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역사를 구원하는 작가 제발트
파괴와 죽음과 몰락을 발굴하는 제발트의 시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한 시점에서 되묻습니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놓친 것들은 없는지요. 앞을 바라보며 박차를 가하느라 마음이 바빠지는 순간에는 모른 척하고 싶어지는 일이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남긴 사건들 뒤에는 불완전한 서사와 파괴된 감정을 딛고 가엾이 서 있는 사건들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새로움’과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기억하기 아름다운 것들만 취사선택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 개인의 삶에서도, 우리 시대 전체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로요.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서서 기록문과 에세이, 픽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장르를 구축해 낸 작가가 있습니다. 독일의 아픈 기억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복원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대한 산문 작가 중 하나라는 평가받은 작가, W. G. 제발트(W. G. Sebald)입니다. 그는 주류 역사가 외면해 온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 전후 극복 서사 뒤로 밀려난 폭력이 종결되지 않았음을 차갑고도 집요하게 증언했죠.
동시에 제발트의 글은 아름다운 문체와 정교한 묘사, 방대한 사유와 깊은 주제 의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 애도와 기록, 윤리와 미학이 공존하는 그의 문장은 많은 독자들을 제발트라는 우주로 인도해 왔는데요. 그의 세계를 선명히 보여 줄 세 권의 안내서를 소개합니다.
살지 않은 것처럼 무효화된 삶, 『이민자들』
“그는 마치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보였다.” _ W. G. Sebald, Die Ausgewanderten, 1992

『이민자들』은 네 명의 이민자의 삶을 따라가는 연작 소설입니다. 화자가 보여주는 사람들은 유대인 교사, 삼촌, 화가, 은행가로 20세기 유럽을 휩쓴 역사적 폭력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성실하고 온화했던 초등학교 은사 파울 베라이터, 한 청년을 보살피며 세계를 여행한 부유한 유대인 가문 출신 삼촌 암브로스, 영국 맨체스터에 정착해 화가로서의 작업을 이어가는 막스 페르버, 영국 시골에 정착해 평온한 삶을 사는 은둔자 헨리 셀윈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공통된 균열이 있습니다. 모두 고향에서 추방된 ‘유대인 이민자’라는 사실이죠. 겉으로 봤을 때 그들의 삶에서 불행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일하고, 산책하고, 꿈꾸고, 헌신하며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공허함과 상처가 있습니다. 구원이 없는 삶, 자기 자신이 없는 삶, 결코 회복되지 않는 상처와 차별에 잠식된 자아가 점차 드러나죠.
제발트는 이들의 삶을 따라가면서도, 그들에게 상처를 남긴 역사적 폭력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는 않았습니다. 특정 사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그로 인한 여파를 들려줌으로써 사건의 심각성을 실감하게 만들죠. 제발트 작품에서 독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파괴적인 사건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무너진 내면입니다.
역사는 폭력을 “그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서히 붕괴하는 과정을 절제된 시선, 집요한 관찰을 통해 그려냅니다. 한때 발생한 폭력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이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끈질기게 환기시켜주는 제발트의 주제 의식이 돋보입니다. “이 시대에 이와 비슷한 책이 발표된 적은 있지만, 이 책의 숭고함을 따라올 수는 없다”고 수잔 손택이 극찬했던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제발트 세계를 시작하는 첫 책으로 『이민자들』 은 가장 적절한 책이 될 것입니다.
문명을 패배자의 기록으로 해석한『토성의 고리』

"모든 문명의 역사는 파괴의 역사다."_ W. G. Sebald, Die Ringe des Saturn, 1995
『토성의 고리』는 『이민자들』 발표 이후 3년 만에 출간된 작품으로, 제발트의 문제의식을 개인의 삶에서 문명 전체로 확장한 책입니다. 제목인 ‘토성의 고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발트는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의 해석을 책 속에 인용했습니다. 토성의 고리는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을 의미하는데요. 이는 곧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은유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제발트는 『이민자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추적합니다. 인간 개개인의 삶이 아니라 문명의 궤적을 추적하는 것이죠. 영국 동부 서퍽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 화자는 연속적인 파괴의 현장을 만납니다. 식민주의의 잔재, 산업 붕괴, 황폐해진 자연처럼 유럽 문명이 남긴 파편, 즉 토성의 고리를 이루는 잔해들이죠.
파괴되고 잊힌 것들을 복원해 우리 앞에 드러내는 것이 제발트가 해내고자 하는 작업인데요. 제발트의 시선은 파괴의 대상을 사람에 한정 짓지 않습니다. 유대인, 노예화된 민족, 제국주의 희생자에서 나아가 파괴된 숲, 살해된 청어와 누에, 버려진 공장으로까지 시선을 확장시키죠. 개인을 넘어 문명 전체를 패배자의 기록으로 재해석하면서 ‘사라짐’과 ‘파괴’에 대한 백과사전 급 사유를 보여줍니다.
여행자는 직선적인 길에서 벗어나 샛길과 미로로 접어들며 끊임없이 방향을 잃는 행로를 보여줍니다. 이는 역사가 직선적인 발전이 아니라 불가시성과 불가해함이 뒤엉켜 미로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죠. 그러면서 개인을 방기하고 폐허를 은폐하는 진보 관념을 비판하며,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문화의 기록치고 야만의 기록이 아닌 것은 없다는 사실을 환기합니다.
역사 속 고통과 피해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희생으로 정당화되곤 합니다. 제발트는 이런 낙관론에 철저히 반기를 듭니다. 이 문명에서 존재의 유형을 막론하고 파괴된 것, 고통받은 것들은 결코 보상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하며, ‘전체의 진보’를 주장하는 역사의 낙관론의 폭력을 고발합니다. 진정한 계몽과 진보는 찬란한 성과가 아니라 그것이 낳은 파괴의 지점에서부터 성찰되는 것입니다.
기억과 함께 존재를 상실한 인간 『아우스터리츠』

“나는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_ W. G. Sebald, Austerlitz, 2001
『아우스터리츠』는 W.G.제발트의 유작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인물이 기억을 복원해 나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린 작품이죠. 불완전한 기억을 지닌 화자를 따라 증언과 기록을 모아 사건의 윤곽을 완성해 가는 서사는 비교적 익숙한 구조인데요. 그럼에도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한 개인이 기억을 되찾는 여정이 곧 역사 속에서 지워진 사건을 복원하는 과정과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박해가 극에 달한 1939년, 네 살배기 아이 하나가 영국 구조 단체의 유대 어린이 호송 작전 킨더트란스포트(Kindertransport)를 통해 프라하에서 영국으로 보내집니다. 이 아이가 바로 주인공 아우스터리츠입니다. 영국에서 성장한 그는 점차 자신의 이름과 모국어를 상실해 갔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 어느 지점에서 뚝 끊겨 버린 기억을 지닌 상태는 한 사람을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아우스터리츠는 평생 낯선 도시와 낯선 거리를 배회하며 끊겨 버린 기억을 밝히려 애쓰고 있었죠.
아우스터리츠의 회상 작업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공간을 힘겹게 추적하면서 이루어집니다. 제3자의 구술, 문헌소에 보관된 아카이브, 건축물과 사진이 기억의 공백을 메웁니다. 잊힌 역사가 한 개인의 기억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 그들이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덧붙여 공동의 기억, 집단적 기억으로 재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죠.
아우스터리츠의 기억 복원은 공간을 매개로 이루어집니다. 화자는 낯선 도시와 거리에서 마주하는 모퉁이, 보도석 하나까지 집요하게 들여다보는데요. 이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그의 공간 개념은 종종 시간이 제거된 상태에 처해있거나 미래와 과거의 구분을 무너뜨립니다. 선형적 시간 질서가 해체된 자리에서 아우스터리츠가 경험한 아픈 과거는 비단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독자들은 불현듯 깨닫게 되죠. 과거라는 시간에 멈춰 있던 역사가, 현재를 사는 우리 앞에 ‘이 순간의 사건’으로 소환되는 것입니다.
킨터트란스포트는 실존했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아우스터리츠와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어린이들은 다시는 부모를 만나지 못하거나 트라우마로 인한 정체성 상실로 우을증, 대인 장애를 겪었습니다. 아우스터리츠의 이야기는 이 개인적 서사를 넘어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이고, 전후 말끔하게 복구된 도시 모습 너머로 한 시대에서 사라져버린, 지워진 역사를 되찾는 작업의 일환입니다. 건축사가처럼, 고고학자처럼, 파괴와 죽음의 흔적을 찾아가는 제발트 이야기의 정점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작품이니 제발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꼭 읽어보세요.
‘진보’에 목말랐던 문명은 과거의 폐허와 유골들 위에 도시 공간을 구축했습니다. 경제적, 정치적 논리에 따라 공간을 재편했죠. 폐기물은 슬그머니 덮였고, 폐허 위에는 기차역이 세워졌으며, 빈민 구역 위에는 신시가지가 생겨났습니다. 밀어내고, 덮어내고, 부숴버린 잔해 위에 인간의 역사가 축적되고 발전해 온 셈입니다.
제발트는 그 모든 잔해를 집요하게 발굴했습니다. 개인의 기억과 방대한 자료 수집으로 공식 기록에서 빠지거나 망각의 영역으로 밀려난 역사를 복원했습니다. 단순히 정보의 기술로 그치지 않고 관찰과 분석을 통해 완전한 기억처럼 재구성해냈죠. 죽음의 흔적이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임을 끈질기게 증언한 것입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남긴 메시지들이 떠오릅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기술이 쏟아지고, 자본주의와 약육강식의 논리 위에 세워진 제도에 익숙해진 우리 세대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왜 기억해야 하는지, 이따금 멈춰 우리가 잊은 것들은 없는지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를 짚어주었죠. 이것이 문학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집단적 기억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것, 단순히 보관을 넘어 다시 쓰면서 되살려내는 작업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