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열정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

누군가의 열정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
© 판씨네마

한국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 했던가. 많은 화가를 알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도 고흐의 책을 여러 권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테오1와 주고받은 짧은 편지들을 엮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그가 보여준 회화에 대한 고뇌와 강한 열망이 지독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책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러빙 빈센트』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으로 개봉 전부터 호평일색이었던 러빙 빈센트는 사람들의 초관심 대상이었다. 고흐의 열정만큼이나 대단한 100여명의 화가들이 모여 10년을 걸쳐 작업을 완성해냈다고 한다. 고흐의 팬이라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작품이다. 고흐의 화풍으로 재현된 장면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눈을 깜빡일 시간조차 아쉽게 느껴지는데,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별이 빛나는 밤2이 나올 때면 눈싸움을 하듯 눈을 감지 않고 그 순간을 즐기기만 하고 싶다. 우리는 그가 바라본 세상을 간접체험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광기와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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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집배원 조셉 룰랭3의 아들 아르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그러나 아르망은 고흐를 스스로 귀를 자르는 미치광이로, 또는 삶을 포기한 나약한 자라고 치부하며 일을 건성으로 대한다.

"삶은 강인한 사람도 무너뜨리곤 하지."

하지만 조셉은 아들을 다그친다. 이 한 문장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필자는 이 대사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편이다. 이 말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처한 조건과 환경은 모두 다르다. 같은 상황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버틸 만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타인을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 그 사람의 조건과 환경을 온전히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다 알 수 없다. 그래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모른 채 단면만 보고 재단하는 일이다. 아르망이 고흐를 미치광이라 단정지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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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은 고흐의 뒤를 밟으며 그의 주변인들을 만난다. 그가 그린 그림들, 그가 남긴 흔적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정을 이어가며 아르망은 점점 고흐의 열정에 감화되기 시작한다. 미치광이라고 비웃던 그 남자가 사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결국 고흐의 죽음을 뒤쫓는 이야기에서 그를 향한 경외심으로 분위기가 바뀌어 간다. 동생 테오를 제외하고는 실패한 가족관계, 화가로서 별볼일 없는 커리어. 고흐는 어떻게 그런 열망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열망은 하나의 불꽃으로서 주변을 밝혔을 것이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동생 테오가 지병을 앓다 죽거나, 주변 모두가 그에게 감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보통의 사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반성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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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현실과 꿈 사이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 간절함으로 모든 걸 올인한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필자는 꿈을 꾸다가도 현실의 벽을 마주치면 다시 현실로 도망쳤고, 현실에 익숙해질 때면 또다시 꿈을 꾸었다. 어쩌면 그래서 남들보다 내가 고흐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꿈을 좇는다며 회사를 관두던 시기가 떠올랐다. 1년을 근근이 벌어둔 돈으로 버티다 상황이 안 좋다 보니 매번 우울한 생각에 빠져버렸고, 그렇게 열정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 결국 필자는 생활고로 다시 취업으로 도피했다. 배부른 지금 상황에 와보니 아쉬운 마음만 태산이다. 그때 조금만 더 버텼으면, 조금만 더 열정적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뭐, 인생은 원래 후회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아쉬운 마음뿐이다. 고흐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열정을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매번 반성하는 태도와 함께 교훈을 엿볼 수 있다.

열정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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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도 좋지만, 스토리가 그를 더욱 멋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고흐처럼 다른 일은 제쳐둔 채 한 일에 몰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의 인기는 이것저것 재고 어떤 게 더 나을지 저울질하는 모습보다, 오직 하나만을 위해 인생을 바친 그처럼 되고 싶어 열망하는 우리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러빙 빈센트』는 고흐에 관한 영화이지만, 동시에 아르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열정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 그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결국 감화되는 과정. 빌런이었던 베지터4가 결국 손오공을 인정하고 응원자로 돌아서는 것처럼, 아르망도 그렇게 변해간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아르망과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30대, 40대가 되어 꿈보다 현실을 먼저 보게 된 우리가, 막 사회에 발을 디딘 누군가의 패기를 보며 괜스레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누군가의 열정을 뒤늦게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의 방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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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오 반 고흐: 네덜란드의 미술상이자 빈센트 반 고흐의 남동생이다. 빈센트의 예술적 야망을 헌신적으로 지원하여, 회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원조하였다.

2) 빈센트 반 고흐의 유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 중 하나로 간주된다.

3) 조제프 룰랭: 빈센트 반 고흐가 아를에서 머물 당시 그의 든든한 친구였다. 빈센트의 여러 그림에 모델이 되어줬다.

4) 일본 만화 <드래곤볼>의 등장인물. 주인공의 라이벌이었지만, 손오공을 넘버 원이라고 인정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