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보다 나무숲
자연 속에서 잠시 숨 고르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보면 옛말은 역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는 1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것 같아요. 도로를 뚫기 위해 산을 깎고 아파트를 짓기 위해 나무를 밀어냅니다. 매년 여름 최고 기온은 높아지고 이상 기후는 심해지지만, 바쁜 현대인으로 살다 보면 환경 변화에 무심해지곤 하지요. 그러나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눈을 돌리면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자연을 담은 세 가지 작품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의 소중함을 느껴보려 합니다.
도심 속 나무의 기억, <콘크리트 녹색섬>

도시의 나무들은 재건축이 될 때마다 계속해서 사라져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기록이 다큐멘터리 <콘크리트 녹색섬>에 담겼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 재건축이 결정되면서 40년간 사람들 곁을 지킨 메타세쿼이아 숲이 베어지기로 결정되는데요. 이곳에 어릴 적 추억이 있던 감독은 나무의 보존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며 나무의 마지막을 기록합니다. 나무와 함께 살아온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벌목업자 등 전문가들을 찾아가기도 해요.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공공기관에 전화를 해보아도 명확한 담당 부서를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도시 개발로 사라지는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증거이지요. 한 전문가는 대답했어요.
“그대로 옮겨 심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냥 폐기해 버려요”

그저 버려질 나무가 안타까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개포동의 나무숲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개포동 그곳’ 나무 산책 프로젝트가 시작돼요. 사람들이 모여 개포동 현장을 산책하고, 기억하고 싶은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거나 그림을 그리며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나눕니다. 어릴 적 기억을 간직한 참여자가 말합니다.
“자연을 이렇게 만져본 기억이 여기가 가장 강렬해요”
도심 속 나무들은 말없이 인간에게 숨을 주고, 잠깐 멈춰서는 여유를 줍니다. 그렇지만 결국 남아있던 몇 그루의 나무들까지 베어지게 됩니다. 톱질 몇 번에 우지끈 쓰러지는 커다란 나무를 보면 긴 시간 자라온 나무의 마지막이 허무하게 느껴져요. 빌딩 숲속 유일한 자연이었던, 많은 사람의 기억이 담긴 공간이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편의를 위해 중요한 가치를 외면해 온 것은 아닐지 마음 한 구석이 무겁습니다.
드넓은 바다의 경이, <고래와 나>

SBS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는 고래의 세계를 생생하게 담은 작품입니다. 4부로 이루어진 이 다큐멘터리에는 신기한 고래의 생태계부터 고래를 죽음으로 내몬 지구의 변화까지 담겨있어요. 제작 기간이 무려 7년에 달하는 만큼 다양한 지역 풍경이 나옵니다. 처음부터 경이롭게 다가왔던 1부는 모리셔스에 사는 향고래에 관한 내용인데요. 40년간 수중생물을 촬영한 르네 휘제 수중촬영 감독은 가장 큰 전율을 느꼈던 순간이 향고래를 처음 본 순간이라고 회상합니다.
“그 커다란 동물이 점점 다가오는데 너무 커서 잠수함인 줄 알았어요.”

<고래와 나>는 향고래 외에도 혹등고래, 벨루가, 범고래 등 다양한 고래들을 쫓으며 그들의 습성과 생활 방식을 보여줍니다. 새끼 고래의 젖 먹는 모습이나 고래들의 집단 합창을 보면 거대한 고래 공동체에 압도되는 기분이 느껴져요. 그러나 드넓은 바다는 압도감만 주지 않습니다. 고래의 웅장한 삶을 따라 호흡하면 평온함도 따라와요. 자연의 경이 속에서 겸손함을 배우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작은 스마트폰 세상에서 짧은 영상으로 도파민을 쫓기 바쁜 요즘, 자연 경관에서 느끼는 거대한 감정을 기억할 때가 아닐까요?
자연에서 회복하는 인간, <리틀 포레스트>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리틀 포레스트>는 한국의 사계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음식을 통한 마음 치유를 담고 있어, 농촌 생태와 음식에 집중한 일본 버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도시에서의 삶에 지친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와 농작물을 심고 가꾸며 수확의 기쁨을 누립니다. 봄에는 냉이된장국을, 여름엔 오이냉국, 가을엔 단감을, 겨울에는 어묵탕을 해 먹으며 다친 마음을 회복해요. 도시에서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팠다는 혜원은 제철 음식을 해 먹고 친구들과 떠들며 점차 웃음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죠.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주인공 혜원이 잊고 있던 삶의 여유와 행복을 되찾은 이유는 간단해 보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느낄 수 있었던 게 많았기 때문이죠. 도시에서는 알기 어려웠던 계절의 변화, 손끝에 흙이 닿는 촉감, 제철 음식을 음미하는 즐거움. 혜원은 바뀌어 가는 햇볕과 공기를 체감하고 소박한 삶을 만들며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일상이 지칠 때 산과 바다를 찾고는 하지요. 그게 아니라면 근처 공원을 걸으며 초록을 보기도 합니다. 자연 속에서만 가능한 감각이 삶에게 주는 색채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모릅니다.
새로운 기술과 화려한 건물의 등장에 환호하다 보면 고요한 자연은 쉽게 외면받곤 합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세 가지 작품에 나온 메타세쿼이아 숲, 시골의 사계절, 바다 위 고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은 자연과 만났을 때 삶의 깊이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바쁜 도시 생활에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면, 그래서 여유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각을 떠올려 봅시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모양, 파도치는 소리, 그리고 흙과 발이 닿는 감각을요. 하나하나 감각을 생생하게 떠올리면 온몸에 퍼지는 안정이 느껴집니다. 자연을 보고 듣고 만질 때 비로소 잊고 있던 내 삶의 균형이 찾아지는 것만 같아요. 어쩌면 자연은 우리 몸과 마음, 나아가 삶 자체를 풍요롭게 만드는 근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