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밖의 자리

존중을 기반한 팔레트세션

실력 밖의 자리
Photo by azad pirayandeh / Unsplash

필자는 처음 스튜디오 거울 앞에 섰을 때, 필자의 춤이 아니라 옆 사람의 춤을 먼저 봤다. 그들보다 더 높이 점프해야 이 공간에 있을 자격이 생긴다고 믿었다. 실력은 보이지 않는 줄을 만들었고, 필자는 그 줄 어딘가에 서 있었다. 과연 이러한 경험은 댄스 씬만의 이야기인가? 밴드 합주실에서 음정 못 맞춘다고 주눅든 보컬, 미대 입시학원에서 '못 그린다'는 이유로 구석 자리를 차지하는 학생 같이 실력이 관계를 정의하는 구조는 문화예술계 전반의 문제다. 만약 실력이 아니어도 환대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실력이 만든 보이지 않는 위계

a man is walking up a set of stairs
Photo by MAK / Unsplash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실력은 오랫동안 존재 증명처럼 작동해왔다. 음악 씬에서는 세션 뮤지션과 메인 아티스트 사이의 위계가 존재한다. 같은 무대에 서도 발언권은 다르고, 크레딧에 이름이 오르는 방식도 다르다. 미술계에서는 작품이 팔린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전시 오프닝에서 누구의 말이 경청되고, 누구의 의견이 가볍게 여겨지는지는 종종 판매 실적으로 결정된다. 문학계의 등단 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등단 전과 후, 같은 글을 써도 받는 대우가 달라진다. 워크숍에서 비등단 작가의 피드백은 의견이 되고, 등단 작가의 피드백은 조언이 된다.

댄스 씬도 예외는 아니었다. 10년차와 3개월차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실력 비슷한 사람끼리 무리를 이루고 그 경계를 넘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실력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사람들을 연결하려는 시도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실력이 있어야 존중받는 건 당연하지 않나?’라는 말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실력 = 존재 가치’라는 등식이 숨어있다. 그리고 이 등식은 여전히 많은 예술 씬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색깔이 가득한 공간, 팔레트세션

한국에서 시작된 팔레트세션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palette_session

그런데 댄스 씬에서는 이를 다르게 시도하는 곳이 있다. 바로 팔레트세션이다. 이곳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백제예술대학교에서 코레오를 전공하던 댄서 채도가 다양한 스트릿 댄서들과 교류하고 싶어 만든 '연습 방법'이 전부였다. 처음 이름은 '움직임 교류회’로 시작을 알렸다. 졸업 후에도 이를 팔레트세션으로 이어간 이유는 단순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무언가를 얻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명, 두 명 자주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에게 계속 좋은 공간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팔레트세션을 지금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채도는 팔레트세션을 운영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스트릿댄스 문화의 배틀에서 빛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배틀 성향이 맞지 않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틀이 아니어도, 실력을 증명하지 않아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서 팔레트세션의 철학이 시작되었다. 채도는 누군가의 춤을 설명할 때 '색'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색이란 단순히 힙합, 하우스, 왁킹 같은 장르가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긴 근본적인 '취향'을 의미했다. 실력은 측정 가능하지만, 취향은 비교 불가능하다. 누군가의 빨강이 다른 이의 파랑보다 우월할 수 없듯, 팔레트세션에서 춤은 서열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다.

하지만 이 철학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초기에는 '서로의 움직임을 가져와 내 것과 섞어보는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했다. 안전한 교류를 위해 '존중'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그런데 운영을 거듭하며 진정한 존중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채도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사람을 바라볼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프레임)을 내려놓고, 있는 그 자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력이라는 프레임, 경력이라는 프레임, 심지어 장르라는 프레임까지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순수한 교류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팔레트세션을 통해 새롭게 시작된 관계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palette_session

이 철학은 팔레트세션의 배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반적인 배틀이 장르별, 음악별로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과 달리, 팔레트 배틀은 '색의 무드에 따른 음악 사이드'라는 독특한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배틀 형식상 승자와 패자가 나뉘긴 하지만, 참가자들의 실질적인 목표는 승패가 아니라 색의 교류다. 참가 신청 때 자신의 색깔을 선택하고, 그 색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결과와 무관하게, 서로 다른 색깔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풍경만이 남는다. 채도는 다채로운 색들과, 한 색 안에서도 다양한 색들이 나오는 광경을 보며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영감을 얻었으며, 참가자들 역시 나만의 색이 다른 색들로 다채롭게 칠해졌다고 표현했다.

이 방식은 서울을 넘어 시드니로 이동했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호주 학생 딜런이 팔레트세션에 참여했다. 한 달에 4~5번 열리는 세션에 총 40번을 참석한 그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갈 때 호주에서 팔레트세션을 운영하겠다고 채도에게 제안했다. 딜런은 호주로 돌아가 팔레트세션을 운영했다. 이후 호주 대사관 지원으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세션에 한국 크루가 참여했으며 현재까지도 팔레트세션 프로그램은 이루어지고 있다. 호주 크루가 2주간 한국에서 교류했고, 5월에는 한국 크루가 호주 댄스 페스티벌 KI에 참여할 예정이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진행하는 팔레트세션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palette_session

채도는 항상 모든 세션이 끝난 뒤, ‘팔레트세션은 끝이 났으며, 여러분들의 팔레트세션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팔레트세션에서 처음 춤을 춘 사람이 세션에서 만난 크루와 작품을 만들고, 배틀장에서 세션의 인연들이 서로의 춤을 응원하며 관계를 이어나갔다. 실력이 아닌 색으로 만났을 때, 관계는 달라졌다.


우리의 위치는 누가 정했는가

이것만이 댄스 씬의 해법일까. 팔레트세션이 완벽한 답은 아니다. 하지만 실력이 아니어도 관계는 작동했다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독자는 누군가의 의견을 실력의 유무로 판단하거나 혹은 실력 부족을 이유로 스스로 목소리를 낮춘 경험이 있을수도 있다. 이것은 타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이 구조 안에 있다는 증거이다. 필자는 댄서로서 그런 순간들을 목격해왔다. 뮤지션 독자라면 잼 세션에서, 작가 독자라면 워크숍에서, 미술가 독자라면 크리틱 자리에서 같은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장르는 다르지만, 구조는 같다.

만약 팔레트세션 같은 공간이 생기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직 실력이 안 돼'라는 말로 스스로를 가두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도의 문턱이 낮아진다. 실제로 팔레트세션에서 처음 춤을 춘 사람이 세션에서 만난 크루와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협업의 기준도 바뀐다.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가 아닌 '색이 어울리는 사람끼리' 만나 하나의 무대를 완성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씬 자체가 확장된다. 배틀 중심 문화에서 빛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팔레트세션에서는 빛난다. 그들이 다시 자신만의 세션을 만들고, 새로운 다리들을 생겨나게 한다. 서울에서 시작된 작은 세션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까지 이어진 이유다.

문제는 실력 그 자체가 아니다. 실력의 기술적 발전은 분명 가치가 있다. 문제는 실력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순간, 우리가 놓치는 것들이다. 서툰 움직임 속에 담긴 진심, 미숙한 연주 안에 숨은 시도, 덜 완성된 그림이 던지는 질문을 이미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팔레트세션 같은 공간이 '특별하다' 고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것이 예외가 아니라 당연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려면, 우리 각자가 내일 만날 '아직'인 누군가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서 시작된다.

팔레트세션에서 보여주는 색의 교류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palette_session

팔레트세션은 댄스 씬의 사례다. 하지만 이것이 던지는 질문은 모든 예술 씬을 향한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실력이 있어야 대화할 자격이 생기는가, 성과가 있어야 의견을 낼 수 있는가, 경력이 쌓여야 관계가 시작되는가 혹은 우리는 이미 누군가를 ‘아직’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팔레트세션에서 서울에서 시드니까지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력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관계맺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아직’이 아닌 ‘지금’ 관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