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고통을 소비하는 사회

SNS 속 재난은 왜 콘텐츠가 되었을까

남의 고통을 소비하는 사회
이미지 출처: Unsplash

우리는 그 어떤 시대보다 타인의 고통을 자주, 쉽게 접합니다. 예전에는 뉴스 매체를 통해 접했다면, 이제는 SNS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한 재난의 현장, 고통의 순간을 접하게 되죠. 필자 또한 4년 전 친구와의 만남 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본 영상들을 잊지 못합니다. 핼러윈을 맞아 칵테일과 음악을 즐긴 그날, 가까운 이태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좁은 골목길에 몰렸고, 최소한의 안전을 지켜줄 방어막이 없어 압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SNS를 열자마자 모자이크도 없이 희생자의 신체와 현장이 생생하게 보이는 영상이 펼쳐졌고, 눈으로 보면서도 어떤 장면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참사에 대한 충격과 동시에 이러한 재난의 현장을 촬영하고, 공유하고, 바라봐도 되는지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안타까운 사건은 거듭되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SNS 속 고통이 담긴 장면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타인의 고통을 보고 잠시 동정을 느낀 뒤 잊고 마는 스스로에게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사실 누구와도 깊게 연결되지 않은 시대를 살펴봅니다.

고통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사회

미국-이란 전쟁, 이미지 출처: BBC NEWS 코리아

지난 2월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되면서, 뉴스 매체와 SNS에는 전쟁 속보가 이어졌습니다. 주요 정부 관료들을 살해하고, 어린 학생들이 있는 초등학교를 폭격하고, 전쟁이 인근 국가로 퍼져 나가며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두바이의 고급 호텔이 드론 파편을 맞아 불이 나기도 했습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대치 상황과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계속 말이 바뀌는 가운데, 전쟁이 언제 끝나는 것인지 전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 백악관 제작 전쟁 영상, 동영상 출처: SBS 뉴스 유튜브 채널

이처럼 심각한 전쟁 현장은 다양한 SNS 상에서 자극적인 영상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전쟁 상황을 알리려는 목적을 넘어 공격하고, 폭파하고, 훼손하는 이미지에 집중한 미디어를 쉽게 접하게 됩니다. 충격적인 건, 개인뿐만 아니라 정부와 정치인 또한 전쟁을 콘텐츠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미국 백악관은 전쟁을 닌텐도 스포츠 게임으로 표현해 볼링공이나 골프공을 던지면 스트라이크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란의 주요 시설이 폭파되는 장면을 합성했습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스폰지밥 같은 유명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합성한 영상을 10건 이상 배포하며 미국의 전쟁 성과를 밈으로 만들고자 시도했습니다. 정부 기관은 전쟁을 자극적인 콘텐츠처럼 소비하고, 미디어 속엔 폭력적인 이미지가 끝없이 범람합니다. 원하지 않아도, SNS에 접속하기만 하면 이러한 전쟁 이미지를 맞닥뜨리게 되고, 그 가운데 전쟁이 주는 충격과 공포는 점점 흐려져 갑니다.

수전 손택, 이미지 출처: 월북

이러한 상황은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고 말한 수전 손택을 떠올리게 합니다. 수전 손택은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예술 평론가로, 대표적인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뉴스, 사진, 다큐멘터리 등 매체가 표현하는 전쟁과 재난의 모습에 집중합니다. 매체가 다루는 충격적인 이미지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보다 즉각적인 분노와 공포, 감정적인 반응을 유도하며 사건을 왜곡합니다. 맥락과 편집에 따라 사진과 영상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미국 백악관에서 전쟁 이미지와 게임을 합성한 영상 또한 전쟁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전쟁 성과를 홍보하겠다는 의도로 사진과 영상을 배치하고, 합성하며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이렇듯 타인의 고통을 콘텐츠로 각색하고 반복해 생산하면서 바라보는 이의 점차 감정을 무뎌지게 합니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백악관의 홍보 영상을 본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를 느끼고, 당장 종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백악관의 의도대로 전쟁을 잘 해왔고, 더 강하게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상은 단순히 전쟁의 현황을 담는 기록물이 아닌, 극단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프로파간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통은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수렴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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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보는 타인의 고통

이미지 출처: Pixabay

타인의 고통을 잠깐의 콘텐츠로 소비하는 건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일어납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재난 현장들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는 뜻을 지닌 ‘참사’라는 말을 붙일 일이 참 많았습니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무안 공항 참사, 대형 교통사고와 화재, 살인 사건까지 가슴 아픈 일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 그 자체뿐만 아니라, 사고를 다룬 이미지와 영상이 우리를 괴롭게 했습니다. 사고 현장과 유족들을 무분별하게 촬영한 영상, 책임을 미루며 서로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는 정치인, 희생자의 잘잘못을 따지며 서사를 소비하는 수많은 콘텐츠가 SNS를 뒤덮습니다.

 

김인정, 이미지 출처: 브릭스 매거진 ⓒ무궁화소녀

저널리스트 김인정은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SNS 시대에 한국 사회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전시하고 소비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기존에 TV와 신문을 통해 접하던 뉴스는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 나가고, 기자를 넘어 모든 사람이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인정은 언론사가 독점적으로 뉴스를 보도할 때 감내하던 윤리적 책임감이 SNS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산되었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생생한 고통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고,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더없이 취약한 상태로 의식을 잃은 희생자들의 모습을 건강히 서있는 사람이 내려다보며 촬영한 영상은, 그 상태의 격차 때문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불쾌감을 느끼게 한 측면이 있다. ‘나의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리에서 궁금해하며, 신기해하며, 때론 불쌍해하며 구경하는 일은 끔찍하다.”_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온라인 플랫폼이 사용자를 오랜 시간 머물도록 설계한 구조는 이러한 무기력감을 강화합니다. 사용자가 플랫폼에 중독되도록 스크롤을 내리기만 하면 짧고 빠른 콘텐츠가 이어지게 만들고, 감정을 전환시킵니다. 충격적인 뉴스는 몇 초 만에 귀여운 아기 영상으로, 놓치면 안 될 세일 정보로 계속해서 전환됩니다. 불과 조금 전 보았던 뉴스가 주는 공포와 분노는 금세 잊어버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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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단절된 시대

이미지 출처: Unsplash

타인의 삶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건, 타인과의 관계가 변화한 흐름과도 연결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타인과 직접 대면으로 만나거나, 친분을 통해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이 발달한 이후엔 먼 거리에 살아서 만날 수 없거나, 서로 공통점이 없는 경우에도 쉽게 이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SNS에 접속하기만 하면 피드로 넘어오는 다른 이의 콘텐츠와 이야기에 말을 얹을 수 있습니다. 좋아요와 구독, 스크랩, 공유 기능으로 쉽게 공감을 표시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전파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좋아요’는 정말 깊은 공감을 담고 있을까요? 인간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기 위해, 연대한다는 의미로 좋아요와 구독을 누를 때면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타인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쉽지만, 좋아요의 물결 속에 진짜 내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의심이 듭니다. 사회적 문제에 공감을 표할 때 도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혹은 버튼 한 번으로 간단하게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좋아요를 누른 적은 없나요?

 

이미지 출처: KBS뉴스, 게티이미지

나아가 온라인상에서 가까워진 관계는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말을 걸 수 있게 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나와 뜻이 다르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면 즉시 비난하고 혐오감을 표시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타인의 고통은 공감보다 판단의 대상이 됩니다. 타인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짧은 영상과 이미지만 보고 평가하며 옳고 그름을 단정 짓게 됩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표시했던 좋아요와 구독, 스크랩, 공유 기능도 공격의 수단이 됩니다. 나와 비슷한 입장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이쪽이 더 우세한 의견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큰 목소리는 더 큰 공격을 가하고, 사이버 폭력은 이제 너무도 익숙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쉽게 말을 얹을 수 있다는 특성은 재난과 범죄에 서사를 입히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태원 참사로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에게 유흥에 빠진 사람들이란 딱지를 붙입니다. 잔인하게 타인을 해친 살인마는 가정환경과 학창 시절 다양한 에피소드를 덧붙여 캐릭터로 재탄생합니다. 수사기관이 보도를 내기도 전에 개인 SNS를 찾고, 지인을 수소문하며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타인의 고통을 콘텐츠로 소비하고, 맥락을 덧입히고, 판단의 잣대를 드리웁니다. 다른 이의 슬픔이 흔하디흔한 유흥이 되어버린 오늘날, 우리는 정말 온라인으로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게 맞을까요? 어느 때보다 연결되었지만 공감과 이해 없이, 더욱 단절되고 고립된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과 영상은 찍혀있는 대상과 보는 이들 사이의 시차와 거리를 속이곤 한다.”_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우리는 결코 타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진과 영상은 우리 눈앞에 다른 이의 고통을 들이대지만, 그래서 더할 수 없이 생생하지만, 동시에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합니다. 가깝지만 먼 그 사이에서, 고통은 많은 순간 이해와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스크롤과 함께 떠밀려 내려가는 수많은 콘텐츠 중 하나로 지나치고 맙니다. 누구나 온라인에서 연결되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는 사실 철저하게 분리되고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나와 타인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