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멀리 보고, 다시 걷기
초심을 되찾는 길잡이가 되는 책 3권
무엇인가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 기억 나시나요? 저는 5년 전, 첫 직장에 합격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드디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죠. 지하철을 타기도 아쉬워 1시간도 넘는 거리를 지치지도 않고 걸어갔던 날들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마침 걷기 좋은 봄 날씨라 두 달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나 한 해가 지나가기도 전에 불평이 슬슬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일을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처리할까? 몇 년간 해왔던 사업인데 왜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을까? 기뻤던 마음은 가을 바람에 낙엽이 휩쓸리듯 사라지고 곧장 불만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초심은 어쩜 이렇게나 잘 흔들리고, 쉽게 흩어지는 걸까요? 무엇인가 시작할 때의 벅차오르는 마음이 소진되어 지쳤을 때 우리는 방향을 잃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힘껏 달려갈 힘을 주었던 그 마음, 초심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던 세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잠시 멈춰서기

‘우주 삼라만상은 점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어떤 생명이든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존재이며, 그 존재가 선으로 길게 이어졌을 때 비로소 삶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인데요. 이우환 작가는 이처럼 점과 선, 그리고 여백을 재료 삼아 작업하는 현대 예술가입니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조금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관계성> 시리즈라는 설치 작품은 특히 그렇죠. 거대한 바위와 철판이 덩그러니 마주 놓여 있는가 하면, 충격으로 금이 간 유리 위에 커다란 바위가 놓여있기도 합니다. 학부 시절, 이우환 작가의 가상 전시 브랜딩을 주제로 했던 졸업 전시를 위해 부산에 있는 이우환 공간에서 그의 설치 작품을 처음 마주했습니다. 앞 뒷면을 맞대고 버티는 바위 덕분에 곧게 세워진 두 개의 철판 사이를 걸어지나가면서 생경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요. 철판으로 된 문을 지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감각이었죠.

전시를 보고 돌아와 이우환 작가에 한층 더 매료되었습니다. 그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 펼쳐든 책이 바로 <여백의 예술>이었죠. <여백의 예술>은 작가가 느낀 단상들을 모아 엮은 에세이집인데요. 일상적인 어투인 듯 하면서도 그의 깊은 철학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아닌 한 순간을 묘사한 단상이었습니다.
잠깐 멈춰 서서
수선스럽고 바쁜 이여, 잠깐 멈춰 서서 파아란 하늘이라도 우러러보게나. 그리고 잎을 다문 채 눈을 감고 한번 심호흡이라도 하지 않을 텐가? 그것만으로도 자네는 구원되고 세계는 되살아나리라.마쓰오 바쇼의 시 중에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라는 것이 있다. 한순간의 사소한 터트려짐에서 시인은 커다란 우주의 울림을 감득하고 있다.
내 일 또한 일상의 무감각한 세계에 자극적인 터뜨림을 짜내려는 데 있다. 그것이 시적인 번뜩임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기를 바란다. (중략) 어쨌든 나의 조촐한 ‘터트림’은 수다가 아닌, 반대로 여백에 눈길을 주고 침묵에 귀기울이는 것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여백의 예술> 중에서)
단지 멈춰 서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것. 이 작은 행위만으로도 일상이 완전히 새롭게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마치 철판 사이를 지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죠. 5음절, 7음절 5음절로 이루어진 짧은 일본 정형시를 뜻하는 ‘하이쿠’의 대가, 마쓰오 바쇼의 시를 곰곰 곱씹어 보았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무성한 풀 사이로 보이는 오래된 연못, 조그마한 초록색 개구리가 물 속으로 뛰어들며 나는 퐁당 소리. 그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순간, 온 세상이 고요해지며 시끄러운 풀 벌레 소리나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낙엽이 하나하나 분리된 감각으로 고유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바쁘게 반복되는 일상은 마음이 숨 쉴 틈을 앗아갑니다. 아주 잠깐, 그저 멈춰 서기만 하는 것으로 세상 곳곳에 움트고 있는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익숙한 장면이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생경한 감각을 선사할지도 모르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더 잘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멀리서 바라보기
잠시 멈춰서면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해야 하는 일은 끊임없이 몰아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물리치는 데만 해도 에너지를 많이 써버렸을 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죠. 일상 속 한 순간을 고요히 들여다보며 여유가 생겼을 때, 우리는 얼마나 멀리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조셉 캠벨은 신화학자입니다. 어린 시절, 자연사 박물관에서 아프리카 토착민이 만든 가면을 보며 신화와 상징체계에 매료됐죠. 그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비교하면서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패턴을 발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웅의 여정입니다. 여러 문화권에 등장하는 영웅 캐릭터는 일상을 떠나 시련을 겪고, 변화된 상태로 돌아와 기존 사회에 새로운 통찰을 전하죠. 신화가 비슷한 구조를 이루는 것을 발견한 캠벨은 인류 보편의 꿈과 기억이 신화라는 이야기로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1988년, 미국 방송에서 언론인 빌 모이어스(Bill Moyers)와 함께 인터뷰한 시리즈를 모아 엮은 책이 바로 <신화의 힘>입니다. 캠벨은 이 책에서 신화가 단순히 오래된 이야기나 전설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나 문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의미를 생산해내는 힘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컨대, ‘나는 누구인가’,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속한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같은 질문을 신화가 다루고 있다는 것이죠.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화를 읽으면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한, 오랜 인류의 자산인 신화를 통해 그 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죠.

영웅의 여정을 살펴 보면 크게 출발 →시련 → 보상(변화) → 귀환으로 이루어지는데요. 시련을 겪기 전 스승과 조력자를 만나기도 하고, 첫 관문을 통과한 후 본격적인 적을 대면하기도 하죠. 시련을 모두 극복하고 나면 자신의 변화라는 보물을 획득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험을 합니다. 기존에 머물렀던 일상의 사회에서는 영웅을 반기고, 보물을 전한 영웅은 다시 새로운 모험을 마주하게 되죠.
Follow your Bliss!
영웅의 여정, 마블 유니버스나 픽사 애니메이션의 히어로 캐릭터들이나 할 수 있는 모험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캠벨은 영웅의 여정이 단순히 영웅 캐릭터를 위한 서사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소명을 따라 모험을 떠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Follow your Bliss(자신만의 희열을 따르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죠. 환희가 느껴지는 일을 찾아 두려워하지 말고 그 길을 가면, 시련을 겪겠지만 반드시 보물을 얻어 귀환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캠벨은 책에 귀환하지 않고 보물을 개인의 성과로만 생각하는 경우, 어떤 말로를 걷게 되는지 그 위험성을 다루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희열로 이끄는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신화의 힘>을 읽으며 제게도 많은 용기를 주었던 아메리카 인디언 소년이 제의를 할 때 얻은 조언을 공유할게요.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렁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 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진 않으리라.
다시 걸어가기
저는 학업을 마치고 1년 뒤, 일생의 꿈을 정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짐했죠. 작가가 되겠다고요. 7년이 지난 지금, 몇 년 간 다니던 업계에서 다른 업계로 이직도 하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종종 공허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전업 작가를 향한 꿈은 접어둔 지 오래죠. 최근 처음 해보는 업무와 구조로 막막함을 느끼다 책장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발견했습니다. 작가의 꿈을 꾸게 했던 바로 그 책입니다.

코엘료는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알레프> 등 전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킨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지금은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그이지만, 정신병원에 수감되거나 오랜 기간 술에 절어 지내기도 하는 개인적인 시련을 겪었죠. <순례자>는 코엘료가 발표한 첫 소설이자, 그가 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살기로 결심하게 된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긴 여정을 떠나는 것은 작은 결심으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일텐데요. 심지어 당시 코엘료는 음반회사의 중역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던 영적 집단에서 마스터가 되는 통과의례를 망친 후, 반 강제적으로 순례길을 향한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가이드를 만나 함께 걷고, 개인적인 의례를 배우고 반복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죠.
코엘료가 통과의례를 망치게 된 이유는 진정한 내면의 성숙이 아니라, 상징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영적 의례에서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의례의 성공을 상징하는 자신의 검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영혼의 성숙을 이뤄야 했죠. 코엘료는 하루 종일 스페인의 들판을 걷고 또 걸으면서 내면의 악마를 만나고, 자신의 몸이 느끼는 감각을 되찾고, 영혼이 울부짖던 꿈을 되찾습니다. 그렇게 누구나 자신만의 길이 있고, 다른 누구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죠.

<순례자>를 다시 읽으면서,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출퇴근길 조금씩 써나가던 소설 원고, 뉴스레터 형태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발신하던 짧은 에세이까지,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작은 행위들을 지금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오히려 이미 성공한 작가들과 업계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해냈던 것을 분석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만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서요. 이우환 작가처럼 잠시 멈춰서 내 주위를 둘러싼 여백을 깨닫고, 캠벨의 말처럼 나를 환희로 이끄는 희열을 따라, 코엘료처럼 용기내 다시 나의 모험을 떠나 보아야겠습니다. 책을 다시 살피다 보니 어느덧 초심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 같군요.
처음 무엇인가 시작할 때를 떠올려보면, 우리가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했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습니다. 초심이란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처음’처럼 바라보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잃었다고 믿는 것은 사실 언제나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초심을 잃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단지 그것을 다시 느낄 여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가슴뛰는 것을 잊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가 아닐까요? 그런 신호를 알아차렸을 때가 바로, 다시 나의 길을 향해 걸음을 내딛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