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뜨거웠던 오아시스 원정기
좋아한다면, 인생에 한 번쯤

여러분은 보고 싶은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어떤 일까지 저질러 보셨나요? 이번 여름, 저는 생애 가장 비싼 티켓 값을 치르며 바다 건너편으로 떠났습니다. 작년 재결합을 선언한 오아시스를 직접 보기 위해서 말이에요. 모든 것은 작년 8월 31일, 오아시스 영국 투어 티케팅에 성공해 버리면서(?) 시작되었어요. 전 세계에서 몰려든 디지털 인파 속에서 4시간이 넘는 대기를 뚫고 얻어낸, 값진 승리였죠. 다음날 저와 친구는 곧장 런던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습니다. 오직 오아시스에 의한, 오아시스를 위한 첫 영국 여행은 ‘설마’하는 마음에서 진짜가 되어 제 품에 안겼습니다. 오아시스를 사랑하는 7만 명의 관중 틈 속 상상 이상의 열기를 느끼며, 제 2025년 여름의 전부가 된 오아시스 투어 경험담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예매 성공 후 1년, 드디어 비행기에 오르다
사실 저는 뼛속까지 무계획 형 인간이라, 1년 뒤의 여행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저를 둘러싼 환경은 변하지 않았더군요. 그렇게 저는 일주일간의 영국 여행을 위한 비행기에 무탈히 탑승했습니다. 예매 후 생긴 가장 큰 변수는 오아시스가 월드 투어를 발표하며 한국 공연을 확정 지었다는 거였어요. 사실 영국을 가기로 한 건 그들이 한국에 온다는 게 불확실하기 때문이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한국 공연 발표 후 몇몇 지인들은 우리에게 장난 섞인 비웃음을 보냈습니다. 비록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된 오아시스였지만,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이제 이 공연은 단순한 의미를 넘어 ‘역사와 함께한다’에 더 가까워져 있었거든요.

의미 부여가 결코 과한 건 아니었습니다. 얼떨결에 예매한 공연이 오아시스 모든 투어의 첫 공연이었기 때문이죠. 당시 경쟁이 가장 덜 치열한 지역은 어디일지 고민하던 저와 친구는 서너 가지 지역 예매 창을 동시에 공략했는데요. 결국 성공했던 게 웨일스 지역 카디프에서 펼쳐질 첫 공연이었습니다. 2009년 해체 이후 역사적인 재결합 투어, 그 신호탄인 첫날 오아시스와 함께하게 된 셈이죠. 이걸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
런던에 도착한 첫날 들른 아디다스 매장, 목표는 오직 오아시스 X 아디다스 컬래버 에디션이었습니다. 오아시스는 전성기 시절부터 아디다스 아이템을 활용한 패션을 일상적으로 보여줘 왔기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협업이다 싶었어요. 매장 내 다국적의 오아시스 팬들을 통해 이번 재결합을 향한 세계적인 관심을 느낄 수 있었고요. 폭풍 쇼핑 후 건네받은 백의 무게와 함께 설렘을 한 아름 얻은 건 덤이었습니다.

약속의 땅 카디프
이후 일주일간의 영국 여행, 오아시스의 공연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습니다. 항공권 결정을 두고 고민하던 우리는 ‘대미를 장식한다’는 말이 아깝지 않게 하자며 이렇게 일정을 확정 지었죠. 인근 브리스톨에 숙소를 잡은 뒤 이튿날 아침부터 카디프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야심 차게 구매한 오아시스 티셔츠를 입고 출발한 우리는 숙소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뜨거운 시선을 받았는데요. “오아시스 공연 보러 가니? 너무 좋겠다!”는 응원부터 지하철에서 쏟아진 브리티쉬 스마일*까지, 손꼽아 기다리던 ‘결전의 날’ 다웠어요. 카디프로 가는 기차서부터는 대부분이 우리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논-오아시스 아웃핏’이 이상해 보일 정도였죠. 그 덕에 온 기차가 오아시스로 하나가 된 것 같았습니다.
*모르는 이라도 눈을 마주치면 서로 미소를 건네는 영국 특유의 문화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공연 약 6시간 전 도착한 우리는 눈앞의 풍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도시 전체가 오아시스로 들썩이고 있었거든요. 한국에서도 물론 대스타의 공연을 앞두고선 스타디움 근처가 동요하는 기운은 느낄 수 있었지만 여긴 좀 달랐어요. 모든 이들이 본격적으로, 이 물결의 일부가 되어 한바탕의 축제를 벌이는 듯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출근도 안 해?”
한국에선 주말이 아니고서야 퇴근 후 콘서트에 부랴부랴 참석하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이날 영국인 중 일부는 아마 그랬겠지만, 같은 공연을 보게 될 7만 명 중 대부분은 이미 그들만의 공연을 맞이한 것 같았어요. 대낮부터 펍은 사람들로 붐볐고 웨일스 성 근처 잔디밭 또한 무리로 점령되어 있었죠. 오아시스란 대체 이들에게 무엇이길래 온 거리가 이토록 신난 것일까, 이들의 영향력을 실감했습니다. 곳곳에서 취재진 또한 흔히 볼 수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동양인이 흔하지는 않았던 탓인지, 영국의 한 스포츠 매체와 짧은 인터뷰도 진행했습니다. 서툰 영어로나마 오아시스를 위해 한국에서 왔다며 기대되는 곡을 이야기했는데 끝나고 나니 남는 건 부끄러움뿐. (만약 여러분께서 해외 공연 관람을 준비하고 계신다면 미리 인터뷰 준비를 해두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그것이 흑역사를 막는 길이랍니다.)




공연장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스타
우리는 공연 전 스테이지에서 펼쳐질 또 다른 공연을 위해 입장 시작 직후 공연장에 들어섰습니다. 좌석은 말 그대로 ‘하나님 석’, 즉 무대보다 하늘에 가까웠는데요. 약 1초간 실망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저 무대에 오아시스가 오른다는데, 내 록스타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게 된다는데 그것이 대수겠어요! 공연장은 카디프 프린시팔리티 스타디움으로, 약 7만 3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럭비 경기장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스타디움은 또 처음이라 신기한 마음에 그 풍경을 바쁘게 눈에 담았습니다.

이날 공연 전엔 두 밴드가 분위기를 달구었는데, 그중 하나는 버브 The Verve 의 보컬 리차드 애쉬크로프트였습니다. 버브는 오아시스와 동시대에 활동한 브릿팝의 아이콘으로서 스페셜 게스트란 이름이 아깝지 않았죠. 특히 그는 마지막 곡으로 대표곡 ‘Bittersweet Symphony’를 불렀는데요. 순식간에 스타디움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 곡을 라이브로 듣는 행운에 무척 감격스러웠고요.

마침내 그들이 등장한 순간
공연 시간이 임박한 가운데 전광판엔 마침내 영상이 띄워졌습니다. 카운트다운과 함께 무대엔 갤러거 형제가 등장, Hello로 무대를 시작했습니다. ‘Hello! Hello! It's good to be back’이란 가사는 마치 이날을 예언한 것만 같았어요. 이날 이들은 20곡이 넘는 곡을 소화했는데요. 무엇보다 특별했던 건 이들이 셋리스트의 대부분을 1~3집 곡으로 채워 향수를 제대로 불러일으켰단 사실이었습니다. 주변 관객은 대부분 오아시스의 전성기를 함께 한 듯한 연령대로, 특히나 감격에 겨워하는 것이 느껴졌는데요. 1994년도에 태어나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오아시스를 듣고, 중학교 때 해체 소식을 접했던 ‘아기 팬’으로서 그들의 감정선을 온전히 따라잡기엔 한계가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공연은 점점 막바지로 치닫는데, 아직 대표곡이 나오지 않아 기대감이 증폭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Rock’N’ Roll Star’를 앞두고 리암이 “이게 우리의 마지막 곡이야”라고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의아함을 뒤로 하고 일단 노래를 즐겼는데 정말로 둘이 퇴장하길래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재등장을 염원했습니다. 곧이어 ‘The Masterplan’ 전주로 그들이 다시 무대에 오르자 스타디움은 함성으로 다시 가득 찼습니다. 이후엔 드디어 모두가 기다린 그 곡들, ‘Don’t Look Back In Anger’와 ‘Wonderwall’, ‘Champagne Supernova’가 연이어 등장했고요.
모든 곡이 끝나고선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이어졌는데요. 바로 리암과 노엘 형제의 포옹이었습니다. 그렇게 다투다 결국 해체까지 불사한 불화의 아이콘이 맞는 건지, 두 눈이 의심스러웠던 순간이었죠. 이를 두고 ‘자본주의가 이렇게 무섭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으나 진실은 이들만 알겠죠.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불화로 인한 투어 취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니, 한국 공연을 고대하는 분들 모두 안심하시길.

맥주냐 공연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이날 공연은 제가 외국에서 경험한 두 번째 공연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작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썸머소닉 2024’로, 일본의 뮤직 페스티벌 문화를 흠뻑 경험했는데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영국의 공연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가장 신선했던 건 맥주 먹으러 공연장 왔나 싶을 정도로 모든 이들이 어마어마하게 맥주를 먹는다는 거였어요. 우리나라 공연에선 대부분 1분 1초도 아까워서 옴짝달싹 않고 가수를 바라보는 게 기본인데, 이들에겐 앞에 오아시스가 있어도 일단은 내 맥주를 사 와야겠다는 게 관람 못지않게 중요해 보였습니다. 이에 따라 끝나갈수록 취해가는 이들도 몇 있었고요.
공연 중 당황스러웠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종이 맥주 홀더가 날라와 바닥에 철퍼덕 떨어진 것이었어요.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놀랄 만한 상황이었죠. 후에 같은 공연을 본 한국인 후기들을 보니 스탠딩석에선 홀더 뿐 아니라 맥주컵이 날아다녔다고 하더군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제법 있는 것 같았는데, 한국에선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라 새로웠습니다. 스탠딩 한편에서 응원용 연막탄인 홍염이 터지는 것도 목격해 한국에 비해 거친 관람 문화를 실감할 수 있었고요.
공연을 함께 즐긴 사람들
이날 근방에 자리한 관객들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앞줄에 앉았던 한 아저씨로, 그는 웃돈을 주고 겨우 티켓을 구해왔다고 했어요. 버밍엄 출신인 그는 이번이 그의 여섯 번째 오아시스 콘서트라며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몇 번째냐” 물었는데요. 편견 없는 그 질문에 박탈감은 물론 오아시스의 시대를 함께 겪은 그에 대한 부러움, 또 다른 전설을 마주한 듯한 경외감마저 같이 들었답니다. 그는 1996년 넵워스 공연까지 갔었다며 은근히 자랑하고는, 우릴 안전한 동양인으로 느꼈는지 자신의 짐을 맡기며 연거푸 맥주를 사러 다녀왔습니다. 심지어는 마지막 앵콜곡 Champagne Supernova를 패스하고 만나서 반가웠다며 먼저 퇴장하는 여유로움까지 보여줬죠. 세계적인 록스타의 행차가 너무나도 귀한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중년의 커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이들은 시작부터 6잔의 맥주와 함께 등장해 흥겹게 공연을 즐겼는데요. 특히 여자분께서는 떼창 중 자꾸만 눈을 마주치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자 하셔서 약간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어느새 적응해 중간부터는 먼저 눈을 마주치며 노래를 불렀답니다. 앞자리의 한 할아버지도 기억에 남아요. 최고령 관람객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선 채로 즐기시면서 관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건강해 보이던지 ‘나도 늙어서까지 음악을 사랑하며 록스타를 보러 다녀야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공연 전, 하나님석임에도 신이 나 남겼던 기념 사진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한 번쯤 해볼 만한 미친 짓(positive)
좋아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낯선 땅에 상륙한 경험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공연을 기다리던 나날부터 공연 후 여운이 남은 채로 계단에서 떼창하고, 함께 기차를 타 귀가하는 순간까지 마음 속에 선명히 남았어요. 누군가는 오직 공연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쓴다는 게 이상하다 하겠죠. 그치만 음악을 좋아한다면, 마음 속에 꼭 한 번 보고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저는 한 번쯤 해볼 만 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것이 먼 나라 유명한 미술관을 관람하는 행위와 다를 게 뭐가 있나요. 평소 겪던 것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며 좋아하는 ‘내 가수’를 마주한다는 것. 살아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영국 여행이 끝나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만약 작년의 우리가 ‘이게 설마 되겠어’하는 마음으로 티케팅을 포기했더라면, 올해 7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물론 실패했더라도 어디서든 그 나름의 재미난 추억을 쌓았을 테지만 7만 명의 사람들과 전율을 느끼는 경험은 하지 못했겠죠. 인생에서 우리가 포기해선 안 되는 삶의 태도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되겠어’ 하면서도 도전하는 마음. 그 마음이 결국 기적을 만들고 생애 한 번뿐인 추억을 선물하는 것 아닐까요. 공연이 끝나고 저는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믿기지 않는 순간을 자주 목도하며 살아가겠노라고.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동했다면, 저와 함께 낭만을 꿈꾸며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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