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해 현재를 보는 책 3권

삶의 빛과 그림자에 대하여

죽음을 통해 현재를 보는 책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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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속 쏟아지는 비와 뜨거운 열기에 식물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생명력이 가득한 풍경들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펼쳐지죠. 무서울 정도로 자라나는 여름의 생명을 바라보며 그 이면에 있을 죽음을 떠올립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항상 따라오기 마련이니까요.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를 하며 쑥쑥 자라나는 것, 열정을 불태우며 밤새 노는 것처럼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게 인생을 잘 사는 대표적인 방법처럼 여겨지는 요즘인데요. 오히려 열기가 식어 차갑게 느껴지는 죽음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는 것도 정 반대의 측면에서 우리를 잘 살아가게 만듭니다. 생명의 열기가 사그라질 때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길 가치, 후회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어떤 시간에 땀을 쏟아야 할지 더욱 선명해질 테니까요.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잘 사는 법을 생각하기
『명랑한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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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유언』은 방송 연출 일을 하며 소울 메이트가 된 두 방송국 PD, 구민정과 오효정 작가가 쓴 책입니다. 이들은 간절하게 바라던 꿈을 이루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결국 그 일을 빛나게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죠.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해 나가고, 그동안 쌓아온 시간을 발판 삼아 자신만의 세계를 방송으로 만들어내며 커리어의 절정을 찍던 중 효정은 갑작스레 위암 선고를 받게 됩니다. 이 책은 효정이 항암치료를 받다 삶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민정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한 교환일기 형식의 에세이에요.
당연히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초반부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점차 효정의 마지막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허무주의적이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비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소중함을 알게 된 그들은 죽는 순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뉴욕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찾아가며 시종일관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애씁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는 장례식에 무표정한 사진 말고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에 보내 놓은 몇 장의 사진으로 올려달라, 제사상엔 엄마의 꽃게탕을 꼭 올려달라는 유언을 눈이 시릴 정도로 명랑하게 전하죠. 효정은 내내 남에 대한 걱정만 하다가,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나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 게 아쉽다고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을 누구보다 의미 있게 겪어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시선의 영점 조절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명랑한 에세이입니다.

마지막으로 준아.
앞으로 힘든 날도 행복한 날도 무지 많을 거야. 마음이 여린 네가 늘 걱정됐지만 너랑 시간을 보내며 꽤 단단한 동생이라는 것도 알게 됐지. 그러니 힘든 날은 덤덤하게 지나 보내고, 행복한 날은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실컷 즐기렴! 매년 건강 검진 꼭 받고. 80퍼센트만 열심히 살아. 주말엔 꼭 여친을 만나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영화나 전시를 봐. 20퍼센트는 꼭 휴식에 쓰렴. 사실 너의 인생이 80이고, 일이 20이어야 하는데. 왓 더 헬! 세상에 그게 쉽겠니..?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명심해. 너의 삶은 너의 것일 뿐이야. _구민정 ·오효정 ,『명랑한 유언』

살아온 삶을 반영하는 죽음을 위하여
『죽은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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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하는 기록 노동자 희정의 책 『죽은 다음』입니다. 주로 노동과 관련된 이야기를 기록하던 저자는 노동 현장에서의 죽음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이렇게 죽음이 만연한데 죽음을 다루는 장례에 대한 이야기는 논의되지 않는 현실과 '있다가 없어진'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자가 살아가는 법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서, 그리고 타인의 죽음을 관음적으로 보지 않기 위해 저자는 직접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책은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직접 일하며 만난 죽음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임종 이후 이루어지는 염습, 입관 등의 장례식 절차부터 장례 업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왜곡된 서비스 노동, 여성 장례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흔하게 접할 수 없었던 장례에 대한 깊은 이야기들을 펼쳐냅니다.
더불어, 저자는 기존 장례의 틀을 부수는 사례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는데요. 허례허식 없이 소박하게 진행하는 작은 장례, 살아있는 동안 진행하는 생전 장례식, 죽음을 준비하고 유언을 적어보는 죽음 워크숍 등 획일화된 죽음과 장례가 아닌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죽음을 준비해 보려는 시도들이 인상 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지, 어떤 장례식을 치르고 싶은지 등 이전에는 어쩌면 금기시되기도 했던 생소한 질문의 시작점을 던져줍니다. 죽음은 삶의 반영이라고 하는데요. 여러분의 '장례 희망'은 무엇인가요? 어떤 죽음을 마주하고 싶으신가요?

살아갈수록 ‘나’라는 명칭이 1인칭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님을 알게 된다. 나는 나를 만들어온 토대와 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장례는 우리가 생전 만들어온 유대와 관계, 정치와 가치관을 드러내고 재생산하는 장이다. 그러니 나를 나로서 만들어온 것들을 살펴 이별할 준비를 하고 싶다. 그 준비를 완수하고 싶다.
설사 미처 다 이별하지 못하고 가더라도, 나를 대신해 이별을 완수해줄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다. 그들이 내 장례에 모여, 설사 한자리에 모이지 않더라도 "이런 사람이었지"하고 제삿밥 건네듯 나를 기억하고 이별해준다면 그것이 내가 만들고 마련한 새로운 관계이자 자리이다. 비록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어느 날 어떤 이가 내가 좋아했던 책을 책장에서 찾아 읽어준다면, 그 또한 이별이겠다. _희정,『죽은 다음』

어중간해도 괜찮아
『삶이 흐르는 대로』

이미지 출처: 다산북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받던 치료를 중단하고 인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삶이 흐르는 대로』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는 저자가 삶의 마지막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며 얻었던 깨달음과 감동을 기록한 책입니다. 외조부모가 장의사였던 환경에서 자라고 어릴 적 가까운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했던 저자는 늘 죽음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데요. 호스피스 일을 통해 점차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시작하며,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바로잡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각 챕터별로 저자가 만났던 환자와 있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죽음을 앞둔 환자가 저자에게 남긴 메세지를 기록합니다. 죽음은 살면서 단 한 번 경험하는 것이고, 주변의 죽음 또한 일상적으로 흔하게 겪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삶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을 수 있는 이 책이 더욱 귀중하게 여겨집니다.
이 책의 원제인 'The In-Between'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던지는 메세지의 키워드는 '중간'인데요. 삶과 죽음의 중간, 특별함과 평범함의 중간, 세상과 나 사이의 어중간함을 그냥 받아들이고 물 흐르듯이 살자는 메세지가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다가는 귀한 지금 이 순간을 놓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중간이 없는 완벽주의자였던 저자가 점차 흐릿하고 애매한 상태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중간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저자가 남긴 마지막 말처럼, 좀 중간이면 어때요.

“선생님을 볼 때면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해서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난 내가 마흔에 죽게 될 줄 몰랐거든요. 항상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지 못해서 아쉬워요. 그때 그 빌어먹을 케이크를 그냥 먹어버릴 걸 그랬나 봐요.”
“좋은 충고군요.” 내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케이크를 먹어라.”
“네, 꼭 케이크를 먹어요.” 엘리자베스가 침대에 도로 누우며 했던 말을 반복했다.
_해들리 블라호스,『삶이 흐르는 대로』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거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현재에 집중하고, 나답게 사는 삶을 꾸려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듭니다. 하지만 이런 번쩍임도 잠시에요. 다시 돌아온 일상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감사함을 잃고, 불만을 늘어놓으며, 삶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굴곤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죽음을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내 삶을 주기적으로 돌아보고자 하는 태도만 있다면, 엉망진창 이어 보이는 삶이라도 괜찮은 것 아닐까요? 완벽하지 못해도, 그저 중간 정도인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루의 마지막에 먹는 한 조각의 케이크, 옆 사람에게 듣는 사랑의 말 한마디 정도 일테니까요. 더운 열기로 가득한 한여름의 밤에 차분해진 마음으로 우리의 마지막을 떠올려봅시다. 마지막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이 여름을 더 멋지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