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랑에 끌리는 사람들에게
성숙하지 못한 시대의 사랑을 보여주는 뮤직비디오

사랑은 언제나 익숙하면서 어려운 주제입니다. 예능과 드라마 같은 콘텐츠부터 SNS까지 수많은 사랑이 범람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너무 빠르고 뜨겁고 불안정한 사랑들을 보며 비난하기도, 공감하기도 하죠. 연애 상대에게 과한 집착을 보이거나 갈등을 회피하거나, 애정 결핍을 보이는 모습은 이제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상적인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상대와 나는 독립된 존재임을 이해하고 건강한 거리가 중요하다고 느껴집니다. 각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응원하는 관계를 꿈꾸죠. 알면서도 왜 이렇게 사랑은 어려운 걸까요? 뮤직비디오를 볼 때면 우리 사랑의 모습은 어떻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음악 위에 시각 언어와 서사를 더해 은유적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매체인 덕이죠. 성숙한 사랑을 꿈꾼다면, 우리의 사랑을 되돌아보게 하는 뮤직비디오들을 만나보세요.
성숙하지 못한 사랑의 이유

우리는 성숙하지 못한 사랑을 자주 목격합니다. 미디어 속에서, 혹은 친구나 가족에게서 보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에게 미성숙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연애 상대를 과하게 의심하고 집착하거나, 자신과 분리하지 못한 사람을 비난하면서도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완전한 사랑의 배경엔 불완전한 시대가 있습니다. 입시부터 취업, 결혼과 재산 등 점점 더 촘촘하게 사회적 성공의 기준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기준에 공감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마치 성적처럼 등급이 매겨진 채 살아갑니다. 잠을 줄여 공부를 하고, 일을 해도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공한 사람’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로 인한 경제적, 정서적 불안은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연인과의 관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직업과 경제활동, 복잡한 인간관계 고민과 SNS 비교문화에서 오는 안정에 대한 욕망이 한 사람에 대한 집착과 의존으로 이어집니다. 심리적 결핍이 상대에 대한 집착 수준의 의존, 분리 불안, 통제 욕구로 이어지는 것이죠.
죽을 때까지 따라가는 사랑
정국 <Seven (feat. Latto)>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HYBE LABELS
불안한 시대에 흔히 보이는 미성숙한 사랑은 집착입니다. 정국의 <Seven (feat. Latto)> 뮤직비디오에서 연인에 대한 광기 어린 사랑과 집착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영상은 음악의 제목과 가사처럼 정국이 연인과 보낸 일주일을 표현합니다. 월요일 저녁 두 사람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만나지만, 서로 언성을 높이며 큰 싸움으로 이어집니다. 다툼은 두 사람의 감정을 넘어 공간을 변화시킵니다. 고급스러운 식탁 위로 천장의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식기류가 산산조각 나고 말죠.
이어지는 날들 내내 정국은 연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위험을 무릅쓰고 쫓아갑니다. 열차 안에 타있는 연인을 보고자 위험하게 열차 밖에 매달리거나, 전기가 나가고 물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세탁소에도 따라붙어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심지어 위험한 스토킹 끝에 사망해 장례를 치르게 된 정국을 위해 연인이 조문을 오자, 갑자기 관에서 깨어나 경악하게 하죠. 아슬아슬한 사거리를 뛰어가거나, 폭풍우에 휘말리는 등 극적인 연출은 정국의 집착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결국 연인은 먼저 손을 내밀고 정국이 마주 잡고 걸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정국의 끈질긴 구애와 집착 끝에 드디어 사랑이 다시 이뤄진 것 같았죠. 그러나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영상 내내 한 번도 차분하게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싸우거나, 상대가 질릴 때까지 따라가는 행동만 보였습니다. 미성숙한 사랑은 누군가의 희생과 인내로 잠시 나아질 수 있지만, 오래 유지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손에 쥐고 터트리고 싶은 사랑
비비 <데레>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비비 공식 유튜브 채널
비비의 <데레> 뮤직비디오에는 같은 반 친구를 좋아하는 비비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줄거리를 들으면 학창 시절 첫사랑이 떠오릅니다. 어설프고 풋풋한 모습이 기대되지만, 영상을 재생하는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와 만나게 됩니다.
비비가 친구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순간, 운동을 다녀와 땀이 가득한 친구의 땀방울이 비비의 도시락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비비는 친구의 땀이 떨어진 반찬을 집어먹고는 황홀해하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핥고 싶지 잡아뜯고 싶지 손에 쥐어터트리고 싶지 절대 날 벗어나지 못하게’라는 섬뜩한 가사처럼 기이한 짝사랑은 계속됩니다. 친구가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어 당황한 순간 미리 따라왔던 비비가 건네기도 하고, 소방관을 꿈꾸는 친구가 훈련을 받자 그곳까지 따라가 모든 순간을 함께하려 합니다.
광기 어린 사랑은 학교에 불이 나며 절정에 이릅니다. 한밤중 온 학교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 비비가 뛰어들어 쓰러져있던 친구를 구해 나옵니다. 그런데 비비가 친구를 안아든 모습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를 떠올리게 합니다.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아들인 예수를 안아든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숭고한 기운이 느껴지죠. 좋아하는 친구를 구해주면서 그리스도를 연상하게 하는 방식은 기묘한 인상을 자아냅니다.
이어 영상의 참여자 이름이 나오고 끝을 맺는 순간, 어둠 속에서 비비가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비비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라이터의 불을 켜고 있습니다. 친구를 구해 마음을 얻기 위해 학교에 방화까지 저지른 것이었죠. 사랑을 너무 많이 갈구하면 광기와 다름없음을 보여줍니다.
서로의 눈이 되어주는 사랑
아이유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아이유 공식 유튜브 채널
상대를 과도하게 구속하거나, 욕망하는 사랑은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유의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 속에서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폐허가 된 듯 차갑고 어지러운 도시 속, 아이유와 연인이 등장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모난 육면체가 쫓아오고, 두 사람은 이를 피해 폐허에 들어섭니다. 이어진 장면에서 아이유는 말을 하지 못하고, 연인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숨죽여 기다리던 둘은 우연히 카메라 한 대를 발견합니다. 카메라를 눈에 대고 상대를 보는 순간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카메라 속에서 야윈 빰과 상처는 모두 사라지고 깨끗하고 생기 가득한 상대가 보입니다. 연인의 두 눈도 카메라 속에선 건강하게 빛을 내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는 장난을 치면 카메라 속엔 맛있는 음식을 한껏 문 연인이 보이기도 하죠.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감싸안으며, 카메라로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육면체가 다시 그들을 찾아오고, 더 이상 피할 수 없이 가까워진 순간 아이유는 연인의 아픈 눈을 가려줍니다. 카메라 속에서 그들은 발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리고 다른 세계로 떠난 둘을 상상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상대의 아픈 부분까지 보듬어준 마음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삶이 어렵고 고단한 시대에 사랑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사회 구조적인 이유로 저마다의 아픔이 있는 지금, 완벽한 연인을 꿈꾸는 건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상처와 결핍을 상대에게 투과하면 집착과 의존으로 이어지게 되죠. 하지만 사랑에 대한 시선을 달리해보면, 그 누구도 파괴하지 않고 서로를 보호해 주는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통제하고, 감시하고, 갈구하는 사랑이 아닌 서로의 부족하고 부끄러운 면을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