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랜선 관계는 안녕한가요
얼굴 없는 연결의 시대
여러분은 인터넷 많이 하시나요? 이 글도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도 꽤나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계신 편일 텐데요. 때로는 '인생'이란 '인터넷 세계에서의 삶'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인생'에서의 관계는 어떤가요? 익명성이 보장되는 세계 안에서 상처를 주거나 받고 있지는 않나요?
과거 인터넷은 우리가 컴퓨터를 통해 접속해야만 하는 친숙한 듯 먼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기기로 24시간 언제나 인터넷에 접속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듯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한 인터넷에서 관계는 '익명', '가상', '랜덤' 등의 키워드로 재편됩니다. 그러한 관계는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것으로 취급되게 마련이지만, 우리가 인터넷 공간에 언제나 상주하는 이상 피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이런 인터넷 공간에서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을 살펴 봅니다. 여기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각각 인터넷을 통한 가장 파괴적인 연결부터 가장 따뜻한 연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의 연결이 지금 어떤 모양을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본 아티클은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리틀 아이즈>, <용과 주근깨 공주>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의 관심이 살인자를 키운다면?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관종(관심종자)'에게는 먹이를 주지 마라." 인터넷 세계에서 금언처럼 떠도는 말이죠. 하지만 그 '관종'이 도저히 웃어넘길 수 없을 만큼 선을 넘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넷플릭스 다큐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는 '관종'과 대중 사이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꼬집습니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시작은 유튜브에 버젓이 자신의 범죄 행위를 전시하는 고양이 학대범을 잡고 싶었던 몇몇 사람들이 페이스북 그룹을 만든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고양이 학대범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영상을 분석하고,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를 긁어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그룹에 공유했죠. 조금은 집착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인이 '연쇄살인범'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며 분위기는 반전됩니다. 심지어는 그룹 멤버들의 신상정보를 추적하여 이들을 협박하기도 합니다. 그룹 멤버들은 공포, 불안, 무기력에 시달리며 이 일에 뛰어든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이 이야기의 결말은 범인이 경찰에 붙잡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페이스북 그룹의 멤버들은 질문합니다. "혹여나 우리가 관심을 끌고자 하는 그의 목적을 이루어 준 것은 아니었을까?"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는 이처럼 인터넷 세계의 가장 어두운 면을 이끌어 냅니다. 누군가를 학대하고 살해하는 장면이 단지 관심을 받기 위한 행위로 전락하여 범죄자의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가 됩니다. 사람들은 끔찍한 사건의 해결을 바라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관심이 범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아이러니와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작품은 다소 극단적인 예시에 해당하긴 하지만, 이따금 댓글창에서 이런 '관종'들을 마주치면 여러분은 비슷한 고민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야 할지, 비판할 점을 비판해야 할지 말이죠. 서로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모르는 인터넷 세상은 이런 부정적인, 때론 무섭기까지 한 연결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관찰(당)하고 싶은 욕망
<리틀 아이즈>
홈캠 로봇을 이용해 먼 거리에 있는 연인이나 가족과 마치 함께 있는 듯 소통하는 내용의 영상, 혹시 보신 적 있으신가요? 만약 이미 서로를 알고 있는 관계가 아닌 완전한 타인과 이런 식으로 연결된다면 어떨 것 같나요? 어딘지 꺼림칙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미 그런 식의 관계에 익숙합니다. 관찰 예능이나 브이로그를 통해서 말이죠. 국내에서 <리틀 아이즈>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사만타 슈웨블린의 소설 'Kentukis'는 이러한 연결을 다룹니다.

제목의 ‘켄투키’는 소설 속 세계에서 출시된 일종의 스마트 기기입니다. 켄투키를 ‘소유하는’ 사람은 동물 인형처럼 생긴 제품을 구매하고, 켄투키가 ‘되는’ 사람은 인터넷으로 접속할 수 있는 일련번호를 구매합니다. 이 일련번호를 통해 사용자가 랜덤으로 매치되면, 켄투키를 소유하는 사람은 켄투키를 마치 인형이나 반려동물처럼 곁에 두고 생활하고, 켄투키가 되는 사람은 켄투키를 통해 송출되는 영상과 음성을 시청할 수 있게 됩니다.
관찰이라는 연결의 방식은 언제나 위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관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누가 자신을 관찰하는지도 모른 채로 자신의 생활 반경이나 신상 정보를 노출합니다. 한편 관찰하는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가는 전적으로 보여주는 이에게 달려 있으므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관찰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꾸며진 것과 진정성 있는 것을 구별하기 쉽지 않죠. 한때 인플루언서들의 뒷광고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요. 혹은 유해한 장면을 계속해서 보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리틀 아이즈>는 이런 관찰의 역설을 파고듭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소설이지만 우리의 랜선 관계를 돌아보기에 충분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관찰에 대한 욕망으로 연결된 우리의 관계가 언제나 시선의 권력이나 위험에 대한 노출로만 이루어져 있을까요? 이토록 관찰이 유행하는 시대라면, 관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만한 대목입니다.
스크린 너머의 관계로
<용과 주근깨 공주>
앞의 두 꼭지에서는 익명의 타자와 연결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젠 우리가 온라인을 통해 맺는 긍정적인 연결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가령 여러분은 온라인에서 만난 관계가 '실친(실제 친구)'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런 만남은 위험요소가 여럿 존재하지만, 온라인을 통해 공통의 관심사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급격하게 친해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는 가상공간 U를 배경으로 합니다. 사실 가상공간이라는 소재나 영화의 줄거리를 이루는 '미녀와 야수' 모티브는 그다지 참신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스크린 너머의 '사람'과 그와의 실제적인 연결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스즈는 트라우마 때문에 현실 세계에선 노래를 전혀 부르지 못하지만, U에서만큼은 인기 가수 '벨'로 활동합니다. 가상 세계의 스타인 벨은 U의 문제아 '용'에게 자꾸만 신경이 쓰입니다. 용은 U 안에서 난폭하게 행동하며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벨(스즈)만은 그에게 다정하게 다가갑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스즈는 용이 사실은 어린 나이의 학생이며,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를 구하기 위해 스즈는 벨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스즈로서 나섭니다. <고양이는 건들지 마라>의 페이스북 그룹 멤버들처럼, 스즈와 친구들은 온라인 정보를 통해 용이 사는 곳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스즈는 직접 용을 찾아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가상 세계에서 이루어진 익명의 연결이 결국 현실 세계에서의 물리적인 연결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온라인에서 계속 마음 다치는 일을 겪으면서도 랜선 관계 혹은 '인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 안에서 가능할지도 모를 이런 '진짜 연결'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요. 꼭 스즈와 용처럼 물리적인 연결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진정성 있는 관계에 대한 욕망 말이죠.
최근 인터넷의 활용이 광범위해지며 온라인 인간 관계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일찍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한 어린 세대일수록 온라인 관계에 더 친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Z세대의 친구 관계, 이렇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는 사이에서도 실제로 만나는 시간보다 메신저나 SNS를 통해 대화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으니 사실상 온라인 관계가 가족, 연인, 직장 동료 등을 제외하면 절대 다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형태와 스타일-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관계 맺기") 이제는 실제 사람뿐만 아니라 AI 챗봇과도 친구처럼 지내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온라인 관계에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익명 가상 공간의 고질적인 문제인 악플 등의 언어 폭력에 더해 최근엔 기술의 발전으로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문제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라인을 통한 연결을 이어갑니다. 어쩌면 인터넷 기술이 우리로 하여금 혼자서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깊은 연결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유대감을 다질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 연습에 오늘 소개한 작품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