인(人)이라는 한자가 서있는 사람의 모습 혹은 서로 기대고 있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처럼, 사람은 독립된 존재이면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의 불완전함,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불완전함까지 받아들이는 태도가 나를 비롯해 타자의 관계를 바라보는 데에 필요하지 않을까요. 의존을 비난하기보다, 어떤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묻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