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콘텐츠가 만난 복합농업공간 3 곳
로컬을 풍성하게 만드는 연결고리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에게 화합은 생존하기 위한 필수 덕목이었습니다. 야생 동물로부터 싸우고 몸을 지키기 위해,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통해 식량을 얻기 위해, 가정을 이뤄 번식하기 위해서요. 이젠 야생으로부터 위협 받는 일은 드물지만, 우리에겐 화합 해야 하는 이유가 남아있습니다. 생존의 가능성이 아닌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을 위해서 입니다.
오늘 소개할 공간은 로컬에서 농업과 콘텐츠를 융합해 다양한 가능성을 제안하는 곳들입니다.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관계를 연결 짓기도 하는데요. 경험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때론 협업을 통해 지역에 풍요로움을 더합니다. 논산, 영월, 춘천을 대표하는 복합농업공간 세 곳을 만나보세요.
농장에서 소비자를 만나는 연결 지점
꽃비원 홈앤키친
논산은 딸기 축제와 육군 훈련소로 자주 언급되는 도시인데요. 알고 보면 역사 깊은 유적지와 자연이 어우러진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도 조용하고 단정한 이름의 공간 ‘꽃비원 홈앤키친’이 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이곳으로 귀농한 부부가 농산물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가꾸는 공간입니다. 직접 농사 지은 농작물이 식탁 위에 오르는 마지막 한 접시까지 직접 닿은 손길로 키친에서 선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꽃비원 홈앤치킨에서만 볼 수 있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가치관입니다.


꽃비원 홈앤키친을 팜 투 테이블로 운영하게 된 것은 자신들이 믿는 삶의 방식을 공간에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유통 과정의 거품을 걷어내고, 식재료의 흐름을 투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도 전하고 있는데요. 농부와 소비자가 만나는 농부시장 ‘마르쉐’에 꾸준히 출점하고, 도시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청년농부 체험 스테이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자급자족의 철학을 나누기 위해 직접 기획한 플리마켓을 열기도 하고요. 이런 경험을 통해 도시의 소비자는 농촌의 삶을 깊이 이해하게 되고, 농촌의 생산자는 도시의 감각을 맞춰갈 수 있습니다.
꽃비원 홈앤키친은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여러 관점에서 화합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진심으로 연결되는 경험, 때론 도시와 농촌이라는 관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자리를 마련하면서요. 모두의 농장, 일상 속의 조화로움을 경험하고 싶다면 꽃비원에 방문해보세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복합농업공간
그래도팜 Tomarrow
영월에서 산과 구불한 길,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보면 서울 성수동에나 있을 법한 건물이 나옵니다. 이름은 ‘Tomarrow’. 유기농 토마토 농장 ‘그래도팜’에서 운영하는 복합농업공간 인데요. 내일(Tomorrow)과 토마토(Tomato), 그리고 향기(Aroma)가 절묘하게 엮인 이 이름에는 이 공간이 지향하는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오랫동안 유기농 농사를 고수해온 아버지의 철학을 이어받아 원광현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래도팜은 농업과 일상의 경계를 감각적으로 연결하며 농사의 리듬을 도시적 감각으로 표현합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토양전시관’ 입니다. 흙을 보러 간다는 건 일상에서는 낯선 경험이죠. 이곳에서 토양은 농업의 근간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 그 자체로 다뤄집니다. 농약이 얼마나 토양에 해로운지,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등 농사의 중요한 가치관이 우리의 ‘사는 일’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Tomarrow는 후각, 미각, 촉각 등 일상의 감각을 농업과 연결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입니다. 씨앗을 직접 심어보는 키트, 토마토를 활용한 음식 레피시와 체험 프로그램, 셰프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 등. 모든 콘텐츠는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이 되면서도 농업이 가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건강한 토양이 농부에게만 중요한 일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며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팜의 Tomarrow가 특별한 이유는 흥미로워 보이는 디자인이나 콘텐츠 때문은 아닙니다. 결국 일관성 있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메시지 속에 담긴 힘인데요. 모든 콘텐츠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큰 틀 안에서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됩니다. 그래도팜에서 재배된 토마토는 자연과 인간이 지속하며 만들어진 상징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죠. 이곳에서 다양한 감각을 즐기며, 더 나은 내일과 새로운 조화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컬 이야기를 대중으로 확장시킨 공간
춘천 감자밭
강원 춘천에서 관광객이 붐비기로 유명한 공간이 있습니다. 축구선수 손흥민 가족이 운영해 유명해진 카페와 감자빵의 원조로 유명한 카페 ‘춘천 감자밭’ 입니다. 춘천 감자밭은 지역의 대표 농산물인 감자를 전면에 내세워 감자빵과 감자 라떼, 춘천 감자 축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그야말로 ‘감자의 미학’을 풀어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춘천 감자밭은 지역에서 디저트 카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역의 농산물을 중심에 두고 청년, 농부, 기획자가 하나의 공동체처럼 협력하며 콘텐츠를 만드는 화합의 실험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대표 메뉴인 감자빵은 이제 전국에서 춘천의 맛으로 통하지만, 그 뒤에는 로컬 생산자와 긴밀하게 협력해 재료를 공급받고, 제품 개발 과정에 지역 청년들이 직접 참여하는 구조가 자리잡아 있습니다. 단순히 브랜딩만 잘 하는 것이 아닌, 농업과 지역 콘텐츠의 융합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카페 운영에 그치지 않고 감자밭은 ‘춘천 감자 축제’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4년 처음 시작한 이 축제는 감자를 매개로 춘천이라는 도시와 농업의 정체성을 재미있게 풀어낸 시도였는데요. 작고 평범했던 감자가 춘천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고, 주민과 관광객, 농부와 기획자가 하나의 키워드로 화합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감자밭의 프로젝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농업의 틀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들은 감자를 키우는 일에서 함께 어울리고 이야기 하는 매개로 확장시킵니다. 감자밭에서 화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춘천이라는 지역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농부와 중간 생산자가 서로 화합했을 때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가 탄생했으니까요.

논산, 영월, 춘천에서 농업과 콘텐츠가 한데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로컬의 가능성을 넓혀갑니다. 각자 다른 관점으로 화합을 보여준 세 곳의 공간들은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풍경을 보여주는데요. 도시와 농촌, 농부와 소비자, 지역 주민과 관광객 등 엮이지 않을 것 같은 관계까지 포용하며 가능성을 넓혀갑니다.
음악에서 서로 다른 음들이 어우러져 풍성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서로 다른 존재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면 더 나은 가능성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렇듯 삶의 일부를 함께 나눈 화합은 풍요로움을 확장하는 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