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천의 여유를 닮은 핸드드립 카페 3곳

산뜻한 드립 커피와 식물, 음악, 취향의 페어링

성북천의 여유를 닮은 핸드드립 카페 3곳

서울을 산책하다 보면 유독 정감이 가는 동네가 생깁니다. 제게는 성북동부터 청계천까지 이어지는 작은 동네 하천 성북천이 그런 장소입니다. 성북천은 최근 야장과 벚꽃 명소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옛 서울의 고즈넉함이 남아 있는 정감 있는 동네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낡거나 시간이 멈춰있는 동네는 아닙니다. 취향과 주관이 뚜렷한 공간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님들이 골목길에 생기를 더하며 오랜 가게들과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죠. 성북동 골목길, 한성대입구의 치킨집과 삼겹살집, 성신여대 로데오거리 등 도보 1시간 거리의 작은 하천에 다양한 매력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습니다.

성북천에는 유독 직접 로스팅을 하거나 핸드드립을 내리는 카페가 많습니다. 정성스레 시간을 들여 내리고, 향긋한 풍미가 살아있는 드립커피가 천천히 흘러가는 성북천의 풍경과 닮아 있어서일까요? 성북천을 산책하며 발견한 좋아하는 핸드드립 카페, 그중에서도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 눈에 띕니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원목의 가구와 초록의 식물들, 섬세하게 선별된 원두에 사장님 취향이 듬뿍 묻어나오는 음악까지.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풍경과 음악을 페어링하기 좋은 로컬 카페 세 곳을 소개합니다.


신설동, 파일드

커피, 음악, 식물, 그리고 사람.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큰 통창과 연결된 두 개의 유리문에 파일드를 소개하는 작은 쪽지가 간판 대신 붙어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늑한 원목의 가구와 초록의 신물이 다정하게 반겨줍니다. 정갈한 가구 틈새로 길게 흘러내리는 식물의 줄기가 공간에 생기를 더합니다. 필터 커피를 마실 때는 향긋한 과일향을 느끼는 것을 좋아해서 에티오피아 리무 코타 타하르 원두를 선택했습니다. 첫 모금에는 은은한 블루베리의 향이 느껴지고, 체리와 복숭아의 산미가 느껴지는 편안한 커피였죠. 공간의 분위기를 한껏 머금은 듯한 뉘앙스가 커피의 맛을 완성했습니다.

'Plantasia'는 파일드의 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곡입니다. 캐나다의 음악가 Mort Garson이 1976년 앨범 [Mother Earth’s Plantasia]의 첫 곡으로, 식물 식물을 사랑하는 이를 위한 따뜻한 대지 음악을 표방합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신시사이저 사운드는 사장님의 친절한 미소, 작지만 또렷한 식물의 숨결, 따뜻한 파운드케이크를 거쳐 귓가에 스칩니다. 커피 원두와 음료는 시간이 지나며 새롭게 추가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공간을 구성하는 고유함은 음악을 통해 남는다는 것을 알려준 공간입니다.

Coffee. 콜롬비아 엘 타블론 라 페냐
Paring. Mort Garson [Plantasia] (1976)

서울시 동대문구 천호대로7길 17 1층
월-금 8시~ 17시 30분, 토 10시~19시, 일 휴무
www.instagram.com/piled.coffee

보문, 콜렉트마이페이보릿

꽃 작업실을 리뉴얼해서 만든 카페 콜렉트마이보릿은 플로리스트였던 사장님의 취향이 듬뿍 묻어나는 공간입니다. 옅은 초록빛의 부드러운 식물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직접 만드신 직물 조각들이 알록달록한 빛깔을 더합니다. 창가의 빨간 빈티지 테이블에 앉으면 성북천의 계절 변화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습니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카페 내부로 시선을 옮겨도 이질감이 없습니다. 성북천의 자연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편안함으로, 동네 주민들이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주는 곳이죠.

묵직하고 부드러운 원두, 산미가 있는 향긋한 원두, 선명하고 독특한 원두 세 가지 타입의 원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중 ‘선명하고 독특한 원두’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특별한 향을 가진 원두를 소개하는 큐레이션입니다. 새로운 취향을 찾고 있다면 꼬릿한 치즈향이 감도는 원두와 아이스크림 수박바의 향이 나는 원두를 추천합니다.

콜렉트마이페이보릿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주로 재즈, 그중에서도 뉴잭스윙입니다. 로컬 DJ 분들을 모시고 뉴잭스윙 테마의 파티를 열 정도로 진심이죠. 계절과 시간대에 맞게 잔잔한 클래식 재즈부터 보사노바 풍의 브라질 재즈까지. 눈과 귀가 모두 편안한 공간에서 책을 읽고 싶을 때면 콜렉트마이페이보릿을 떠올려 보세요.

Coffee. 콜롬비아 쿼브라디타스 시드라 버번 스파클링 리치
Paring. The Schwings Band [Otto Make That Riff] (2021)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로8길 33 1층 화-토 12시~22시, 일-월 휴무https://www.instagram.com/icollectmyfavoritethings

성신여대, 카페 시와

좋아하게 될 공간은 발끝이 닿는 순간 느낌이 오는 것 같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잔잔한 포크 음악에 먼저 매료되었습니다. 같은 이름의 가수 ‘시와’의 음악을 공간으로 옮겨 놓은 것만 같다는 인상도 들었죠. 권나무, 이랑, 김사월, 브로콜리너마저, 좋아서하는밴드의 음악이 흘러나오며 사랑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시와’의 뜻은 잔물결이라고 합니다. 골목길을 돌아서면 보이는 간판부터 공간 내부의 패브릭까지, 잔잔한 잔물결을 담은 이미지들이 공간에 가득합니다. 간판의 한쪽은 윤슬의 일렁임, 다른 한쪽은 잔잔한 파도가 치는 해변의 사진이 담겨 있고, 내부에는 햇살을 듬뿍 받은 숲의 이미지가 패브릭 커튼에 담겨 있습니다.

시적인 표현으로 이름 지어진 독특한 블렌드 원두가 시와의 시그니처입니다. ‘고급진’, ‘차같은’, ‘고소한’과 같은 형용사로 표현된 원두는 각각의 향을 맡아볼 수도 있습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 ‘과일같은’ 원두의 브루잉 커피를 아이스로 주문했습니다. 과일향이 난다는 테이스팅 노트의 커피 중 이토록 싱그럽고 진한 향이 났던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공간에 어울리는 편안한 커피를 내어주시는 사장님의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났죠. 좋은 커피와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렇게 사람을 통해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곳은 계속해서 찾게 됩니다.

Coffee. 과일같은 (플로럴, 복숭아, 크랜베리)
Paring. 권나무 [물] (2016) /
이랑 [오리발나무] (2012)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로23길 40-1 1층 매일 10시 ~ 22시 www.instagram.com/cafe_siwa

성북천의 자연은 투박하기도 하고 무성하기도 합니다. 작은 물줄기에 비해 무성하게 자란 풀과 우뚝 선 나무는 곱게 정돈된 신도시의 하천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죠. 소개해 드린 세 곳은 이런 성북천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우드톤의 인테리어와 식물 때문만은 아닙니다. 도시의 속도와는 조금 다른 공간의 분위기, 무심한 듯하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사장님의 취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죠.

뜨거운 온도와 압력으로 빠르게 추출되는 에스프레소와는 다른 핸드드립의 속성도 공간 경험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원두 중 취향에 맞는 원두를 고르는 데에도 시간이 소요가 되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도 꽤나 느립니다. 커피 한 잔을 기다리며 주변을 천천히 살펴볼 여유가 주어지는 것이죠. 좋아하는 카페와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동안, 해야 할 일을 바로 꺼내기보다 천천히 공간을 느껴보세요. 커피와의 가장 좋은 페어링은 역시나 커피를 내린 공간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