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내 파격적인 시도 짚어보기
동시대 문화예술공간의 역할 확장
취향에 맞춰 상대를 매칭해주는 미술관 소개팅, 들어보셨나요?
그라운드시소가 발렌타인과 화이트데이 시즌을 겨냥해 이색 프로젝트 <시소 애프터: SEESAW AFTER>를 론칭했습니다. 전시 관람 후 마음에 드는 작품이 겹치는 상대와 총 5명씩 20분간 1:1 로테이션 토크를 진행하는 방식인데요, 전시와 만남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공통 취향을 기반으로 부담 없는 대화를 이어가도록 설계한 베타 서비스입니다. 미술관에서 이뤄지는 데이팅 서비스라니, 너무나도 흥미롭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미술관은 관람 목적으로만 방문하는 공간이 아니죠. 한때 미술관 데이트 라는 키워드가 높은 검색량을 기록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전시는 우리 일상과 꽤 긴밀하게 연결된 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요 콘텐츠가 되었고, 그 경험을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수와 공유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관람객은 예술에 관한 본인의 경험을 재가공하고 확산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이번 그라운드 시소의 이벤트 또한 관계 맺는 예술의 장에서 관람객이 주체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죠.
미술관은 오랫동안 작품의 전시와 보존을 중심으로 기능해 왔지만, 2020년대 이후에는 관람객의 경험과 참여를 중심으로 그 역할이 점차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들의 문화예술 인식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디지털 시대 속에서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을 직접 경험하는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동시대 미술관은 어떠한 전략을 통해 그 역할을 확장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동시대라는 흐름 속에 놓여있기에 오히려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파격적인 시도들을 자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문화예술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들이 어떠한 이유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현 사례를 통해 그 흐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미래를 설계하는 박물관

2022년 2월 22일 딱 떨어지는 날짜에 두바이 <미래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무려 50년 뒤 인류 미래 모습을 제시하면서요. 기존 박물관이 과거를 보존해왔다면, 미래박물관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현재형으로 설계합니다.
두바이는 석유 외 도시 전략을 모색하면서 인공지능, 로보틱스, 우주 탐사, 지속가능 에너지 등을 핵심 산업으로 설정해왔습니다. 미래박물관은 이러한 국가적 비전을 체험 가능한 형태로 구현한 공간입니다.
미래박물관은 예술, 기술, 놀이를 결합한 몰입형(Immersive) 전시를 활용합니다. 한때 성공적인 인기를 얻었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재구성해 대형 미디어아트로 선보였던 전시도 몰입형 경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기술과 예술의 결합, 이를 몰입형 전시라고 하죠. 미래박물관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관람객에게 미래의 주체자라는 인식을 갖추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5개 층에 걸쳐 다양한 미래 시나리오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뒤, 관람객에게 의사나 교사 등 특정 역할을 부여해 인류의 문제 해결을 능동적으로 고민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주 탐험 섹션에서는 가상의 우주 정거장에서 탐사 시나리오를 체험하고 미래의 자원 활용과 생존 문제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지속가능성을 다루는 섹션에서는 기후 변화 시뮬레이션과 멸종 위기 생물, 인공 숲 등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말하며, 웰빙 섹션에서는 신체와 정신의 회복을 실제 상황과 같이 체험하도록 하죠. 또 기술 섹션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증강현실 등의 기술이 일상에 미칠 변화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전달합니다. 이렇듯, 참여자들은 눈 앞에 닥친 미래의 문제들을 해결해가며 전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됩니다.
미래박물관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과학기술을 결합해 미래를 하나의 서사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이곳에 발을 들이는 모두에게 미래를 관망하는 것이 아닌 '설계하고 선택해야 할' 주체로 호명하기 때문에 인류에게 책임감을 지게 만들죠. 기술과 인간, 자연과 도시가 균형을 이루는 경험을 통해 미래는 '지금 우리가 설계하는 현재’임을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의미해보입니다.
공식 홈페이지 역시 인터렉티브 디자인 요소들을 적극 활용한 모습이네요!

전시 주제의 경계 확장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MMCA 홈페이지
현대예술은 형식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예술의 본질이 자유롭다는 인식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술은 오랜 시간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해 온 영역입니다. 미술사를 돌이켜만 봐도 기존의 형식을 깨고 새로이 창작을 감행했던 이들이 당대에는 거센 비난만을 받았죠. 특히 공공 문화예술기관의 경우 아무리 동시대성을 지향하더라도 위계적이고 관습적인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제도권 기관인 만큼 사회적 합의와 기준이 중요한 결정 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맥락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2>는 필자에게 꽤나 강렬한 인상을 준 전시입니다.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순수 미술에 한정된 공모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분야의 창작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플랫폼을 실험하는 공모사업으로 비교적 최근인 2019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동시대 사회·기술적 현상과 시각예술을 결합해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 전자음악 신(Scene), 퀴어 문화 등 그간 제도권 미술관 내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해시태그(#)라는 명칭 또한 상징적입니다. SNS에서 특정 단어를 연결해 무수한 맥락을 생성하는 기호처럼, 이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매체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확장성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죠. 예측 불가능한 연결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려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로스트에어(이우경, 이다영, 박주영, 박민주)>가 선보였던 레이브 지오메트리(Rave Geometry)는 국내 언더그라운드 공연계에서 이뤄지는 파티 공간의 지정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말합니다. 레이브(Rave)와 공간을 데이터로 기록하는 기술인 라이다(LiDAR)를 결합한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파티 현장을 라이다 센서로 스캔하여 공간의 구조와 움직임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시각화합니다.
일회성 이벤트로 사라질 수 있는 하위문화의 장면을 아카이빙하기 위해 특정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유해 총 네 차례의 파티를 기획하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뒤, 다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재구성해 영상으로 펼쳐냈습니다.

Q: 로스트에어가 확장하고 싶은 언더그라운드 파티, 하위문화의 가능성은 어떤 것인가요?
A: 파티라는 단어의 재정의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사람들이 주저하게 되는 파티라는 성격을 만약 미술관으로 들여온다면 진입장벽이 낮은 상태에서 전시 보듯이 놀러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은 행사라는 단어로 혹은 이벤트라는 단어로 계속 우회해가면서 공모를 써왔거든요. 파티라는 단어 자체가 떳떳할 수 있도록 ... 바꿔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어디선가 흐릿하게 들려오던 클럽 음악을 필자는 여전히 잊기가 어렵습니다. 클럽은 오랫동안 하위문화 혹은 반문화의 영역으로 분류되어 왔고, 미술관의 전시 주제가 되리라고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소재이니까요. 게다가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상징적인 제도 공간 안에서 이러한 문화를 조명했다는 점이 문화적 위계를 재고하는 파격적인 시도라고 보여졌습니다.
이는, 미술관이 동시대 문화의 과정과 장면을 함께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순수예술과 대중문화,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동시대 사회적 배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르네상스 회화를 구경하러 왔던 '같은' 미술관에서 전자음악과 클럽문화를 다루는 전시를 보여주고 있다니. 다시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한 일이죠?
관람객에게도 열린 수장고


서울공예박물관 <공예아카이브실 안내서> 리플렛
문화예술 공간의 또 다른 변화는 지식의 개방구조에서 나타납니다. 과거 미술관의 아카이브와 수장고는 관계자 외 일반 관람객에게는 제한된 공간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구조들이 많이 변화하고 있는데요, 그 중 서울공예박물관 전시2동 3층에 위치한 <공예 아카이브실>은 전시·연구·교육 과정에서 생산되고 수집된 유무형의 기록을 보존하는 공간입니다. 현재는 기록물의 실물 열람이 가능한 개방형 수장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미술관은 교육적 목적을 지닌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전과 달리, 최근에는 미술관을 방문하는 이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자료를 탐색하며 배우는 학습 공간으로 기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들의 전반적인 문화예술 이해도와 감각이 높아졌다는 전제 위에서 가능해진 변화라고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식구조의 개방은 기획과 참여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서 벗어나, 그 권한을 공유하는 방식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개방형 수장고를 콘텐츠로 활용한다는 것은, 박물관의 숨겨진 공간을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소장과 보존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했다는 점 그리고 관람객을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닌 탐색하는 참여자로 위치시킨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재 공예아카이브실에서는 <漆-옻나무에서 칠기로>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옻칠공예 재료와 기술 조명, 박물관이 자체 개발한 이동식 전시 상자 ‘옻칠공예상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간 일반인들은 보기 어려웠던 연구 자료, 실물 표본, 과학적 분석 자료 또한 함께 공개하고 있는데요, 그저 관람하고 읽기 바빴던 공예품들에 대해 직접 이해하고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동시대 문화예술공간의 변화를 피부로 체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급진적으로 변화한 것들이 크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상호작용 중심의 체험형 전시, 전시 주제의 확장, 지식 구조의 개방은 굳어 있던 관계의 방식을 분명히 재조정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은 여전히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예술 공간입니다. 그 교육은 경험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전시와 워크숍, 프로그램이 연결되는 트렌드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우리가 오늘날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문화예술 공간은 이러한 실험과 조정의 축적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익숙하게 경험하고 있는 변화가 어떤 과정을 통해 가능해졌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도전적인 시도인지 짚어보는 일은 이후의 또 다른 확장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문화예술 공간에 각자 어떤 경험을 기대하고 방문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