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통찰로 뜨거운 글을 쓴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은 왜 글을 썼을까 작가 신념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들

냉철한 통찰로 뜨거운 글을 쓴 조지 오웰

문학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조지 오웰의『1984』,『동물농장』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두 소설을 읽어봤거나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조지 오웰을 디스토피아 전문 작가 또는 정치적인 글을 쓰는 과격한 작가로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지 오웰을 『1984』와 『동물농장』으로만 기억하는 독자들을 위해, 작가 조지 오웰을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을 준비했습니다. 몇 년 전, 뭐든지 직접 체험해 본 다음 기사를 쓰는 기자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오웰은 탐사 보도의 원조 격인 작가입니다. 자신이 몸 담은 현실을 더 또렷이 직시하기 위해 현장 한복판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체험주의 작가였죠. 전쟁을 경험하려고 의용군에 자원입대해 전선에서의 생활을 기록하고, 20세기 대도시의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을 면밀히 기록하고자 부랑자 생활을 겪기도 했습니다. 현란한 표현으로 가득한 글 대신 전선의 연기와 빈민촌 악취가 풍기는 현장을 생생히 전달하는 작가였죠. 오늘은 필독서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두 소설이 있기까지 작가 조지 오웰을 만든 경험을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카탈로니아 찬가』

1936년, 영국인 조지 오웰은 스페인에서 벌어진 내전에 자원해 참전합니다.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 그는 정치적 상황에 관심도 없었고 어떤 종류의 전쟁인지도 몰랐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왜 영국인이 스페인 내전에 자원해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요? 작품 줄거리와 작가의 신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배경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카탈로니아 찬가> 초판본 표지. 이미지 출처: Secker and Warburg

당시 스페인은 정치적으로 무척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사회 구조 체제가 시도 때도 없이 뒤바뀌곤 했죠. 군주제에서 노동자 민주 공화국으로 바뀌더니 1936년에는 군부가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켜 정부, 그리고 노동 계급과 대립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활발한 시기였기에 반란군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스페인 정부는 소련과 유럽에서 조지 오웰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의 지원을 받았죠.

이때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오웰은 실제로 총을 들고 전선에 참여합니다. 전쟁터의 민낯을 생생히 기록해 현장을 온전히 전달하려는 목적이었죠. 하지만 전선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오웰은 자신이 전쟁터에서 목격한 사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왜곡되어 전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고한 사람들이 그릇되게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무엇보다 그가 지향했던 ‘민주적 사회주의’가 권력의 이해관계에 의해 오히려 후퇴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 뼈아픈 경험은 ‘진영 논리가 진실을 삼킬 수 있다’는 사실과 ‘정치적 이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타락하는지’ 오웰에게 각인시켜 줍니다. 이는 그의 대표작 『1984』,『동물농장』집필의 동기가 되었죠.

스페인 내전에서 의용군들이 '이룬 전투'에 참여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조지 오웰의 대표작을 있게 한 작품이라는 점을 차치하고『카탈로니아 찬가』의 매력은 다른 면에서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왠지 비장한 마음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소설인데 실소가 새어 나오는 장면들이 많거든요. 비참한 전투 현장을 충실히 그려낸 장면들도 인상적이지만 총 한번 들어본 적 없는 노동 계급으로 구성된 오합지졸 군대에서 일어나는 웃픈 에피소드들이 이 책의 묘미입니다. 스페인어가 서툰 영국인 오웰과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스페인 군인들 사이의 대화, 총기 사용이 익숙지 않아 발생하는 어이없는 사고들, ‘왜 전투를 하는 건지’도 모른 채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병사들 이야기까지. 다른 전쟁에서 찾아보기 힘든 병사들의 이야기들이 이 작품을 쾌활하게 만들어줍니다.

앞서 언급한 역사적 배경 지식이 전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오웰과 비슷하게 어리둥절한 입장으로 1930년대의 스페인으로 뛰어들어 오웰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이 책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전투 현장에 대한 적실한 묘사, 그 국면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간적인 매력을 어둡지 않게 그려낸 대목들을 순순히 쫓아보시죠. 오웰의 의식이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 독자인 우리의 감정도 점차 변하는 것을 선명히 느끼게 됩니다.

『나는 왜 쓰는가』

이미지 출처: University College London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정돈합니다. 기록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이라면 “나는 왜 쓰지?”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을 겁니다. 오웰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물리적으로, 심적으로 분투하는 시절을 겪었는데요. <나는 왜 쓰는가>는 오웰이 목숨을 담보로 한 경험을 기반으로 확립한 작가로서의 결단을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심오한 제목을 달았지만, 이 에세이는 가볍게 시작합니다. 어릴 적 글 좀 썼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냅니다.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고 지역 신문에 글이 게재된다거나, 짜릿한 모험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가족들의 칭찬을 받은 글이 사실은 유명한 어느 작품을 몰래 흉내 냈다는 어릴 적 이야기죠. 하지만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어린 시절 미성숙한 충동과 우연에 이끌려 글을 쓰는 차원을 넘어,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을 반드시 정리해야 하죠.

글을 쓰는 조지 오웰. 이미지 출처: The Orwell Foundation

우리는 왜 글을 쓸까요? 오웰이 분류한 글 쓰기의 네 가지 동기를 간략하게 언급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세상에 나의 흔적을 남겨 인정받고 싶다는 순전한 이기심입니다. 작가라는 부류는 돈에는 관심이 적더라도 이 허영심은 꼭 품고 있는 부류라고 말합니다. 둘째는 아름다운 문장과 구조에 대한 미학적 열정입니다. 세 번째는 사물을 그대로 바라보고 기록하고 싶은 역사적 충동, 마지막 네 번째는 정치적 목적입니다. 여기서 네 번째 동기가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하는데요. 여기서 오웰은 단호하게 주장합니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영화 '1984'의 한 장면.

오웰이 말하는 정치적 글쓰기는 특정 집단의 선전 도구로서의 기록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기록’입니다. 오웰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에서 인도 제국경찰로 일했던 시절과 스페인 내전 참전 시절에 지독한 빈곤과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당대 지식인이었던 오웰이 제국주의의 본질, 권력 내부의 타락, 언론의 조작, 이상주의의 붕괴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 시절이었죠. 권위에 대한 반감이 커진 오웰은 거짓과 왜곡을 드러내며 진실을 외치는 문학 작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조지 오웰을 말할 때 떠올리는 작가적 특성이 결정됩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고발’, ‘풍자’와 같은 단어들이죠. 그는 왜곡된 현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었고, 그만큼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연히 시원시원하고 단순한 문장이 문체적 특징이 되었고, 글의 방향성도 뚜렷해졌습니다. 정치적 목적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글쓰기 동기였기에, 그의 소설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동물농장』이 대표적인 예죠.

이미지 출처: BBC

오웰의 결단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작가가 직접적으로 밝힌 대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_ <나는 왜 쓰는가> 중

자신이 글을 쓰는 동기가 오로지 공공의식에만 치중된 것은 아니라는 오웰의 바람이 넌지시 녹아있다는 점이 인상적인 구절입니다.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에 치중했다는 작가의 신념을 토대로 그의 대표작들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요? 필독서 도장 깨기의 일환이었던 조지 오웰의 작품이 더욱 생동감 있게 읽힐 것입니다.

조지 오웰의 또 다른 매력을 알고 싶다면

앞서 소개한 두 작품은 조지 오웰의 작가 정체성이 빚어진 배경을 선명히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오웰은 이러한 글쓰기 신념을 토대로 많은 에세이와 비평을 남겼습니다. 작가의 장점을 느낄 수 있는 짤막한 기록들인데요. 당대 문학 작품들과 동료들에 대한 위선 없는 비평, 영국인으로서 조국 영국의 민족성과 문화를 비판하는 글, 억압과 통제를 본능적으로 혐오하는 메모 등이 돋보입니다. 휴가를 위해 방문한 도시에서도 풍경 너머에 있는 민족주의를 짐작하는 글을 쓰기도 하는 지성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죠. 그러면서도 닭이나 채소, 꽃을 공들여 키우는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빛나는 사유를 엿볼 수 있어 가치 있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체와 논리적인 구조를 배울 수 있는 교본으로서도 매력적입니다.

여러 에세이 중에서도 오웰의 다양한 면모를 경험할 수 있는 짤막한 작품들을 추려 소개합니다.

체험, 런던 삶의 현장

20세기 초 런던 모습. 이미지 출처: Rare Finds via Fine Books & Collections

<스파이크>는 오웰의 초기 작품으로, 런던의 밑바닥에서 노숙자 신세로 지낸 경험을 기록한 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밤을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구빈원을 속어로 ‘스파이크’라고 말하는데요. 오웰은 영국의 빈곤 문제를 겪어보기 위해 노숙자 생활을 자청했습니다. 형편없는 음식, 짓밟히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고발이 주된 내용이지만 구빈원에서 만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의 교류가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오웰이 처음 시도한 현실 고발 작품입니다.

<서점의 추억>은 헌책방에서 일한 오웰의 경험이 녹아있습니다. 서점을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한 묘사가 재밌습니다. 손님들의 취향을 기반으로 문학 비평을 슬쩍 펼치기도 하고, 재고 운영이나 진상 고객에 관한 생각을 보여주기도 하죠. 작가인데도 ‘나는 서점 일을 하기 싫다’라고 말하는데요. 서점 일을 하는 동안 책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잃었다는 말에서는 ‘역시 세상에 덕업일치란 없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속의 달>은 조지 오웰이 가장 좋아한 펍, “물속의 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펍을 방문하는 손님과 가게 메뉴, 가격, 공간 배치까지 애정을 담아 상세히 묘사하기 때문에 그 펍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요. 놀랍게도 “물속의 달”은 가상의 펍이라는 사실! 오웰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 이상적인 펍에 근접하는 펍을 알려달라고 게재하는데요. 이 글에 영향을 받아 런던에는 “물속의 달”이라는 이름의 펍이 다수 생겼다고 합니다.

현실 비판

미군이 투하한 두 번째 원자폭탄. 이미지 출처: AP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은 어느 독자가 오웰에게 ‘당신은 반과학적이다’라고 비난한 데에 대해 견해를 밝히기 위해 쓴 글입니다. 오웰은 과학이 지식 또는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고방식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은 진실을 통제하고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과학을 악용하기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과학교육이 필요한지까지 제안하죠. 사실의 축적이 아닌 ‘합리적이고 회의적이며 실험적인 사고 습성을 심어주는’ 과학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요. 오웰이 견제하는 권력 체제와 그에 대한 시대의 대응을 면밀히 살피는 지식인의 면모가 돋보입니다.

<당신과 원자탄>은 일본 원폭 투하 이후 인류 미래를 진단하기 위해 쓰인 글입니다. 원자 폭탄이라는 무기가 전쟁 억제 수단이 아닌 ‘권력 집중 수단’이 될 것이라는 오웰의 정치 사회적 전망이 드러납니다. 기술의 발전이 자동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데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민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영국, 나의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쓴 문화, 정치 에세이입니다. 제목만 보면 조국인 영국을 찬양하는 내용일 것 같지만, 사실 영국 민중에 대한 경고문에 가깝습니다. 영국인의 정체성, 민족성, 계급, 정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저항 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하죠.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민중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주장을 펼치고 있어, 조국에 대한 오웰의 비판적 애정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곳곳에 녹아 있는 은근한 풍자와 직설적인 언어가 매력적인 에세이입니다.


글쓰기를 양심의 실천으로 삼은 작가의 글은 사회를 비판하는 칼럼 혹은 고발문 같습니다. 그래서 조지 오웰을 문학 소설 작가로 선뜻 떠올리지 못할 때도 있더군요. 비참한 현장을 묘사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다 보니 작가보다는 기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한 작품을 읽으며 작가의 동기를 알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생겼습니다. 왠지 차가워 보이는 글 뒤에는 어떤 주제든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열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좌절과 분노를 겪으면서도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을 수 있었던 동력도 짐작하게 되었죠. 오웰은 이상하게도, 비참하고 역겨운 현장을 경험하며 인간의 품위에 대한 믿음이 도리어 강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부조리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인간성과 윤리, 양심과 선에 대한 인정인 것이죠.

오웰의 작품을 계속해서 읽게 되는 이유는 그의 글이 냉소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만큼이나 독자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강한 의지를 지닐 수 있도록 돕습니다. 현실을 명료하게 직시하고 방향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도록 돕죠. 그러니 조지 오웰의 소설을 읽고 비참한 현실을 인지한 후, ‘좌절’로 감상을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바란 건 시대의 진실을 알고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는, 주체적 인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