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에 관해...

"그따위 건은 니키를 보낼 수도 있어."
"음보시는 3주 전에 죽었어야 해. 가장 그럴듯한 방법은 측근에 의해 살해당하는 거였지. 대놓고 죽이라고 널 보낸 게 아니야. 쥐도 새도 모르라고 널 보낸 거야. 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널 보낸 거야."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후반부에 나오는 대사들.
"이제 마르세유에서 있었던 일을 다 말해."
그 영화를 좋아했다. 왜냐구? 도대체 난 뭘하는 거지? 여긴 또 어디야? 그런 물음 속에 있던 내가 들었던 그 대사.
"What the hell i'm doing? Where am I?"
어제 갔던 식당에 또 가고 다시 방문하듯 그 영화를 일정 기간 동안 반복해서 봤다. 내 행동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자들이 있다면 저 새끼는 도대체 뭘 하려 저러는 거지? 할지도. 나도 모른다. 단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고 이 여정의 종착지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러나 제이슨은 기억을 잃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또 자기가 살던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한다.
난 기억을 잃은 게 아니었다. 다만 그런듯 길을 헤매고, 또 내 정체성마저 의심했다. 취리히로 간다. 그곳 은행에 돈이 있는 것 같아.
엉덩이에 계좌 번호를 박고 다니던 그 정체불명의 남자. 차라리 본이라면. 여러 개의 여권을 가진 그런 공식적인 정체불명의 인간이라면. 이 사회를 살며 언제나 정체를 분명히 해야 했던 자들. 꿈을 꾼다. 차라리 내가 제이슨 본이라면.
파리로 가기로 했다. 우연스럽게도 본의 집 역시 파리에 있었기에 더 공감했던 건지 모른다. 15년 전, 유학을 핑계로 긴 여행을 떠났을 때, 그러니까 내가 파리에 가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본의 집을 찾는 것이었다. 찾았다. 영상을 돌려보고 주위의 간판, 길을 분석하는 등, 마치 정보 요원인 듯 움직여 어렵사리 찾아냈다. 그 집은 에펠탑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랬다. 본은 돈도 많았으니...

제이슨을 암살하기 위해 자객(?)이 하나 둘 찾아오고, 멋지게 하나 둘 처단하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깨닫게 된다. 예고 없이 찾아온 남자들의 방문에 자신도 가늠할 수 없는 능력으로 솜씨(??)를 선보인다. 이 과정에서 꽤 잔혹한 장면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영화는 결코 어둡지 않았다. 난 내 삶이 더 우울하다고 여겼으니까. 무엇 때문인지 본은, 그 영화는 희망스럽게만 다가온. 그래, 영화를 찍는 거야!
장난감처럼 귀여운 미니 차를 타고 아주 좁은 파리 어느 골목길을 질주하던 장면을 더 잊지 못하는 건 어느 날 거리를 걷다 우연히 그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계획하지 않은 일도 맞닥뜨린다. 삶은 그렇지 않았던가 하며.
알고 보니 난 본이 아니었어. 본 시리즈는 그렇게 몇 편 더 이어져 제이슨의 실체를 마주하게 한다. 난 뉴욕 어느 빌딩에서 태어난.
아직 난 찾지 못했다. 분명한 내 정체성을. 마르세유에서의 일이 기억난다. 그때 음보시는 소파에 누워 있었고 그의 배 위에 아이 하나가. 그렇지만 알 수 없다. 내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했는지를.

오랜만에 다시 보니 문득 그 대사들이 와닿는다. 그런 일은 니키를 보낼 수도 있어, 음보시를 죽이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지, 쥐도 새도 모르라고 널 보낸 거야...
나도 이제 내가 누구도 아니라는 걸 받아들인지 오래인 듯하다.
