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봉준호와 크리스토퍼 놀란 전설의 시작은 어땠을까?
‘믿고 보는 감독’. 어떤 영화는 감독의 이름만으로 매진됩니다. 그만큼 많은 시네필들의 마음속에 높은 신뢰를 획득했다는 의미겠지요. 혹시 지금 떠오르는 거장의 이름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감독의 첫 작품, 즉 데뷔작*을 본 기억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영화감독도 그들의 처음까지 세세히 기억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초심’이란 주제를 맞아 이번 글에선 그 처음을 들추어 보려고 합니다. 거장들의 데뷔, 즉 전설의 시작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금 시작점에 있는 우리는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보통 영화계에선 단편 영화 이후 장편을 내놓습니다. 따라서 ‘최초의 작품’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단편이 감독의 데뷔작이 되는 것이 맞으나, 많은 경우 첫 장편 상업 영화를 데뷔작으로 칭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장편 데뷔작을 기준으로 서술했다는 점 참고 바랍니다.
LESSON 01
때로는 그냥, 일단 시작하기

독보적인 세계관과 영상미로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웨스 앤더슨의 데뷔작은 어땠을까요? 그 또한 처음부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뚝딱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6년 <바틀 로켓>이란 작품으로 데뷔한 그는 첫 테스트 상영에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겪으며 난관에 부딪힙니다. 뒤이어 제작비의 10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 실패했죠. 하지만 비평가들의 평은 긍정적이었고, 후에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 영화를 90년대 최고의 영화 10개 중 하나로 꼽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서사와 연출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웨스 앤더슨만의 재치와 그 세계관의 원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다고나 할까요?

훗날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완성해 대중에게 보여줬을 때, 그들은 이걸 너무 싫어했어요. 전 큰 충격을 받았고, 재앙과도 같았죠. 그러나 그게 절 바꿨어요. 만약 그 반응을 제가 미리 알았다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거예요. 어릴 적엔 맹목적인 자신감이 필요하잖아요.” 조금은 무모하더라도 자신감 있게, 일단 시작하기. 때로는 값진 실패 끝에서 가장 중요한 걸 배우는 법이니까요.
LESSON 02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부터 <기생충>까지, 지금 시대 가장 사랑받는 한국 감독 봉준호도 시작부터 마냥 찬란하진 않았습니다. 2000년, 그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개봉합니다. 당시엔 대중적이지 않았던 블랙 코미디 장르로, 봉준호다운 유머 코드와 사회 풍자의 메시지가 영화 전반에 녹아있는 영화인데요. 이를 통해 그가 꾸준히 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 등에 관심을 두었음을 알 수 있어요. 흥행에선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지만 평단에선 나름의 호평을 받습니다. 특히 이동진 평론가는 ‘봉준호는 시작부터 빛났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죠.

봉준호 감독이 <괴물>로 성공을 거둔 무렵, 한 인터뷰에서 데뷔작에 얽힌 후일담을 밝혔습니다. 흥행 실패 후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어떤 남성이 쓱 다가오더니 “혹시 <플란다스의 개> 찍으셨냐, 나 거기 투자한 사람이다”라고 말을 걸었다고 해요. 너무 놀란 봉 감독은 자기도 모르게 “너무 죄송합니다!”하고 연신 사과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는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의 뼈아픈 실패로 위축되었던 마음을 유머러스하게 고백했어요. 데뷔작 이후 그는 <살인의 추억>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결국 실패로 인생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 기회는 다시 살리면 된다는 것. 간단한 진리를 되새기게 됩니다.
LESSON 03
나만의 돌파구, 나만의 속도

<인터스텔라>, <테넷> 등 예상을 뛰어넘는 스토리와 연출로 늘 감탄을 자아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사실 그는 영화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요. 대학 시절 내내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영화인의 꿈을 키웠어요. 졸업 이후 그는 카메라 기사로 일하며 첫 장편 영화 <미행>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는데, 감독 자신을 비롯해 대부분의 스태프와 배우가 본업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주말마다 짬을 내 촬영했다고 하죠. 이에 일반 영화의 촬영 기간을 훌쩍 넘겨 약 일 년간 작업을 해냅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것에 비해 뛰어난 완성도로 큰 호평을 얻어요. 토론토 영화제 등에서의 수상은 물론 흥행까지 성공합니다. 여기서 얻은 상금과 수익 덕에 놀란은 차기작 준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어요. 이윽고 세상에 나온 영화가 바로 <메멘토>입니다.

유명 영화 학교 졸업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감독들이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놀란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부를 걸어요. 영화를 찍을 현실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대신 ‘주말마다 조금씩 찍자’라는 대안을 도입, 멋지게 실천해 낸 것이죠. 이처럼 시작의 모양은 남들과 달라도 스스로를 믿고 자신만의 속도를 낸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어요. 현실의 벽 앞에서 저만치 미뤄둔 목표가 있나요? 놀란식 돌파구에서 영감을 얻어 나만의 해결책을 찾아 봅시다.
LESSON 04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부고니아> 이전에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가 있었습니다. 이 세기의 리메이크 원작이 데뷔작이란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장준환 감독은 이 영화로 ‘2000년대 가장 인상적인 한국 영화 감독 데뷔작’이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극찬을 들었습니다. 2003년 국내 신인감독상을 휩쓸고,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기도 했어요. 다만 흥행 성적은 처참했습니다. 야심 찬 데뷔작이 7만 관객에 그치면서 그는 향후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본래 영화는 감독 전작의 흥행 여부가 투자 유치에 큰 역할을 하는데요. 그의 차기작에 선뜻 손을 내밀어줄 투자자를 만나긴 쉽지 않았던 것이죠.

공백은 길었지만, 그가 영화를 놓은 적은 없었습니다. 장준환 감독은 무려 9년 만의 장편영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로 성공적인 복귀를 마칩니다. 이후 2017년, 마침내 <1987>을 연출하며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르게 되죠. 720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데뷔작과 딱 100배 차이가 나는 값진 성공입니다. <지구를 지켜라!> 또한 ‘비운의 걸작’으로 불리며 국내외 시네필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요. 이번에 리메이크까지 성사되며 덩달아 주목받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인 실패 당시엔 꿈도 못 꾸었을 상황이었겠죠. 그의 대기만성형 서사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단편 영화 중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란 작품이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구교환 배우가 2014년 감독 겸 출연을 했던 영화인데요. 말 그대로 출연한 독립영화 DVD를 받지 못해 감독을 찾아 나선 배우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이때 잠적했던 감독의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울려요. “그 영화 하나로 나 판단하지 마.”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서툽니다. 그래서 동시에 두렵기도 해요. 그 별로였던 처음으로 인해 내가 통째로 별로인 사람이 될까 봐서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진짜 별로인 건 구린 첫 작품을 남긴 사람이 아니라, 처음 이후 멈춰버린 사람이니까요. 나만의 길을 따라 초심을 갈고 닦는다면 우린 틀림없이 점점 더 괜찮아질 겁니다. 이 네 감독이 보여 주었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