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목욕연구소

공간을 기록하는 브랜드

매끈목욕연구소

기록의 가치에 대한 각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비단 국가나 조직의 차원뿐 아니라, 평범한 개인도 그 가치에 공감한다. 우리는 왜 기록이 중요하다 말할까? 가장 큰 이유는 ‘기억의 증발’ 때문이다.

 기억의 증발을 막기 위해 우린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을 한다. 씨앗 저장소를 만들고,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필름에 담으며, 시간마저 이미지와 텍스트로 보관한다. 하지만 공간을 기록하는 것은 여타의 것들에 비해 다소 까다롭고 제한이 많다. 아무리 좋은 렌즈로 사진을 찍는다 해도 쉽지 않다. 그저 최선의 방법과 아이디어로 기억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이 브랜드의 접근법을 참고한다면 공간과 그곳에서의 경험, 느낌은 물론 추억까지 공유하기 훨씬 용이해질 것 같다.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는 목욕탕이라는 공간을 기록하는 사람들 ‘매끈목욕연구소’다.


동네 목욕탕을 연구하는 사람들

‘매끈연구소’는 부산을 근간으로 활동 중인 독특한 랩이다. 이 브랜드가 독특해 보이는 첫 번째 이유는 다루는 소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동네 목욕탕에 대해 연구하고 기록한다.

사우나도, 찜질방도 아닌 동네 목욕탕에 관한 기록과 이야기를 공유해 가는 이곳은 2023년에 ‘매끈목욕연구소’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매끈목욕연구소는 동네 목욕탕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집 앞 목욕탕’이라는 제목의 매거진을 정기적으로 발행한다. 또한 그를 중심으로 동네 목욕탕을 한국 고유의 문화 자산으로서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렇듯 기록을 콘텐츠 제작 방식으로 하는 것은 동네 목욕탕에 관련된 경험과 감정, 그리고 추억까지 담아내어 공유하고 남기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콘텐츠로 공간을 기록하는 것으로는 2% 부족한 부분이 있다. 공간이라는 소재를 기록하는 과정의 진짜 핵심은 실제 ‘공간감’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계도를 남기고 보관하는 것과는 또 다른 ‘공간감’ 말이다.

©매끈목욕연구소 홈페이지

현재 30대 이하 젊은 세대의 상당수는 찜질방이나 사우나 등과 또 다른 한국 고유의 전통적 동네 목욕탕 문화를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생활 전반의 인프라가 현대화되며 집에서도 충분히 목욕을 할 수 있게 된 후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목욕에 대한 개념과 의미를 다르게 여기기도 한다. 이전 세대에게 목욕, 특히 동네 목욕탕은 그야말로 몸을 씻기 위해 가는 골목 단위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겐 몸을 씻는다는 목적 외에도 ‘휴식을 취하는 장소’, ‘힐링하는 곳’, ‘스트레스가 풀리는 취미 공간’ 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매끈목욕연구소는 이러한 세대 간의 간극에서 사라져 가는 한국 고유의 목욕탕 문화를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지속적인 공유를 하고자 한다.

매끈문화연구소의 시작 in 부산

사실 매끈목욕연구소는 하나의 독립된 브랜드가 아니다. 목지수 대표가 운영하는 도시 브랜딩 회사에서 시작된 하나의 프로젝트다. 본업이 지자체, 도시들을 알리고 홍보하며 정책까지 만드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의 로컬 문화까지 관심이 닿았다. 그리고 여기에 대표 개인의 오래된 관심과 호기심이 더해져 사내 프로젝트로 시작된 것이다.

 대표가 로컬 문화, 그중에서도 동네 목욕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약 20여 년 전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방문한 일이다.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동네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반갑던 차, 그 많던 동네 목욕탕 굴뚝만은 거의 다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품게 된 그가 동네 목욕탕을 콘텐츠화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다짐한 것이다.

 그는 특히 부산의 동네 목욕탕에 주목했다. 이유는, 다른 지역 및 가까운 일본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많은 숫자의 목욕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실제 영업 중인 곳이 (등록 기준) 700여 곳에서 500여 개로 줄었다고 파악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이 가장 높은 숫자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유독 부산에 많은 수가 남아있는 이유 또한 기록의 과정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 포인트가 되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의 개인 주택 목욕시설 개발 속도는 더뎠다. 도시의 주요 산업과 역사적 환경이 큰 원인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6.25 전쟁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까지 밀려와 정착했다. 그러한 이유로 부산은 가난한 국민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자연스레 부산을 욕실 있는 주택 시설의 확대 속도가 타 도시에 비해 늦은 곳으로 만들었다.

한편, 부산이 신발 산업과 같은 제조 산업이 발달한 도시인 것도 주택 목욕시설 개발 속도를 상대적으로 느리게 했다. 하루 종일 먼지가 많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 퇴근 후 목욕탕에서 씻고 난 후 귀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힌 것이다. 그러한 부산 지역의 흔한 라이프스타일은 동네 목욕탕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게 했고,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이처럼 동네 목욕탕은 지역 및 지역 구성원의 특성과, 멀게는 역사적인 특징까지 맞물려 만들어진 로컬 문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가 매끈목욕연구소의 생성과 기록 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매끈문화연구소가 동네 목욕탕을 기록하는 법

매끈목욕연구소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동네 목욕탕을 기록한다. 첫 번째 방식은 콘텐츠 형태로,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매거진이다. ‘집 앞 목욕탕’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개간하여 현재 남아있는,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리뉴얼한 공간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생각과 브랜딩을 들여다본다. 관련 정보와 주제들을 함께 다루는 것도 물론이다.

 콘텐츠로 기록할 목욕탕 선정을 위해 매끈목욕연구소는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 ‘깨끗한 물을 사용하는가’, ‘청결하게 유지하는가’, 그리고 ‘친절한가’이다. 실제로 그 기준들을 검증하기 위해 목욕탕을 미리 방문해 본다. 직접 물을 먹어보기도 하고 청결함을 둘러보며 주인의 친절도까지 체크한다. 즉 동네 목욕탕의 잡히지 않는 부분까지 기록하기에 매거진은 매우 적합한 매체이자 콘텐츠 저장소가 된다.

 때론 일제 강점기, 부산지역 목욕탕 문화에 많은 영향을 준 일본 현지로 날아가 그곳의 목욕 문화를 알아보기도 한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다시 인기가 솟고 있는 일본의 목욕탕 문화를 소개하며, 한국의 동네 목욕탕을 투영하기도 한다. 여기에, 제주와 같은 한국의 여러 지역 별 목욕탕 또한 소개한다. 그 외에도 동네 목욕탕을 주제로 한 팝업 이벤트 공간을 열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하고 즐거운 방식의 소통을 지속한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공간이라는 소재의 진짜 핵심인 ‘공간감’은 어떻게 기록되고 있을까?

매끈목욕연구소가 언제 없어질지 모를 공간을 기록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목욕탕 공간 구조를 3D스캔하여 그 데이터베이스를 남기는 것이다. 공간이 사라지더라도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언제든 다시 복원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것이다. 물론 설계 도면이 존재한다면 건물을 다시 짓는 것은 문제없지만, 공간에 사람이 오가며 생긴 미묘한 특성과 결, 변화와 흔적들까지 기록 가능함 3D스캔은 공간감과 이미지, 느낌, 기억까지 기록하는데 설계도나 3D프린터 등보다 용이하다. 여기에 매거진과 같은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간접적 기록으로 함께 존재하니, 더욱 살아있는 기록을 남길 수 있다.

매거진 ‘집 앞 목욕탕’@매끈목욕연구소
팝업 ‘몰래탕’@매끈목욕연구소, blog.naver.com/wasolab/223125907374

기록을 위한 똘똘한 레퍼런스

동네 목욕탕은 또 하나의 동네 커뮤니티 같은 역할도 한다. 주말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이웃들이 모여 함께 목욕을 하고 최소 몇십 분 동안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요일과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비슷한 시간에 방문하는 소위 ‘고인 물’들도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커뮤니티의 주역이다. 각종 정보와 에피소드가 오고 가며 쌓인다. 카페, 마을 정자, 노인정 등과 하는 행위만 다를 뿐 지역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매끈목욕연구소의 콘텐츠와 3D스캔을 통한 데이터베이스는 한국 특유의 공간,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커뮤니티 문화까지 담긴 포괄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기록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는 요즘. 매끈목욕연구소를 통해 손에 잡기 어렵거나,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는지 참고한다면 ‘기억의 증발’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