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복제해 삶을 포착하는 현대예술가 3인
모방으로 길어올린 삶의 진실
우리는 자주 모방을 가짜로 치부합니다. 플라톤이 예술을 이데아의 사본을 다시 복제한 그림자라 정의한 이래로 모방이라는 단어는 원본보다 부족한 것이라는 인식이 따라붙었습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예술에 있어서 모방(Mimesis)이란 단순히 겉모습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건들 속에 펼쳐져 있는 보편적 질서를 찾아내는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입니다.
이러한 고전적 논의는 오늘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현대적 명제와 더불어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의 실제 삶을 구성하는 시간들을 다시 들여다 보았을 때 우리는 가려져있던 삶의 진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삶, 그리고 일상 속 흐르는 시간들을 예술의 층위로 옮겨와 삶의 진실을 길어올린 세 예술가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트레이시 에민, <My Bed>

흰 벽의 넓은 방에 침대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방금이라도 누군가 누워 한참을 뒤척이다 일어난 것처럼 흐트러진 이불 위에는 벗어던진 스타킹과 속옷이 널부러져 있고, 침대 맡에는 담배와 빈 보드카 병과 같은 쓰레기들이 굴러다닙니다. 침대의 주인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90년대 영국 젊은 예술가들을 일컫는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데미안 허스트와 같이 찰스 사치의 후원을 받았고, 설치, 사진, 영상, 그림, 조각 등 다양하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죠.
에민은 며칠 동안 과음과 과도한 흡연을 하며 침대에서만 생활하다 물을 찾아 향한 부엌에서 자신의 더러운 침대를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다 알아버리겠지.” 끔찍하다는 생각도 잠시, 에민은 곧 침대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침대가 살아있는 자신의 생생한 지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오래 신어 낡아버린 슬리퍼와 무엇인지 모를 얼룩이 묻은 천, 아무렇게나 버려진 콘돔 등이 제멋대로 놓여있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단지 누군가의 침대를 보고 있을 뿐인데 침대 맡의 쓰레기와 오래된 강아지 인형, 구겨진 침대보에 침잠한 시간들이 그대로 묻어나 묘한 공감을 하게 돼죠.
자신의 침대를 그대로 미술관으로 옮겨온 그는 숨기고 싶은 내밀한 사생활을 아무런 필터도 없이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힘겨웠을 것으로 짐작되는 시간을 공적인 공간에 고스란히 옮겨놓음으로써, 사적인 고통을 사회적 담론의 장으로 끌어낸 것이죠. 그의 모방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숨기고 싶은 상처 입은 시간과 꼭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두고 불순하고 문란하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My bed>는 트레이시 에민의 아이콘, 나아가서 영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마침 올해 2월, 테이트 모던에서 트레이시 에민의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나볼 기대를 해봐도 좋겠습니다.

아니 에르노, 『사진의 용도』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는 기억을 다룰 때 마치 해부학자가 수술실 위에서 메스를 사용하듯 냉철하고 엄격한 태도를 취하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플랫 라이팅(Flat writing)이라는 자신의 삶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묘사하는 글쓰기 스타일을 창안했죠. 자전적인 이야기를 썼음에도 마치 본인과 상관없는 타인의 삶을 소설로 쓴 것처럼 열망과 후회 같은 감정에 천착한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습니다.
삶을 복제하는 그의 시도는 연인 마크 마리와 함께 쓴 『사진의 용도』에서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에 이릅니다. 둘은 사랑을 나눈 뒤 거실과 복도에 널부러진 속옷과 신발을 촬영하고, 사진에 담긴 가구나 인테리어, 사물의 배치를 문장으로 옮깁니다. 옷감의 재질, 반사되는 빛, 신발이 쓰러진 방향, 그리고 당시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을 상세하게 묘사하죠.

에르노에게 사진과 글은 속절없이 흐르는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려는 몸짓입니다. 유방암으로 인해 가슴절제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의사의 말보다 연인이 헤어진 전 애인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더 상처였다고 말하는 에르노의 담담한 기록은 연인에 대한 사랑과 질투의 감정, 당시 겪고 있던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을 한 올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보존하죠.
암에 걸린 자신의 상태와 감정을 건조하게 말하는 날카로운 문장들은 오히려 마음을 더 시리게 하고, 투병 중에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맞는 문학의 형식을 찾는 그녀의 투지에 반성하게 되기도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장식적이고 화려한 미사여구와 거리를 둔 꾸밈없는 이야기가 독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가장 가까운 자리를 내어주는 것 같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해피 아워>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해피 아워>는 무려 5시간 17분(317분)이라는 압도적인 러닝타임을 자랑합니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 두 편은 합쳐놓은 긴 시간 동안, 영화는 고베에 사는 네 명의 친구들이 겪는 일상의 균열과 변화를 진득하게 담아냅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생의 한 조각을 만나게 되죠.
하마구치 류스케는 삶의 진실이 현실보다 더 매끄럽게 편집된 장면 속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히 대하는 긴 시간의 지속 안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연기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들을 섭외했죠. 배우들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실제로 존재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촬영 전 수개월 동안 배우들이 참여한 ‘즉흥연기 워크숍’은 이 영화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상대의 호흡을 느끼고, 몸의 중심을 맞추고,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통해 배우들은 가짜 감정을 연기하는 대신 실제의 관계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영화 속에서 약 40분간 이어지는 워크숍 장면은 이 영화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모두 잘려 나갔을 장면을 카메라는 끝까지 인내하며 담아냅니다. 긴 호흡의 촬영 방식은 인물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 목소리의 떨림, 그리고 침묵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까지도 복제하죠.
5시간이 넘는 관람을 마친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빠져나오며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보고 있었던 것은 영화 속 캐릭터들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도 매분 매초 흐르고 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진실의 파편들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때로는 지루할 정도로 길게 우리 삶의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복제해 온 작업 방식은 삶을 더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가공하거나 편집하지 않습니다. 트레이시 에민의 흐트러진 침대와 아니 에르노의 서늘한 문장,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의 긴 호흡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미덕이죠.
이들의 작업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 사랑, 그리고 존재의 본질을 예술이라는 도구로 길어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숨겨두고 싶거나 잊고 있던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작품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삶을 더 투명하고 깊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가장 개인적인 시간이 예술의 형식을 빌려 가장 보편적인 진실이 되는 순간, 우리의 평범한 하루도 진실을 품은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