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 피에트로이우스티: 예술과 생태학의 경계를 넘어
예술로 생태적 전환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큐레이터

2030년이 되면 지구의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한다는 전망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에서 보고된 내용이죠. 5년이 채 남지 않은 지금, 이 예측은 아주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실감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우리가 기후 위기를 당장 온몸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것을 예술 작품을 통해 짚어주는 큐레이터가 있습니다. 바로 루시아 피에트로이우스티(Lucia Pietroiusti)입니다.
피에트로이우스티는 생태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기후 위기의 상태 속에서 인간이 동물, 식물, 미생물 등 인간 외의 다양한 생명체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꾸준히 탐구해왔습니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관람객의 이목을 사로잡은 작품 <Sun & Sea (Marina)>는 일상적인 해변의 풍경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기후 위기를 잊고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피에트로이우스티는 예술이 단순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여 충격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마주하게 하여 작은 변화라도 실제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기후 위기 사태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루시아 피에트로이우스티의 작업과 그녀의 철학을 통해 예술의 역할과 기능을 살펴봅니다.
해변에서 마주한 위기의 풍경, <Sun & Sea (Marina)>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리투아니아관은 백색 모래가 덮인 실내 해변으로 변모했습니다. 돗자리를 펴고 선베드에 누운 사람들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스마트폰을 바라보거나 카드 게임을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거나 책을 읽는 등 평범한 해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구현했죠. 평화로운 풍경 속 갑자기 한 남자가 오페라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해변을 즐기던 사람들은 “얼음이 다 녹았네”, “휴가도 다 끝나가네”와 같은 가사를 합창합니다. 일상의 사소한 걱정부터 지구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까지, 느긋한 선율에 깃든 의미심장한 가사들에 귀를 기울이는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관객들은 이 모든 장면을 해변 위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지독하게도 현실적인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Sun & Sea (Marina)>는 그 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아 국가관 최고 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영예로운 수상을 통해 큐레이터 루시아 피에트로이우스티의 활동은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예술이란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감각을 자극하고 일깨우는 힘이라는 것에 주목합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 작은 실천이라도 시도할 수 있도록 예술은 지구와 우리를 다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이죠.
서펜타인 갤러리의 기후 실천 프로젝트, General Ecology

피에트로이우스티는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에서 생태학 부서 책임자를 맡고 있습니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단순히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소개하는 기능을 넘어서 예술 기관으로서의 존재 방식 자체를 생태적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그녀를 초빙하고 2018년 부터 <General Ecology>라는 프로그램을 창설했습니다. 환경의 변화를 책임감있게 바라보고 예술 기관의 실천 가능성을 선구적으로 모색하는 서펜타인 갤러리의 결단은 피에트로이우스티가 다양한 전문가들을 모아 예술을 통해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피에트로이우스티는 <General Ecology>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생태학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예술 기관이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브 프로그램들을 운영해왔습니다. 특히 예술 뿐만 아니라 디자인, 과학, 문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다층적이고 복잡한 환경 문제를 다각도로 접근하고, 그들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대응 방식과 그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있죠.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상상
<물고기 마음 속의 원형(The Shape of a Circle in the Mind of a Fish)>은 바다 아래서 복잡한 문양의 원을 그리는 복어로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암컷 복어를 부르기 위해 수컷이 정성껏 그리는 정교한 원의 모양은 우리에게도 미학적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루시아 피에트로이우스티와 작가 겸 편집자 필리파 라모스(Filipa Ramos)는 예술, 문학, 환경, 과학,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인간과 비인간인 동물, 식물, 광물, 균류 및 인공 의식과 지능 사이의 다공성 경계(Porous Boundary)를 탐구하는 심포지엄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다공성 경계란 작은 구멍들이 많이 뚫려있는 경계를 의미합니다. 작은 구멍들을 통해 안팎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열린 상태를 말하죠.
이 심포지엄은 언어를 중심으로 다룬 1부를 시작으로 5부까지 진행되었습니다. 동물들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은 안무가의 퍼포먼스와 영화 <Arrival(한국 제목 “콘택트”)>의 원작자인 테드 창(Ted Chiang)의 대담, 돌고래 인지 연구자와 음악가의 작업들을 공유하고, 현재 리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는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전시를 연계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꾸려졌습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인간 중심의 인식과 해석을 넘어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의 언어와 존재 방식에 다가가 결국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실천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서펜타인 갤러리의 <Back to Earth>프로그램으로 이어졌습니다. <Back to Earth>는 서펜타인 갤러리의 50주년을 기념하여 기후 비상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꾸려졌는데요. 예술 기관으로서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한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에서 공존하기 위해 일상적인 실천을 기관 단위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여긴 것이죠. 루시아 피에트로이우스티를 비롯하여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에바 스페이트(Eva Speight), 홀리 셔틀워스(Holly Shyttleworth) 등이 공동 기획하여 65명 이상의 예술가들을 초청해 전시, 캠페인, 이니셔티브 등을 진행했죠.

<Back to Earth>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22년에 열린 전시는 알렉산드라 데이지 긴즈버그(Alexandra Daisy Ginsberg)가 개발한 인공 지능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꽃가루 매개자를 위해 설계된 정원에서 시작하여 런던 주변의 다양한 외부 공간에 설치되었습니다. 인체와 지구를 깊이 관찰하고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디자인된 행동의 촉구와 메시지들은 우리에게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각각의 예술가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지구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것처럼 작품을 만나는 우리 역시 어떻게 지구와, 우리 자신과 관계 맺을 것인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실질적인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생태학을 담론으로만 소비하는데 그치고, 작품의 운송 및 설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은 간과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린워싱(greenwashing)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Sun & Sea (Marina)> 작품에 사용된 약 36톤의 모래는 일반적으로 해상 운송을 통해 운반되었을 가능성이 높죠. 전시가 종료된 이후 모래들은 베니스의 새로운 어린이 놀이터를 조성하는 데 재활용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규모와 필요성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에트로이우스티의 작업들은 우리에게 단순한 충격 이상의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 만약 실내 해변을 베니스에 옮겨두지 않았다면 관람객으로써 해변을 마주했던 우리는 기후 위기라는 현실을 여느 일상과 마찬가지로 간과하고 흘려보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술이 기후 위기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해안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아카이빙하거나 기후 변화의 증거를 기록하고 제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피에트로이우스티는 전통적인 전시 공간을 넘어 예술과 생태학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통해 관객들이 환경 문제를 몸소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듯, 자연 속 수많은 생명체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죠. 이례적인 이상 기온 현상들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일상과 기후 위기의 경계를 허물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직접 물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작은 실천을 시도할 때,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생명체로서 진정한 공생이 시작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