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만큼 의미가 깊어지는 어른들의 만화 3선
세대의 마음을 잇는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성숙

고전 소설은 읽을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책이라고들 하죠. 만화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순정 만화를 어른이 되어 다시 펼치면 지금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이 눈에 들어오곤 합니다. 반대로 어린 마음에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인물의 고단한 삶이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레 이해되기도 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독자가 삶의 경험을 쌓아가는 만큼 새로운 감흥을 더해가는 만화를 소개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는 단순한 가족사에 머물지 않고 나이 듦이라는 보편적인 경험을 곱씹게 합니다.
부모에게 하지 못한 말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면,
다니구치 지로, 『아버지』

만화 『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다니구치 지로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도쿄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주인공 요이치는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1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어머니의 부재를 아버지 탓으로 돌리며 마음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들은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얼굴의 아버지를 보여줍니다.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못했던 선량한 사람, 평생 아들에게 미안해하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였던 겁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채 가족에게서 벗어나기만을 원했던 자기 모습을 떠올리며 요이치는 그제야 눈 감은 아버지의 얼굴을 진심으로 마주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구성은 긴 시간 동안 변해가는 한 가정의 모습을 담담히 보여줍니다. 부모의 이혼, 그로 인해 소원해진 부자 관계는 누구의 탓으로 돌이기 어렵습니다.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던 마음이 앞선 것이겠지요. 다만 독자로서도 부자가 그 오랜 이별의 시간 동안 단 한 시간이라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깊은 아쉬움이 듭니다. 부모와 자식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화해의 기회는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뼈아픕니다.

세대를 잇는 유쾌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난다, 『도토리 문화센터』

이 만화는 『어쿠스틱 라이프』로 유명한 난다 작가의 신작입니다. 주인공 고두리가 회사의 비밀스러운 임무를 받아 도토리 문화센터에 잠입합니다. 문화센터의 땅을 가진 수강생을 설득해 부동산 양도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코믹함과 약간의 추리 요소를 갖춘 이 만화는 중년과 노년의 인물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1권은 사군자 수업을 듣는 ‘정중순’이라는 노인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노인이라고 부를 만한 나이가 되었지만 한 평생 엄마에게 사랑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한 아픔이 있는 인물이었죠. 의도를 가진 접근이긴 했지만 고두리가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주자 두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만화는 문화센터 용지 확보라는 흥미진진한 바깥 이야기 전개와 더불어 고두리의 입장에서 문화센터에서 만나는 평균 연령 70세인 사람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한 겹의 이야기가 더 진행됩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누구나 살면서 힘든 일을 겪고, 그것을 알아주고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죠. 일밖에 몰랐던 고두리가 사군자를 그리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세대의 차이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줍니다. 노년은 낯선 세계가 아니라 언젠가 우리가 모두 도착할 자리입니다. 지금 눈앞의 어른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이 만화를 통해 느껴보세요.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에게 듣는 삶의 지혜가 궁금하다면,
엄유진, 『펀자이씨툰』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엄마와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만화입니다. 이 작품은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에 관한 이야기가 한없이 슬프고 무거운 분위기일 것이라는 예상을 비껴갑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던 유쾌한 성격의 엄마는 기억과 시간을 앗아가는 병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울 테니 흥미진진하지 않겠냐고 말할 정도였죠.
엄마를 돌보는 딸의 시선에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순간을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딸은 안심하곤 합니다. 새로운 삶의 환경에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스트레스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딸의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터놓지 못하는 어려움이 쌓이고 있었죠. 형제들에 대한 서운함, 경제적인 부담, 멀어지는 자신만의 꿈과 삶까지.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듣고 조언해 줄 엄마가 이제는 없다는 사실이 딸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아버지, 어머니, 딸, 딸의 남편, 다른 형제들까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모습입니다. 나의 가족을 떠올리며 이 만화를 읽어보세요. 누구 하나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 없습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복잡한 관계입니다. 이 사실만 다시금 깨닫는다면 우리는 조금 덜 싸우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건 아닌 듯합니다. 미숙한 아이가 자라듯이, 우리 역시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고 함께 살아가며 조금씩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겠지요. 시간이 흘러 이 만화들을 펼친다면, 그때는 또 다른 인물의 마음이 가장 깊게 와 닿을지도 모릅니다. 살면서 조금 더 자주, 오래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지금보다 더 멋진 어른이 될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