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그먼트: 번개 문양 뒤에 숨겨진 전유의 미학
후지와라 히로시가 서브컬처에서 찾아낸 디자인의 답
나이키부터 몽클레르, 마세라티, 포켓몬까지 다양한 브랜드들의 제품에 박힌 번개 문양을 본 적 있나요?
바로 후지와라 히로시(Fujiwara Hiroshi)가 이끄는 브랜드 프라그먼트 디자인(Fragment Design)의 로고입니다. 후지와라 히로시는 일본에서 디제이와 패션 디자이너, 디렉터로 활동하며 국내에서는 뉴진스, 혁오와의 협업으로 잘 알려져 있죠. 최근에는 250, 빈지노가 속해 있는 음악 레이블 BANA(바나)에 합류하면서 더 넓어진 활동 영역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프라그먼트의 창립자인 그는 한 인터뷰에서 프라그먼트를 브랜드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본인이 하는 모든 일이 '협업'이라고 주장합니다1). 히로시가 보여주는 협업은 다소 낯선 방식으로, 프라그먼트와 협업한 제품들의 디자인에는 번개 문양이나 ‘FRAGMENT’라는 로고만 더해져 있을 뿐 눈에 띄게 큰 변화는 찾기 힘들죠.
그렇다면 그에게 협업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프라그먼트의 번개 문양은 무엇을 의미하며, 왜 그토록 많은 브랜드들이 그와 프라그먼트를 찾을까요? 이제부터 후지와라 히로시의 인터뷰를 쫓아 그 의미를 함께 살펴봅시다.

펑크와 힙합, 전용의 시작
“13살 때 펑크 문화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모든 걸 바꿔 놓았으니까요. 저에게 정말 큰 영감을 줬죠.” 2)
후지와라 히로시는 어릴 적 경험한 펑크 문화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합니다. 1970년대 후반 펑크 록을 주도하던 영국 밴드들은 당시 10대였던 히로시를 새로운 문화의 영역에 빠져들게 합니다. 파괴적이고 우발적이며, 기존 사회에 저항하던 펑크 문화는 히로시에게 단순히 음악과 패션뿐이 아닌 태도로서 받아들여지죠.
당시 펑크 록 밴드들의 티셔츠와 앨범 커버는 기성 문화에 저항적인 메시지와 이미지들로 구성된 '콜라주(Collage)' 기법이 특징이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곳에서 가져온 파편들(Fragments)의 조합이자, 이미 존재하는 것들로 만들어낸 새로운 맥락이었죠.


또한, 히로시는 1982년 런던에서 만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매니저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의 권유로 그 다음 해에 뉴욕으로 넘어가 힙합 문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일본에서 디제이로 활동하며 타이니 펑스(Tiny Panx)라는 힙합 그룹을 결성하기에 이르는데요, 히로시는 여기서 힙합과 디제잉이 기존의 것들을 재구성하는 '샘플링(Sampling)'에 기반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샘플링은 펑크 문화에서 보이는 콜라주 기법과 마찬가지로, 관계 없는 출처의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조합이자 요소들이 가진 본래의 맥락과 용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맥락으로 재사용되는 전유인 것이죠.
10대의 후지와라 히로시에게 펑크와 힙합이 보여줬던 전유는 창조적 생산이 아닌, 기존 것들의 조합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재생산'이었습니다. 개별 요소들의 속성은 그대로인 서로 다른 요소들 간의 조합. 그곳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맥락의 가능성.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요?
로고 플레이, 약간 낯설게 하기
“저에게는 프라그먼트라는 일종의 브랜드가 있지만, 다른 브랜드들과는 성격이 좀 달라요. 아무것도 만들지 않거든요. 프라그먼트의 이름으로 직접 제조하는 건 없어요. 대신 저와 제 팀이 협업을 위해 그 브랜드들로 들어가는 방식이죠.”3)
후지와라 히로시는 가사를 쓸 때도 평소에 적어 놓았던 단어나 문장들을 다시금 꺼내 재조합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각기 다른 맥락을 가진 단어들을 새롭게 조합하여 전유될 가능성을 찾는 것인데요, 그는 프라그먼트에서도 협업의 대상이 되는 브랜드의 디자인에 최대한 적게 침범하면서도 동시에 프라그먼트의 아이덴티티를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로고 플레이(Logo Play)'입니다. 로고 플레이의 시작은 1960-70년대 히피(Hippie)부터, 록 밴드, 스케이터들의 티셔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티셔츠의 퀄리티에 신경 쓰기보다 티셔츠에 새겨진 사회적 메시지, 브랜드 슬로건, 로고 등을 통해 티셔츠가 정보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매체로서 기능하게 만들었죠.
특히, 히로시가 즐겨 탔던 스케이트보드의 경우, 인디펜던트 트럭(Independent Trucks), 쓰레셔 매거진(Thrasher Magazine), 산타크루즈(Santa Cruz Skateboards)와 같은 스케이트보드 회사들의 로고가 새겨진 굿즈는 스케이터들에게 강한 '문화적 결속력'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엄청난 브랜드 홍보 효과로 이어졌죠.

히로시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10대 시절부터 경험해왔던 펑크 록의 콜라주, 힙합의 샘플링, 그리고 스케이터들의 티셔츠 문화4)는 모두 '전유'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원본은 유지하되, 그 위에 로고나 메시지를 더해 새로운 문화적 연대를 형성하고, 맥락의 재구성을 꾀하는 방식인 것이죠.
가령, 2021년 출시된 마세라티와의 협업에서는 차량의 기존 외관은 '그대로 유지한 채' 앞면(라디에이터 그릴)과 측면에 프라그먼트의 로고만을 입혔고요, 수차례 진행된 스타벅스와의 협업에서도 텀블러, 머그컵과 같은 실용적인 제품들 위에 프라그먼트만의 로고 플레이를 선보이죠. 이는 원본과 더해진 요소 간 시각적 충돌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같은 뜻을 가진 사용자들의 소속감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처럼 히로시는 어릴 적 동경하던 서브컬처에서 나타나는 전유가, 본인의 디자인에서 로고 플레이를 통해 실현될 수 있음을 내다봤습니다. 이는 그에게 협업 브랜드의 디자인은 존중하면서 프라그먼트만의 색을 입혀 약간은 낯설고도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죠.


익숙함 속에 번뜩이는
이러한 그의 태도는 프라그먼트의 로고 플레이를 넘어, 그가 기획한 유튜브 잡지 콰이어트 매거진(QUIET Magazine)과 편의점 콘셉트 스토어 더 컨비니(THE CONVENI)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영상 매체인 유튜브에 '무음의 지면 잡지'라는 정적인 형식을 결합하거나, 캔 음료, 삼각김밥, 담배 케이스로 '위장한 굿즈'를 채워 넣어 편의점을 연출하는 식이죠. 이는 익숙한 정보 전달 방식과 공간의 맥락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사람들에게 낯선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만의 방식이 됩니다.


한 인터뷰에서 후지와라 히로시는 무엇에 재미를 느끼냐는 인터뷰어의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서프라이즈가 있는 것. 늘 의외의 조합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놀라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5)
하라주쿠(Harajuku) 뒷골목에서부터 브랜드 굿 이너프(GOODENOUGH), 편집숍 노웨어(NOWHERE)를 지나 프라그먼트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과정은 늘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했습니다. 펑크, 힙합, 스케이트보드와 같은 비주류 문화에서 발견한 전유는 원본의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일깨웠죠. 그렇게 써 내려 간 프라그먼트의 번개 로고는 말 그대로 하늘에 번개 치듯 나타나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곤 합니다.
어쩌면 후지와라 히로시의 번개 문양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 또한 각자의 방식대로 전유하고 재해석해 보라는, 그가 던지는 가장 도발적인 제안 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익숙함 속에서 번뜩이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요?
1) HYPEBEAST, HB20: Fragment’s Longevity and Legacy(2025.10.16)
2) SSENSE, Hiroshi Fujiwara Is the Living Internet: Tiffany Godoy Speaks with the Godfather of Streetwear in Tokyo(n.d.)
3) L’OFFICIEL, Hiroshi Fujiwara Shows His Support for Georgian Fashion(2021.10.04)
4) 스케이트 보드 관련 회사들이 다른 브랜드의 기본 티셔츠에 본인들의 로고를 찍어 내는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5) W Korea, 히로시 후지와라와 나눈 짧은 대화(2024.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