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발견한 독립 출판물 신간 3권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한 각자만의 방법
독립 출판물의 매력은 기성 출판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주제와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일 텐데요. 매년 전국 곳곳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북페어에서는 다양한 독립 출판물이 한자리에서 모입니다. 직접 창작자를 만나 이야기 나누며 책의 기획 의도나 비하인드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건 북페어의 묘미기도 하죠.
2025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은 개관 80주년을 맞이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개최되었는데요. 행사에서 발견한,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책 세 권을 모았습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주목할 만한 신간을 만나보세요.
낭만 미쳤다

일러스트레이터 누아(NUA)는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색감의 작품으로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작가입니다. 이번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공개한 신간 <낭만 미쳤다>는 미술과 음악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기획이 돋보입니다. 세로로 긴 판형에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 컬러의 표지, 통통 튀는 민트색 링제본에 반짝이는 유광 내지까지. 기성 출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로운 판형이 인상적이죠. 이번 신간에서 누아 작가는 글을 비롯해 그림과 사진으로, 뮤지션 서윤혁은 음악으로 참여했는데요. 책을 펼쳐 QR코드를 인식하면 책을 위해 작곡된 음악 세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한 사소한 기쁨에 ‘낭만’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행복이나 사랑처럼 추상적인 감정보다는, 현실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작지만 위대한 순간들을 그러모아 다채로운 이미지로 풀어내죠. 틈틈이 수집한 공연 티켓과 영수증, 꽃 포장지로 만든 콜라주나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색연필과 물감으로 그린 그림들까지. 낭만은 꼭 거창하고 멋진 순간이 아니라, 평범하고 때로는 엉망인 날들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전달합니다. 감사함보다는 불평하고 불만하기가 더 쉬운 요즘의 세상 속에서, 일상의 반짝거림을 발견하고 선명히 감각하는 비법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글자여행

정지혜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혜웍스(HYEWORKS)는 글자를 기반으로 로고나 레터링, 폰트 등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을 선보이는 스튜디오입니다. 정지혜 디자이너는 넷플릭스 캠페인 슬로건부터 영화 <아가씨>와 <헤어질 결심>의 타이틀, 두산베어스 등 국내외 다양한 기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죠. 혜웍스는 진(zine)이나 노트 등 출판물 기반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요. <글자를 그리는 여행자>는 여행과 레터링을 주제로 제작된 미니북으로, 각 도시를 여행하며 느꼈던 인상과 감정을 폰트로 표현했습니다. ‘이탈리아‘ 글자에서는 뜨거운 태양과 열정이 느껴지고, 스웨덴의 도시 ‘솔나‘에서는 숲이 우거진 풍경이 연상되죠.

이번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공개한 한정반 <글자여행>은 <글자를 그리는 여행자>의 컬러판 버전인데요. 앙증맞은 손바닥 크기와 실과 바늘로 한 땀 한 땀 바인딩해 수작업의 매력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정지혜 디자이너는 여행과 글자라는 좋아하는 두 가지를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 기록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페이지를 넘기면 각 도시에서 촬영한 사진과 간판이나 표지판 등을 콜라주한 배경 위로 도시별 폰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도시별 특성이 글자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이국적인 정취와 분위기가 매력적인 책입니다.
The pieces of memory, Berlin

Gemmanily는 일러스트와 필름 사진을 기반으로 출판물과 다양한 상품을 제작하는 스튜디오입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젬마(Gemma) 작가는 ‘The pieces of memory’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집이 아닌 여러 도시에 머물며 마주한 장면들을 그림과 사진으로 담아 한 권의 이미지북으로 엮어내고 있습니다. 2019년 스페인을 시작으로 2022년에는 파리와 런던, 그리고 얼마 전에는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신간 베를린 편을 선보였죠.

책 <The pieces of memory - Berlin>은 기억의 조각들이라는 이름처럼, 베를린에서 한 달간 채집한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작업 노트를 스캔한 페이지부터 폴라로이드 사진, 연필 드로잉, 수채화, 엽서와 영수증 등이 수록되어 있어 왜 이 책이 사진집이나 드로잉북이 아닌 이미지북으로 소개되는지 알 수 있죠. 크라프트 재질의 표지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여져 있고, 제목은 직접 붙인 마스킹테이프 위에 적혀있습니다. 책등을 노출하는 제본 방식은 빈티지한 매력을 살려주죠. 여행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영감으로 풍성한 책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가팀으로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출간한 신간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관심과 응원을 건네주셔서 사흘 내내 행복했던 시간이었는데요. 독자분과 대화를 나누며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분들과는 즐겁게 각자의 경험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을 비롯한 북페어는 독자에게는 신선한 영감의 씨앗을, 작가에게는 창작물을 선보이며 독자들을 만나는 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책으로 연결되는 귀한 경험은 오직 오프라인 행사에서만 가능한 것일 테죠. 앞으로도 책을 매개로 진행되는 행사들이 다양한 목소리가 오가는 소통의 장으로서, 우리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세계로 멀리 데려가 주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